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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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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진에 순교하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늘 몸뚱이는 뒷전이었다. 제주를 찍는 게 먼저였다. 6년 전,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을 선고받았지만, 끊임없이 제주사진에 몰두했다.

손가락이 자유롭지 않게 됐을 때도 치열하게 버텨왔던 사진작가 김영갑(48)씨가 29일 오전 제주 한마음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땡전 한푼 없이 시작한 제주와 사랑

ⓒ 김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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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고 김영갑씨
사진작가 고 김영갑씨 ⓒ 김영갑
내일을 기약할 수 없으니 허락된 오늘을 평화롭게 살겠다며 병마와 싸웠던 그는 지난 1982년 처음 제주도에 발을 딛었다. 그후 3년만에 짐을 싸들고 내려와 꼬박 20년 제주와 뒹굴었다.

태풍이 치면 바다로 나갔고, 낮이면 중산간 오름을 쏘다니며 마음껏 제주를 찍었다. 비가 오면 구름을 벗삼아 움직이는 모양을 담고, 맑은 날에는 꽃향기에 취해 흐느적거렸다. 바람과 풀잎, 돌과 바다는 늘 그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한 제주를 찍어 연초에 개인전을 연 것을 비롯해, 지난 3월에도 사진집 <눈·비·안개 그리고 바람환상곡>, <구름이 내게 가져다 준 행복> 2권을 발간하면서 와병 중에도 작품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땡전 한 푼 없이 제주에 내려온 작가는 들판을 거닐다 밭에 떨어진 당근을 씹어먹고, 라면이 떨어지면 냉수 한 사발로 배를 채우면서 제주와 사랑에 빠졌다.

끼니는 걸러도 인화지와 필름 없이 살 수는 없었다. 한 컷 셔터를 누르지 않으면 라면 한끼가 보장되지만, 그는 지체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밥을 굶어가면서 20만장의 필름으로 사진과 함께 했던 그는, 정작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됐을 때 절망감이 몰려왔다.

손이 마비된다는 의사의 말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한동안 방황했지만, 그는 남은 시간들을 허비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의 폐교(초등학교) 건물을 임대해 갤러리를 만들었다. 두모악갤러리.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다.

살고 싶다, 사진을 찍고 싶다

ⓒ 김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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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성한 사람도 하기 어렵다는 공사를 그가 했다. 공사 중에는 몸이 점차 야위어 70kg가 넘던 몸이 47kg으로 줄어들었다. 길가의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중상이 됐다. 휴지 한 장 제 손으로 들어올리지 못하게 됐다.

그때마다 그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살고싶다는 기도는 사진을 찍게 해달라는 당부와 잇닿아 있다. 그는 늘 사진에 대한 열정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1%의 확률일지라도 내일이 올 가능성이 있다면, 오늘 두모악갤러리 앞마당에 돌이라도 하나 더 갖다놓으면서 삶을 가꾼다는 작가의 말은, 병든 목숨이지만 끝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인 것이다.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풍경사진 하나도 우연히 찍힌 게 없다. 절벽에 몸을 매달고 사진을 찍는가 하면, 세월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매년 같은 장소에서 찍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안되는 게 웃음이다"

ⓒ 김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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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좀 나으면 갤러리 앞마당에서라도 제주의 숨결을 찍어보겠노라고 했던 그는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삶과 사진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 포토 에세이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펴냈다.

그는 저작을 통해 "얼굴에서 웃음을 잃은 지 오래다"며 "미소를 지으면 얼굴 근육에 통증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웃음을 자제하게 된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웃음"이라고 말하면서 투병생활의 고통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 1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짧지만 아름다운 인생을 정리했다.

"날마다 사진을 찍는 나는 날마다 사진을 생각합니다. 사진 찍는 일에 몰입해 홀로 지내는 동안, 그리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내 존재가 잊혀질지라도 나의 사진작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고 김영갑 작가의 빈소는 현재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 '두모악갤러리'에 마련됐으며, 장례절차는 유가족과 협의 후에 결정할 예정이다.

ⓒ 김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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