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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적산 전경
맥적산 전경 ⓒ 조명자
보릿단을 둥글게 쌓아 올린 형상의 맥적산. 진령산맥의 서쪽 끝에 진흙과 자갈과 모래로 형성된 142m의 바위산이다. 90도 수직으로 깎아진 절벽 한 켠에 아파트처럼 칸칸이 뚫어진 석굴들. 그 숫자가 무려 194개로 조성된 불상만도 7000여좌에 이른다고 했다.

후진이나 동진 때 개굴됐다는 설이 있는데 북위시대의 초기 불상부터 송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특성이 순서대로 나타난 불상들이 조성돼 있는 곳이었다. 일찍 나선다고 했는데도 관람객이 꽤 된다. 중국도 이제는 먹고살만 하기에 휴가를 즐기려는 관광객이 상당하다고 한다.

194개 굴 중에 우리가 꼭 봐야할 석굴이 8개. 대굴 관람료가 60위안, 소굴이 50위안 다 합쳐 특굴 관람료가 모두 420위안이다. 불교문화유산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관람객이 대부분이라 우리처럼 특별 요금까지 지불하며 특굴 감상을 하는 이가 없는가 보다.

맥적산 석굴 관리소가 야단이 났다. 어마어마한 입장료를 추가로 내는 단체가 입성했으니 호떡집에 불 날만도 했다 당장 석굴 담당 학예사가 나타났다. 우리에게 유물 설명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그재그로 설계된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큰 굴, 작은 굴 어떤 곳은 아이들 소꿉장난할 때처럼 후비적후비적 파놓고 작은 불상을 조각해 놓았다. 모든 굴 앞에는 촘촘히 철그물망을 쳐놓았고 큰 굴 앞에는 바리케이드처럼 생긴 스텐봉 문을 해달았다.

맥적산 석굴 불상의 특징은 북위시대의 진수를 맛보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50년간의 왕조 재위기간 동안 온갖 정성을 다 드려 모셔놓은 불상들. 북위시대 사람들의 불심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었다. 불상의 상호도 불교가 전래된 초기형태라 그런지 코가 큰 서역인의 풍모가 많이 배어 있었다.

맥적산 석굴 불상
맥적산 석굴 불상 ⓒ 조명자
44굴의 불상은 서위 시대 최고의 걸작품이라 했다. 파손된 손목 가운데 삐죽이 철사가 내밀어져 있었다. 1600년 전 철사였다. 돌로 된 석불조성을 할 때야 문제가 없겠지만 진흙 소조는 중심이 필요했다. 철사나 나무를 박아 뼈대를 세우고 그 위에 황토를 입혀갔다. 황토 속엔 면이나 마를 섞어 견고함을 보강했다.

북위나 서위 시대 불상들은 우리가 흔히 봐왔던 두툼하고 근엄한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가늘고 부드러운 어깨 곡선. 비단천의 아름다운 옷 주름이 사르르 흘러내린 아래 배는 봉긋이 솟은 모습이었다. 단전호흡으로 솟은 아래 배를 표현한 것이었다.

굴과 굴 사이를 오가는 계단을 건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천 길 낭떠러지 위에 걸린 것처럼 아득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아예 접근을 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고층 빌딩 신축 공사장에 철 계단을 만들어 놓은 형태로 90도 수직 절벽에 덧붙여 지그재그로 얽어놓은 계단들. 인간의 극성은 참 못 말리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기야 지금 사람들은 기술이라도 발달했지만 1, 2천년전 사람들은 어찌 했을까? 별난 장비도 없이 저처럼 아득한 절벽에 굴을 뚫고 불상을 조각했다니 가공할만한 인간의 능력을 누가 가늠할 수 있으리.

맥적산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다리
맥적산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다리 ⓒ 조명자
43굴 금강역사는 정말 웃겼다. 어마어마한 체구에 퉁방울처럼 불거져 나온 눈동자. 더구나 검은 눈동자는 까만 유리로 끼어져 있었으니 그 앞에 서면 웬만한 아이들은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릴 형상이었다. 당장이라고 한 대 칠 것 같은 우람한 팔뚝에는 울퉁불퉁 솟은 힘줄까지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이 금강역사는 당, 송 때의 작품이라 했다.

시대마다 독특한 특징이 있었다. 37굴 수나라 때의 협시보살은 아담한 체구에 두 손을 정성스럽게 모아 가슴에 대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저리도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을까? 자그마한 두 손이 너무도 아름다워 한번 맞잡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수나라 불상의 특징은 체구가 아담하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시대 사람들이 왜소한 체구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불상의 겉옷은 체크무늬가 많다는 것이 또 수나라의 특징이란다. 불상 하나로 그 때 사람들의 복식과 체구, 얼굴 생김새까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은 타임머신을 타고 전생으로 여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구멍이 파졌다 하면 굴이요, 무엇이 서있다 하면 불상. 참으로 가도 가도 끝이 없었고 하도 많이 보다 보니 그 불상이 그 불상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나름대로 다 특색이 있었다. 동양의 모나리자라고 하는 북위 시대의 불상은 선 가는 얼굴에 얄팍한 입술, 치켜 올라간 눈초리에 옷깃은 차이나 칼라 비슷하게 올라가 있었다. 바로 유목민의 얼굴이란다.

송나라 때부터는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 불상도 여성 모습으로 조각하였고 중국여성의 특징인 전족도 나타났다. 얼굴 치켜들고 나를 바라보는 우리 몽이 똑 닮은 사자상은 암수까지 구분해 조각해 놓았다.

문화라는 게 국경 없이 물 흐르듯 하는 것이라 우리나라 불상의 모습도 모두 이곳에 있었다. 백제의 미소라는 서산 마애삼존불의 미소도 북위 시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니까. 맥적산 석굴의 정수는 북위 시대 133굴이 최고였다. 모든 작품이 국보일 정도로 조각이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작품이었으며 불상의 수 또한 엄청나게 많았다.

맥적산 석굴 관람을 끝마치고 천수역으로 향했다. 다음 행선지 난주를 가기 위해서였다. 감숙성 성도라는 난주에는 병령사 석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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