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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간, 동물풍선 접기
미술시간, 동물풍선 접기 ⓒ 구립 고은 어린이집
어떤 시설장은 특별활동비도 어떤 업체냐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내가 직접 각 업체에 확인한 바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지자체의 관리 감독 정도에 따라, 시설장의 양심에 따라, 부모 참여 정도에 따라 액수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 어린이집의 경우는 시설장이 바뀐 후, 특별활동 프로그램 수는 더 많아진 반면 부모들의 비용부담은 더 줄었다. 매달 1만 원 하던 체육은 3500원으로 가능하게 되었고, 과학 또한 재료만 구입하여 각 반 담임선생님이 직접 지도하는 방식을 채택하니 1만 원에서 5천원으로 절감되었다.

전통놀이는 지역의 노인 전문 강사를 초빙하는데, 강사비가 저렴하여 어린이집 운영비로 지급된다. 그리고 국악이나 미술은 외부 강사를 초빙하지 않고, 어린이집 내부 교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것은 교사 신규 채용을 할 때, 기존의 시설장 인맥에 의해 이루어지던 관행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공개채용을 함으로써 가능해진 결과이기도 하다.

특별활동비 부담이 현저히 줄어든 것 외에도 현장학습비 및 사진값 등도 실비 수준을 넘지 않는다. ‘사소한’ 것에 문제제기 할 엄두도 못 내고, 원하지도 않는 사진을 비싼 값에 떠안을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더러운’ 마음을 시설장이나 당국은 알까?

지자체 차원의 재롱잔치, 운동회 등의 각종 행사를 할 때마다 부모들에게 부과해 왔던 행사비도 없어졌다. 사실 그러한 행사 예산은 많게는 1천만 원씩 지자체 자체 예산으로도 편성되어 있는데, 부모들은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른 채 1만 원이고 2만 원이고 어린이집에서 내라는 대로 내야만 했다.

사실 보육료나 각종 잡부금 부담이 부모들에게 다소 있다고 해도, 그것이 온전히 아이들의 이익으로 돌아가거나 보육종사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쓰인다면 부모들의 불만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온갖 명목의 잡부금 수납이 보육료를 보완하는 수단이거나 시설장 개인의 잇속을 위한 도구, 관에 대한 로비자금으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구립과 민간을 막론하고 정부에 신고된 모든 보육시설은 보육료 이외에 여타의 잡부금을 일체 수납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서울시의 경우 입소료를 5만 원 이내로 받게 되어 있고, 현장학습비, 야간 급·간식비 등 수납이 불가피한 경비는 지방 보육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시, 군, 구의 장이 그 상한액을 정하도록 되어 있다.

지난해 한국여성민우회의 ‘생활정치를 건강하게 하는 모임’에서 각 지자체의 보육 예산과 정책 분석에 참여하면서 파악한 바로는, 지자체에 따라 잡부금 수납 승인 상한액에 큰 차이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보육료든 각종 잡부금이든 중앙 정부나 지자체가 그것을 결정하는 과정에 부모들의 이해와 요구가 얼마나 반영되는가 하는 점이다. 올 초에는 경기도 ㅍ시에 살고 있는 한 어린이집 엄마로부터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민간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있는데, 어느날 어린이집으로부터 난방비를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미 지나간 달까지 소급해서 내라고 했다고 한다. 시설장에게 항의했더니 보육위원회에서 난방비 수납을 승인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조언을 구해온 것이다.

난방비 수납은 지방보육위원회의 승인 사항이 될 수도 없으며, 많은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자체 예산을 편성하여 각 보육시설에 얼마간의 경비를 보조해준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 해결 방법은 다른 부모들과 연대하여 ㅍ시가 그러한 정책 결정을 철회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뿐이라고 조언하였다.

사실 지방보육위원회의 승인이 없어도 구립 어린이집조차 잡부금은 물론 간식, 물휴지, 곽티슈 등 각종 물품을 가져오라는 곳이 많았고, 민간 어린이집은 지금도 냉·난방비, 쌀, 반찬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민간 어린이집의 경우 정부가 정한 상한액 이하로 보육료를 수납한다고 해도, 대개 6개월 단위로 별도 수납하는 특별활동비, 현장학습비, 학습지비, 재료비, 간식비, 차량 운행비 등을 합하면 보육료 상한액을 훨씬 뛰어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육현장에서의 각종 잡부금 수납 관행은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아이를 ‘볼모’로, 부모가 ‘봉’이라는 느낌을 부추긴다. 보육시설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무원 수도, 지역 시민사회의 감시도, 부모 참여 등의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과도한 잡부금 수납 관행은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부분적으로나마 부모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서대문구에서도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1년에 몇 번 구립 어린이집의 신규 위탁이나 재위탁 심사를 하기 위해 지방보육정책위원회가 열리는데, 이번 회의의 안건 역시 5개의 구립 어린이집에 대한 재위탁 심사였다. 그런데 회의가 시작되고서야 구립 및 민간 어린이집 시설장 연합회의 요구에 의한 현장학습비 및 특별활동비 인상안 심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의 자료에는 각 보육시설 시설장 연합회의 잡부금 인상 요구안과 서대문구와 인접구인 마포 및 은평구의 사례, 서대문구의 검토 안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회의에 참여한 한 고위직 공무원은 현재의 잡부금 수납 관행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현재 보육시설이 구의 단속대상이 되기 때문에, 보육위원회에서 현실을 반영한 잡부금 상한액을 승인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피력하였다.

여전한 문제는 보육정책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 그 어디에도 부모들의 의견은 반영된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서대문구의 구립 어린이집은 17개에 불과하지만 현재의 잡부금 수납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가 선행된 것도 아니다. 그나마 보육위원 중 부모 대표 둘만이, 타 구립 어린이집 운영위원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잡부금 수납 현황을 부분적으로나마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올해 과도한 보육료 인상으로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이 매우 크고, 몇몇 어린이집에서는 잡부금을 줄이고 있는 추세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두 명의 부모대표들이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잡부금 인상 승인 요청을 강력하게 반대하였기 때문에, 그 사안에 대한 결정은 일단 보류되었다. 나는 가능한 많은 부모들과 이 문제를 공유하기 위해 몇몇의 보육관련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고, 몇 시간에 걸쳐 타 어린이집의 운영위원들에게 전화도 돌려보았지만, 부모집단의 힘은 여전히 미약하다는 느낌에 불안감만 더해갔다.

더 많은 타 구의 사례를 검토한 후 다음 보육위원회에서 이 사안을 결정하자는 부구청장의 제안도 크게 걸리는 대목이었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의 보육 서비스 구호는 난무하지만, 여전히 많은 지자체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부모들의 요구보다는 강력하게 조직되어 있는 시설장 연합회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는 정책결정을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어제 구립 담당 공무원에게 확인한 바로는, 잡부금 인상에 관한 건은 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다시 면밀한 검토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어린이집 부모들은 더 이상 수동적이고 무력한 집단으로 머물러 있지 말고, 잡부금 수납의 타당성을 꼼꼼하게 따져본 후 어떤 의혹이 있다면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각종 잡부금이 사용되는 내역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부모들의 기본적인 알권리이고, 어린이집 및 지자체 단위에서 잡부금 수납을 결정하는 과정에도 부모들의 참여가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서대문구 보육위원회 부모대표 위원, 여성부 보육정책 부모 모니터링단원으로서 보육정책의 의사결정과정에 부모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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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원으로 여성, 보육, 교육, 지역언론, 주민자치역량 강화 등의 실천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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