메뉴 건너뛰기

close

책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책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 지식산업사
이 책은 <오마이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박도 시민기자의 안흥 산골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서 편찬한 것이다. 정년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시골에 살고 싶어 명예 퇴직을 하고 산골로 내려간 박도 선생. 그가 전하는 안흥 산골 이야기는 도시에서 이사간 귀농 초보자의 경험담을 담고 있다.

글의 서문은 "열심히 사는 사람은 다시 만나면 반갑습니다"라는 말로 퇴임을 하는 저자가 학생들에게 주는 글이다. 이렇게 30여 년의 교직과 서울 생활을 접고 안흥으로 가게 된 데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다. 너무 오래 교직에 머무르면서 한창 자라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결단을 내린 것.

자신과는 전혀 연(緣)이 없는 낯설고 물 선 안흥에 오게 된 그는 200 평 남짓의 텃밭에 자급자족을 위한 먹거리를 심으며 농사일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가 배운 경험, 새롭게 느끼고 깨달은 점들을 재미있게 전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다. 농사 초보자가 겪는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잔뜩 담긴 사진까지 그 재미를 더한다.

"풋풋한 땅 냄새를 맡으면서 해마다 땅을 갈아엎어야 농작물이 잘 된다는 노씨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렇다 해마다 땅을 뒤집고 또 새 흙으로 객토를 해야만 땅힘이 생겨서 충실한 곡식과 푸성귀를 얻을 수 있을 게다.

나라 정치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뒤집어줘야 세상이 건강할 텐데, 우리나라는 해방된 뒤로 한 번도 정치판을 제대로 뒤집어 주지 않았다. 그새 한 차례 정권 교체를 했다고는 하지만, 호미로 깔짝거리는 데 지나지 않았다. 가래로 확 깊숙이 뒤집어야 그 해 농작물이 땅 힘을 받아서 잘 자란다고 한다."

이처럼 농사를 지으면서도 세상에 대한 냉철한 시선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교육이네 뭐네 하며 농촌을 떠나고 있지 않은가. 꼭 도시에 간다고 하여 세상 경험이 넓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들 또한 도시와 농촌의 공존, 그리고 그를 통해 얻어지는 사회적 발전의 추구이다.

저자는 농촌 생활을 통해 이웃 간의 정을 느끼고 부부가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맛 본다. 하지만 늘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뽑아도 뽑아도 무성해지는 잡초, 한해 농사가 풍년이 들어도 작물이 팔리지 않아 경제적 곤란을 겪는 이웃들, 아이들은 없고 노인들만 외로이 남아 처량하게 지키고 있는 산야. 이러한 농촌 문제에 대한 안타까움은 저자가 실제 생활하며 체험한 것이기에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그렇다고 하여 책의 내용이 모두 농촌 이야기에 일관되는 것은 아니다. 자식들과 떨어져 살면서 느끼게 되는 부정(父情)과 국가 보안법에 걸려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회상 등 가족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친일파 문제, 국가 보안법 문제와 같은 사회적인 이슈까지 골고루 담고 있다.

좋은 수필의 요건이 있다면 필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소박한 이야기를 통해 철학적이고 성찰적인 메시지를 아름답게 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좋은 수필들로 한 장 한 장을 장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도시를 떠나 자연과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해가는 한 중년 남자의 독백은 꾸밈이 없으면서도 가치 있는 삶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갑자기 은행나무 떨잎처럼 지고 싶다. 제 몫을 다하고 내년에 돋아날 잎의 거름이 되고자 떨어지는 떨잎들! (중략)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 바람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떨잎처럼 지는 날이 그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내가 그날을 담담히 맞을 수 있도록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둬야겠다. 하지만 그날까지 남은 일을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도록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하늘에 빌고 또 빈다. 이 바람도 나의 주제 넘는 욕심일까?

하늘이시여! 당신 뜻대로 하소서."

자연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또 가르쳐 준다. 도시에서 각박하게 사느라 잊고 있던 자기 자신의 참모습, 세상에 대한 너그러운 이해, 그리고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 이런 것들을 도시 생활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기란 쉽지가 않다.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도 자연의 소리를 전하는 글과 그림을 통해 독자들은 삶의 깊은 의미와 향기를 새롭게 얻는다. 비록 저자처럼 안흥 산골에서 편지를 띄울 수는 없지만, 도시의 메마른 하루 일과를 잊는 작은 자연의 울림을 찾아 보자. 그것이 자연을 담은 책이든, 밤하늘이든, 한강의 잔잔한 모습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 곁에 머무르는 작은 자연을 통해서….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박도 지음, 지식산업사(2005)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