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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름인가 보다. 식당에도, 은행에도 에어컨을 켜기 시작한다. 날씨가 더우니 입맛도 자연 떨어진다. 식사 때만 되면 무얼 먹을까 고민하게도 된다. 점심이야 어차피 직원들과 같이 먹어야 하니 내 고집만 피울 수는 없다. 그러나 저녁은 아니다. 어느 정도 내 방식대로 해도 된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만드는 건 아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즐겨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 새우젓입니다
ⓒ 박희우
어제는 퇴근길에 마산어시장에 들렀다. 싱싱한 해물이 많기도 하다. 낙지, 문어, 도다리, 물오징어, 바지락, 조개, 멍게 등등. 갑자기 군침이 돈다. 모두 먹고 싶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새우젓을 사러 왔으면 새우젓을 사야 한다. 다른 걸 기웃거리다 보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나는 새우젓가게 앞에 섰다. 장독만한 플라스틱 통 안에 새우가 가득하다. 그런데 통이 두 개다. 새우젓이 따로 담겨 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이 통은 뭐고, 저 통은 뭡니까?"
"이 통에 있는 새우젓은 국산이고, 저 통에 있는 새우젓은 중국산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새우젓은 어떻게 팔지요?"
"1㎏에 2만7천원입니다."
"비싸네요."
"중국산은 쌉니다."

주인 아저씨가 왼쪽에 있는 통을 가리킨다. 그런데 국산보다 훨씬 맛있어 보인다. 중국산은 때깔부터가 달랐다. 국산보다도 불그스레했다. 크고 싱싱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나머지는 국산이나 중국산이나 비슷했다. 막말로 국산과 중국산을 섞어 팔아도 꼼짝없이 속아넘어갈 판이다.

"국산으로 500g만 주세요."

주인 아저씨가 비닐 봉지에 새우젓을 담는다. 저울에 재는데 700g이 넘었다. 그래도 덜어내지를 않는다. 마음 씀씀이가 좋았다. 주인아저씨가 내게 김치 담글 거냐고 물었다. 나는 엉겁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콩나물국을 끓이기 위해 새우젓을 사는 것이다. 주인 아저씨가 국자로 새우젓국물을 펐다. 나는 새우젓국물까지 받았다. 주인 아저씨는 새우젓국물이 김치 담그는 데 좋다고 했다.

"새우젓국물 한번 보세요. 색깔이 뿌옇지요. 꼭 쌀 씻은 물 같잖아요. 이게 진짜 국산 새우젓입니다. 어디 가서 새우젓 사실 때 국산인지 아닌지 의심이 가면 새우젓국물부터 보세요. 중국산은 이렇게 뿌옇지를 못해요. 병에 들어 있는 것도 사지 마세요. 십중팔구 중국산입니다."

나는 어시장을 나섰다. 채소가게에서 배추하고 콩나물을 샀다. 집에 들어오자 아내가 놀란다. 뭘 이렇게 많이 사왔느냐며 아예 주부로 전업하라는 농담까지 한다. 그래도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비닐봉지를 열어보더니 깜짝 놀란다.

"내가 좋아하는 새우젓이네!"

▲ 새우젓콩나물국입니다
ⓒ 박희우
아내는 배추하고 콩나물을 다듬기 시작한다. 배추로는 새우젓을 넣고 겉절이를 만들 것이다. 콩나물로는 새우젓콩나물국을 만들 것이다. 벌써부터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파하고 마늘을 깠다. 아내가 냄비에 물을 부었다. 멸치를 집어 넣었다. 냄비가 푹푹 끓는 소리를 냈다.

이제부터 새우젓콩나물국을 만든다. 아내는 냄비에서 멸치를 걷어내고 콩나물을 집어 넣는다. 뚜껑을 닫고는 김이 푹푹 날 때까지 끓인다. 다시 뚜껑을 연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다. 내게 맛을 보라고 한다. 입맛에 딱 맞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다. 아내가 활짝 웃었다. 아내는 파와 마늘, 고추도 넣었다. 계란도 넣고 통깨도 넣었다. 이것으로 새우젓콩나물국은 완성되었다.

나는 저녁 밥상을 차렸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수저도 놓았다. 아내는 배추겉절이도 만들었다. 평소에는 멸치젓을 넣었지만 이번에는 새우젓을 넣었다. 불그스레한 게 아주 먹음직스럽다. 아이들도 새우젓콩나물국을 잘 먹었다. 시원하면서도 짭짤한 게 여느 콩나물국밥에 뒤지지 않았다. 풍성한 만찬이었다.

▲ 새우젓을 넣고 만든 겉절입니다
ⓒ 박희우
이제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 자칫 입맛을 잃기 쉬운 계절이다. 내 아버지께서도 여름에는 입맛을 곧잘 잃곤 하셨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새우젓을 사오셨다. 아버지께서는 새우젓만 보면 금방 입맛을 되찾으셨다.

여름에는 보약이 따로 없다. 잘 먹는 게 바로 보약이다. 새우젓콩나물국, 여름 한철 나는 데 이보다 좋은 음식이 달리 없어 보인다.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에게 한번 드셔 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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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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