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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보육프로그램이 끝난 후 아이들이 모여 거북이 마라톤 대회 포스터를 만드는 장면
정규 보육프로그램이 끝난 후 아이들이 모여 거북이 마라톤 대회 포스터를 만드는 장면 ⓒ 서정순
작년 초까지만 해도 우리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내부는 접근금지였다. 어린이집을 처음 이용하던 초기에는 내가 행여 안으로 들어갈까 선생님이 온몸으로 막더니, 언제부터인가 자동문을 설치하고 밖에서 벨을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장치를 갖췄다. 그리곤 현관문에 '부모님은 어린이집 내부로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라는 큼지막한 문구를 떡 하니 붙여 놓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의 교육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일부 부모들은 그런가보다 하고 순응하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불만이 있는 부모도 아이가 밉보일까봐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 중 운영위원 몇이 부모를 대표해 어린이집 운영과 관련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후 어린이집 내부 접근 금지는 해제되었다.

그러나 아이를 맡기는 보호자로서 어린이집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기까지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 것은 사실이다.

부모들이 아이가 하루 종일 머무는 보육공간에 정규 보육프로그램이 진행되지 않는 시간에 조차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 보육시설의 폐쇄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보육운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폐쇄적인 어린이집일수록 내부에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폐쇄적인 어린이집일수록 급·간식이 부실하다든지, 정원초과가 있다든지, 아이들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든지, 비위생적이라든지 여러 가지 문제를 보인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부모들은 정기적으로 아이들이 생활하는 보육 공간을 꼼꼼히 점검한다. 정부의 보육사업 지침에 명시된 대로 각 반에 공기 청정기가 설치되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창문에 안전망은 설치되어 있는지, 어린 아이들의 손이 문틈에 끼는 경우를 대비해 각 교실의 문에 고무 파킹이 부착되어 있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관리한다.

# 장면 2
오전 10시, 아이가 늑장을 부리는 통에 또 지각이다. '오늘도 간식 못 먹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를 채근해 어린이집 현관에 다다른다. 문 옆에는 부모들이 오늘 어떤 간식을 먹는 지 볼 수 있도록 급·간식 보존대가 마련되어 있다. 죽 한 그릇이 안에 놓여 있고 플라스틱 뚜껑에 뽀얀 김이 서려 있는 걸 보니 이제 막 간식시간이 시작 되었나 보다. 아이가 소속된 교실 앞으로 다가서니 선생님께서 한 그릇 한 그릇 죽을 푸고 계시는데 무척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우리 아이가 이 어린이집을 다니던 초기에는 영아의 경우 매일 우유와 빵, 치즈, 떠먹는 요구르트, 과일 등의 간식을 각 가정에서 싸서 보내야 했다. 급·간식비가 보육료에 포함되어 있고, 영아 간식비는 구청에서 별도로 지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아들은 찬밥신세였다.

식단조차 배포되지 않아 어린이집에서 어린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 부모들은 알 수가 없었다. 간혹 아이들이 뭘 먹었냐고 어린이집에 물으면 그때마다 "잘 먹고 잘 놀았다"라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점심시간에 어린이집에 갔더니 아이들은 반찬도 없이 국물에 밥을 말아 먹고 있었고 건강에 좋지 않은 간식들만 먹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의 참여가 어린이집의 그런 구조를 바꿔놓았다. 급·간식의 변화는 부모들이 가장 만족해하는 부분 중 하나이다. 이곳에선 매일 영아들을 위한 별도의 이유식이 준비된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요즘 아이들이 아침을 못 먹고 나오는 경우를 배려해 영양을 고려한 죽이 나올 때가 많다.

그리고 부모들의 요구로 모 여성단체의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해 갖가지 종류의 물품을 공급받는다. 수입밀로 만들어진 빵보다는 떡, 우리밀로 만들어진 빵이나 과자, 각종 인공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음료수, 제철 과일을 자주 먹인다. 월차 등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부모들은 짬을 내어 1년에 한 번 정도 급식 도우미 역할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이제 더 이상 부모들은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무엇을 먹는지 불안해하지 않는다.

