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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해 돌아오니 역시 강아지 복순이가 나를 제일 먼저 반긴다. 반갑다며 온 몸이 부서져라 꼬리며 몸통을 흔들며 내 앞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바탕 법석이다.

복순이의 '열렬한' 환영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를 먼저 찾았다. 방에서 보따리를 싸고 있던 우리의 '치매엄마'는 내가 들어가자 반가운 얼굴이다. 엄마를 꼭 안아주며 '잘 놀았냐'는 등의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복순이는 내 주변을 뛰어다니며 '주인님'을 만난 기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엄마를 보듬고 한참동안 이런 저런 인사를 마치고 나서야 복순이를 찾았다. 그때까지 그녀는 내 주변을 이리저리 뛰며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람을 워낙에 좋아해 집에 찾아오는 세탁소 아줌마, 택배아저씨 가리지 않고 꼬리치며 반갑다며 호들갑을 떠는 '넉살좋은' 복순이의 성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저렇게 나를 반기는 사람이 있을까?'하는 마음이 들자 복순이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저 녀석은 도둑이 들어와도 반갑다고 꼬리를 쳐 댈 거야'라고 중얼거리면서도 흐뭇한 마음에 복순이를 안아주려니 복순이의 얼굴과 행동이 예전과 조금 달라 보였다.

입에는 그야말로 '개거품'을 물고 있고 앞발로는 자꾸 입을 긁어내리는 모습이 어디 아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쑥 걱정이 되었다.

버둥대는 복순이의 얼굴을 바로잡아 아무리 이리저리 살펴봐도 특별히 다치거나 문제가 되는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계속 얼굴 전체를 앞발로 긁어대는 그녀에게 나는 "복순아, 도대체 왜 그래? 말을 해야 알지"라며 혼잣말만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복순이의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하려 애쓰고 있던 중 '개거품'을 잔뜩 문 복순이의 입안에서 무언가 반짝하는 것이 보였다.

버둥대는 복순이의 입을 강제로 벌려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복순의 어금니 한 개가 금이빨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강아지의 어금니가 금이빨로 덮였으니 황당하고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2.5kg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강아지의 어금니라야 그야말로 갓난아기 손톱 정도의 크기도 되지 않는데 그 작은 이빨이 갑자기 금니가 되어 있으니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었다.

복순이를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는 우리의 엄마는 버둥대는 복순이가 꽤나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도대체 어찌된 사태인지를 확인하느라 강아지 입을 벌리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 내게 엄마의 애달픈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이제 좀 그만해라. 그만해. 왜 애 입을 가지고 그렇게 난리야 그래?"

"애를 공굴리듯 그렇게 굴리면 어떡하냐? 니 입도 좀 한번 그렇게 벌리고 귀찮게 해보자."

강아지가 금이빨을 한 황당한 사태에 잠시 당황해 하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급기야 얼굴까지 붉히며 복순이를 그만 괴롭히라는 강력한 경고까지 하는 것이다.

"엄마, 미안, 미안. 안 그럴 게. 복순이 이제 그만 저리가라"며 잔뜩 화가 난 엄마를 우선 달래기 위해 복순이를 놓아주었다. 엄마 옆으로 다가가 앉아 엄마를 바라보는 순간 '악'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엄마는 위아래 모두 전체 틀니를 하고 있다. 틀니를 걸기 위해 아랫니는 송곳니 두 개가 남아 있고 윗니는 3개가 남아 있는데 그 세 개 남은 이빨이란 것이 썩은 부분을 모두 갉아내 갓난 아기 손톱만한 크기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거기에 금을 씌워 엄마의 윗니 세 개는 아주 작은 금이빨 3개가 늘 반짝이고는 했다.

얼마 전 덧씌운 금니 하나가 빠져버려 두 개가 남아 있어야 할 엄마의 금니가 한 개밖에 보이지 않으니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난 그제서야 복순이가 금이빨을 하게 된 사연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가 식사를 할 때면 복순이는 무엇이라도 얻어먹을까 싶어 엄마의 다리 밑에서 진을 치고 앉아 있다가 엄마가 식탁 밑으로 몰래 주는 음식을 받아먹기도 하고 엄마가 실수로 바닥에 흘린 음식을 재빠르게 핥아먹기도 한다.

추측하건대 엄마가 식사를 하다 금이빨이 빠진 것을 모르고 무엇인가 입 안에 걸리는 것이 있어 이를 뱉다가 바닥에 떨어뜨렸을 것이고 이때 복순이가 재빠르게 주워 먹었을 것이다. 바로 그때 엄마의 작은 금이빨이 복순이의 어금니에 절묘하게 딱 맞게 끼워지게 된 것이라는 추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틀니가 빠져 복순이의 어금니에 끼워진 상황을 상상하며 한참동안 넋 놓고 웃음만 웃었다.

