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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대구여성의전화 부설 성폭력상담소 주최로 대구지역 중·고등학생의 성의식과 성폭력 및 성교육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27일 대구여성의전화 부설 성폭력상담소 주최로 대구지역 중·고등학생의 성의식과 성폭력 및 성교육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가 열렸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만약 의식없이 SM(에스엠)을 보면 아이들이 자라서 따라 하지 않을까요?"
(웅성웅성) "SM이 뭡니까?"
"사도 마조히즘(Sado Masochism)의 약자인데요."
"막 때리는 거 있잖아요." (좌중 웃음)


중·고등학생 성교육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SM'을 말한 쪽은 청소년이고 그것을 몰라 웅성인 이들은 학부모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소년들이 느끼는 학교 성교육은 말 그대로 '장난하냐'는 수준이다. 한마디로 '우리도 알만큼은 안다'는 비아냥이다.

지난 27일 오후 6시 대구에서 열린 '대구지역 중·고등학생의 성의식과 성폭력 및 성교육 토론회'(주최 대구여성의 전화 부설 성폭력 상담소)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는 성교육 현장의 분위기가 생생히 드러난다.

"아직도 '읍니다' 교재 보고 있으니..."

토론회에서 현행 학교 성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한 최슬기양
토론회에서 현행 학교 성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한 최슬기양 ⓒ 오마이뉴스 이승욱
"옛날 유치원 때 봤던 성교육 비디오를 고등학교에서도 봐야 하는 현실이다. 오죽하면 요즘은 '습니다'로 표기하는 문장이 옛날식 '읍니다'라고 적힌 교재를 아직도 보고 있을까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토론자로 참석한 최슬기(성서고 2학년)양의 말이다. 최양은 "학교에서는 성교육 시간에 실제적인 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한번도 가르쳐 준 적이 없다"면서 "결국 아이들끼리 '자위를 많이 하면 키가 덜 큰다', '(자위를) 많이 한 사람은 성기가 까많다' 등의 잘못된 지식이 전파된다"고 말했다.

최양은 또 "아이들에게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성폭력을 접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잘못된 성 지식은 무엇인지를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요즘 디테일한 이야기는 인터넷을 통해 배우는게 전부"라고 말했다.

특히 최양은 요즘 청소년들은 학교의 '무조건적인' 혼전 순결을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양은 "학교와 어른들은 무조건 (혼전 성교를) 하지마라 하지마라고 말할 뿐,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면서 "무조건 범죄다, 나쁘다는 식으로 혼전 순결만을 강요한다"고 주장했다.

청소년들 "무조건 혼전순결만 강요"

최양은 "청소년들도 혼전 순결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어른들에게) 가볍게 묵살당하고 무시 당하기 일수"라면서 "선생님의 가치관이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강요되고 있는 것이 현재 학교 성교육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을 최양은 ▲실용적인 성교육을 해달라 ▲제대로된 성적 기초 지식을 심어달라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달라 ▲어른들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부실한' 학교 성교육의 실태에 대해서는 교사들도 같은 입장이다. 이춘래 대서중 보건교사는 "입시위주의 학교 교육으로 인해 성교육이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돼 있지 않다"면서 "이 때문에 성교육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부분적이고 일회적으로 그친다"고 지적했다.

이 교사는 또 "성교육 담당교사 및 성교육을 해야할 교사들이 성교육에 대한 인식과 태도, 그리고 지식 등의 측면에서 전문성이 떨어진다"면서 "체계적이고 표준화된 학생용 교재가 없는 점도 큰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 교사는 "7차 교육과정의 창의적 재량시간을 이용해 의무적으로 10시간씩 성교육을 하라는 지침은 있지만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성교육을 정규 교과목으로 편성해 성장단계에 따른 지속적인 성교육이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만은 교사들도 마찬가지 "성교육을 정규 교과목으로 편성해야"

이양섭 교사
이양섭 교사 ⓒ 오마이뉴스 이승욱
단순한 주입 위주의 성교육이 아닌 인격 교육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양섭(전교조 대구지부 여성위원장·송현여중 교사)는 "성교육은 일종의 인격 교육으로 이해돼야 한다"면서 "서로 다름을 강조하는 시대가 아닌 만큼 남녀가 서로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성이라는 요소가 중요함을 알 수 있는 토론의 장이 필요하다"면서 "학생들이 서로 알고 지식과 관점에 대한 공개적인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존중도 만들어지고 사랑과 성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의견도 나왔다. 문혜선 대구 참교육학부모회장은 "부모세대들도 제대로 성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도 성의 무지가 상속되고 있다"면서 "정상적인 수업안에서 성교육을 포함시키고 나이에 맞는 성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윤희견 경주대 강사(여성학)은 현재의 성교육이 혼전 순결의 무조건적인 강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윤 강사는 "학생들에게 성교육 강의를 부탁받으면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들은 순진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너무 많이 가르치지 말라'고 말한다"면서 "하지만 정작 모르는 것은 교사나 학부모들"이라고 꼬집었다.

최윤 강사는 또 "성교육은 청소년의 성행위를 어디까지 허용하고 성적인 주체로 볼 것이냐 아니냐는 고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면서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성관계의 주체로 보지 않느냐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의 성교육은 청소년의 성기결합 자체를 금지하다 보닌 성기결합에서 임신까지 이르는 구체적인 과정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윤 강사는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성의 가치관의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면서 "선택을 할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성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학년일수록 성교육 불만 "너무 기초적... 도움 안돼"
대구지역 12개 중고등학생 대상 성관련 설문조사

중고등학생 41.5%가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이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구여성의전화 부설 성폭력상담소가 지난 4월부터 약 2개월간 대구지역 12개 중고등학교 재학생 1322명을 대상으로 성교육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이와 같이 나타났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학생들은 학교에서 받은 성교육에 대해 41.5%가 충분하지 않다고 응답했고, 반대로 충분하다는 응답은 24.2%에 그쳤다. 중학생의 경우 충분하다는 응답은 39.8%, 충분하지 않다는 18.4%로 조사됐지만, 고등학생의 경우 충분하다는 16.8%, 충분하지 않다는 52.4%가 응답했다.

학교 성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너무 기초적인 내용이어서 도움이 안된다'는 답이 28.3%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그 다음으로 ▲전문교사가 없다(20.7%) ▲정규 교육시간이 없다(18.6%) ▲교재와 자료가 부족하다(16.1%) 순으로 조사됐다.

청소년들이 성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되는 경로와 관련해서는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됐다는 응답이 35.8%로 가장 높았지만, 친구 및 선후배이나 인터넷도 각각 26.2%, 23.2%를 기록했다.

한편 성폭력 통념 조사(조사대상 1500여명)에서 학생 중 58.2%가 여자들의 야한 옷차림과 행동이 성폭력을 유발한다라고 응답했고, 38.2%가 남성의 성충동은 본능적으로 자제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남녀의 혼전 순결 문제와 관련해 학생들은 65.1%가 '여자의 순결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 반면 '남자의 순결'은 52.0%가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답했다.

포괄적인 성폭력 피해경험과 관련해 '음란성 메시지나 사진, 그림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이 63.5%로 가장 높았고, 남녀차별적 발언이나 불쾌한 성적 농담을 겪었다는 응답도 각각 49.5%, 43.9%로 나타났다.

대구여성의 전화 성폭력상담소 배윤주 전문강사는 "아직도 상당수 학생들이 성폭력에 대한 통념 부분에서는 성폭력을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고 있다"면서 "특히 여자들의 야한 옷차림이 성폭력을 유발한다는 인식은 성폭력에 대한 정확한 개념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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