구로구 m 어린이집 급간식 비리 사건 이후 서울시 지침에 의해 설치된 급간식 보존대
구로구 m 어린이집 급간식 비리 사건 이후 서울시 지침에 의해 설치된 급간식 보존대 ⓒ 서정순
보육시설, 유치원, 학교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부실 급·간식 실태가 언론에서 보도될 때마다 우리 어린이집의 부모들은 과거의 상처와 아픔 때문에 더욱 분노한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일차적인 책임은 국가와 시설 책임자에게 있지만,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소비자로 머무르고자 하는 부모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음을 공감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부모들은 영유아의 교육이나 학습에 대한 관심은 지나친 반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연령별 교사 대 아동 비율이 얼마인지, 아동 1인당 어느 정도의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지, 어린이집에서 부모의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지 너무나 무관심하다.

어린이집의 내부문제에 대한 부모들의 무관심과 무지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부실한 급·간식으로 배를 곯고, 기본적인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지 않은 보육환경으로 인해 손톱이 빠지거나, 이가 부러지는 등 각종 안전사고를 당한다.

또한 법 규정상으로도 교사 1인당 돌봐야 하는 아동 수가 지나치게 높은 현 상황에서, 정원초과는 보육의 질을 총체적으로 떨어뜨리는 주범이지만 그런 문제에 대한 부모들의 인지도는 매우 낮다. 기본적인 보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게 하는 이러한 보육 환경은 국가와 보육종사자의 직무 유기 외에 부모집단의 무관심, 무지, 무력감, 무저항, 무책임이 어우러진 결과이기도 하다.

현재 이용하는 보육시설에 대해 매우 만족하든 불만족하든, 부모참여 활동은 보육의 질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 어린이집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반별 모임은 보육교사와 부모 간 이해관계를 절충시켜주며 영아보육의 질을 높여준다. 이런 과정 속에서 보육교사와 부모 간 신뢰도 쌓여간다.

반별 모임에서의 충분한 교류를 통해 그 반을 대표할 수 있는 부모를 뽑고, 그 부모들 중에서 전체 아이 및 부모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부모대표 운영위원을 선출하면 부모참여의 틀은 갖춰진 것이다.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일상적인 교류를 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어린이집 부모들은 처음엔 낯선 얼굴들이었다 해도 공통의 관심사 때문에 누구보다 쉽게 친해질 수 있고, 아이들 또한 어린이집에 더 잘 적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에서는 보육시설에 시설장, 교사대표, 부모대표 및 지역사회 인사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최근 여성부가 발표한 전국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어린이집 중 운영위원회를 설치하고 있는 경우는 16.4%에 불과하고, '향후 설치하겠다'는 의사 또한 35.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보육시설의 부모운영위원회 설치는 부모들의 권리의식과 용기에 달려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형식적인 운영위원회의 구성이 아니라 부모들의 네트워크와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참여이다. 합리적인 부모들의 참여는 어린이집을 보다 투명하고 민주적, 개방적으로 운영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 부모, 선생님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보육과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
중앙보육정보센터 http://www.educare.or.kr/
서울특별시 보육정보센터 http://children.seoul.go.kr/
한국보육교사회 http://kdta.or.kr/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http://www.gongdong.or.kr/jsp/main/index.jsp

덧붙이는 글 | * 이 글에서 말하는 부모는 대부분이 엄마입니다. 대다수의 아빠들은 부모라는 용어에 묻어 무임승차하고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아빠들도 육아에 보다 많이 참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모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리고 부모라는 말에서 소외당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보호자라는 표현 역시 적절한 것 같지는 않아 부모라는 말을 잠정적으로 씁니다. 

* 저는 서대문의 보육위원회 부모대표 위원이자 서대문 참여보육 네트워크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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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원으로 여성, 보육, 교육, 지역언론, 주민자치역량 강화 등의 실천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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