"복순아, 고맙다. 고마워." 난 웃으면서도 복순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엄마의 금니가 빠져버리면 다시 금니를 해 넣을 경우 틀니가 맞지 않아 틀니를 아예 다시 해야 할지 모른다는 담당의사의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금니가 빠져 그 작은 이빨마저 썩게 될까 걱정하는 내게 '할머니가 그리 오래 사시지 않을 터이니 양치질 열심히 해서 그냥 쓰는 데까지 쓰자'는 말로 위로를 대신했다. 아무리 열심히 양치질을 해도 이빨이 썩어가고 있어 내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금니가 두 개씩이나 빠졌으니 금을 다시 씌우고 엄마의 틀니를 다시 해야 완전한 치료가 될 터인데 윗 틀니만 200백여만원 가까이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사실 엄두가 나질 않아 지금의 상태로 그냥 방치하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가끔씩 엄마는 틀니를 끼지 않으려 떼를 쓰는 바람에 이빨도 없이 오물오물 식사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빨도 없이 잇몸으로 혹은 몇 개 남지 않은 그 작은 이빨들을 서로 맞추어가며 음식을 씹으려니 식사 시간은 평소의 두 배 이상이 소요될 뿐 아니라 엄마의 식사하는 모습이 고역같이 느껴져 안쓰럽기만 했다.

난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당신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맛나게 드실 수 있도록 나머지 이빨 관리를 잘 해 드리는 수밖에 없기에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양치질을 해 드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가 가끔 자신의 이빨이 아프거나 시리거나 할 때 음식을 먹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한지 경험한 사람이라면 노인들이 이빨 없이 식사를 할 때 얼마나 힘이 들 것인지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상황이 그러한데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틀니가 의료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대부분 노인들이 틀니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엄마에게는, 그리고 노인에게는 소중한 틀니가 의료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에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이빨이 없다는 것은 식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는 분명 동일한 장애일진데 왜 의료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인지….

썩은 이빨을 뽑는 것은 의료보험이 되는데 뽑은 이빨을 다시 해 넣는 일은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는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다. 팔이 없고 다리가 하나 없는 것과 같이 이빨이 없는 것 또한 큰 장애임을 그들은 왜 알지 못하는 것일까? 먹는다는 것이 인간 생존의 기본이라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문제는 노인들이다. 경제력이 없어진 노인들의 경우 10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틀니를 하는 것이 도통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돈 있는 사람들은 임프란트라는 비싼 이빨을 할 수 있지만 돈 없는 노인들의 경우 대부분 소위 '야미'라고 불리는 무면허 시술업자에게 틀니를 하여 그 부작용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노인들은 자신들에게 무엇인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다 늙었는데 뭐'라는 말로 사양의 말을 대신한다. 심지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돈 들여 무엇하냐'는 다소 냉소적인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이 경제능력이 없기에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염려하여 하는 말일 뿐 정작 노인들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엄마의 틀니를 몇 번에 걸쳐 하면서 많은 돈이 들어야 했다. 예전에 쓰던 윗 틀니를 엄마가 어딘가에 감추어 잃어버려서 다시 하기도 했고, 불과 얼마 후에 아래 틀니의 한쪽 어금니가 부러져 또 다시 틀니를 해야 했다. 난 그 과정에서 몇 백 만원씩하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우리 형제 중에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데 부러진 틀니를 조금 손봐서 쓰라'는 친절한 충고를 한 사람도 있었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불편하게 식사를 해야 하는 엄마의 입장보다는 금전적인 부담이 자신에게 올까봐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지 않았나 싶다.

그러한 상황이니 복순이가 엄마의 금니를 자신의 이빨이 떡 끼워놓은 덕에 엄마의 금이빨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복순이에게 상을 내려주어야 했다. 난 복순이가 좋아하는 소시지를 두 개나 상으로 주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렇게 절묘하게 찾아내 다시 끼워 넣은 엄마의 금이빨은 또 다시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 나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난 복순이를 쳐다보며 한마디했다.

"복순아, 금이빨 다시 한번 하면 안 되겠니?"
"할머니 금이빨 좀 찾아서 니가 다시 끼워봐라. 너 좋아하는 소시지 3개 줄게."

이가 없어 먹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라 힘겨움이 되지 않도록, 이 없어 잇몸으로가 아니라 돈 없어 잇몸으로 먹는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없도록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만이라도 틀니의 의료보험 혜택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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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오마이뉴스의 정신에 공감하여 시민 기자로 가입하였으며 이 사회에서 약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글로 고발함으로써 이 사회가 평등한 사회가 되는 날을 앞당기는 역할을 작게나마 하고 싶었습니다. 여성문제, 노인문제등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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