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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반짝 빛나는 그녀의 반짝 반짝 빛나는 새 자전거
반짝 반짝 빛나는 그녀의 반짝 반짝 빛나는 새 자전거 ⓒ 이승열
선배가 자전거 일기를 보내오다

-능숙해지니 저절로 힘이 빠지더라

충동적으로 자전거를 샀다. 더 늦기 전에 자전거를 배워야겠다 생각하고.

첫날, 집 앞 학교 운동장에서 두 시간동안 원도 그리고 8자도 그리며 연습. 옛날에 잠시 배웠던 가락이 있어 일단 출발하면 가는데 출발이 어렵다. 비칠비칠… 에구구구.

둘째날, 걸어서 15분 거리를 30분 걸려 자전거로 갔다.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도 올 때는 20분 걸린 게 어디야?

셋째날, 자전거를 한강변으로 끌고 나가 청담대교까지 왕복 8km를 한 시간이나 걸려 다녀왔다. 그래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얏호! 출발이 서툴러 4,5번 시도 끝에 타곤 했는데 두 번 이내에 출발할 수 있다

넷째날,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사람들이 엉켜 있는 곳에서도 내리지 않고 버티려면 천천히 균형을 잡는 연습을 해야 한다. 여엉차~~!

닷새째날, 횡단보도를 자전거 탄 채 건넜다. 우와~
오늘도 청담대교까지 다녀왔는데 타면서 기어도 바꾸고 제법 여유가 생겼다.

뭘 배우든 자전거 타는 것처럼 늘면 참 배우는 맛이 날텐데…. 그놈의 탁구는 무지 어렵다. 탁구 코치한테 말했다. 자전거를 타보니 능숙해지면 저절로 몸에서 힘이 빠지더라, 몸에 힘 빼라고 강요하지 마셔. 자연히 될테니….. 모든 운동은 통한다.


한강을 자전거로 건너다

자전거 배우기에 한창 몰입해 있는 선배의 위문을 핑계 삼아 몇 년째 희망사항으로 남아있는 자전거로 올림픽대교 넘기를 실행하기로 했다. 빽빽이 꼬리를 문 채 다리 위에서 엉켜 매연을 뿜어댈 차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한강의 다리에 접근하지 않는 것이 건강을 위해 현명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때 죽기 살기로 덤벼 자전거를 배운 후 제대로 자전거를 타 본 적이 없으니, 정식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이 거진 30년만의 일이다. 기껏 일년에 한두 번밖에 되진 않지만, 아이 자전거로 동네의 골목들을 한바퀴는 돌 정도의 감은 유지하고 있었으니, 조금만 연습해 두면 올림픽 대교를 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한번 넘어가 보는 거다. 영 안되면 중간에 그냥 돌아오지 뭐.'
선배에게 30분 후쯤 도착할 수 있을 거란 전화를 미리 해 두었다. 이것저것 구경거리가 많아 자꾸 지체된다. 보도블럭의 틈 같은 아무리 옹색한 장소라도 흙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엔 온통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노란 민들레, 하얀 봄맞이꽃, 보라색 개불알풀, 별 별 꽃들이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항버스 아저씨! 고맙습니다

올림픽 대교 바로 앞. 예상치 못한 첫 번째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8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는 차도로 진입하지 않으면 올림픽 대교를 건널 방법은 가파른 계단을 이용하는 길 뿐이다. ‘자전거로는 올림픽대교를 건너지 마시오’ 란 안내판이 서 있어야 할 것 같다.

좁은 계단 가장자리에 철판이 다리 상판까지 놓여져 있다. 계단으로 자전거를 끌어 올리는 게 무리인 줄은 아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하다. 이제 길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빨리, 좀더 빨리 앞만 보고 달리는 성장만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며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한다고 배웠던 시절의 유산이다.

그래도 희망이 조금씩 감지되더니 확실히 변화가 느껴진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조금씩 넓어지고, 거품과 썩은 냄새 때문에 접근할 수 없었던 개울가에 산책로가 생기더니 이젠 개구리 울음소리도 들린다.

아슬아슬, 비틀비틀,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다리 위까지 올라오는데 성공, 절반의 성공이다. 다리 아래 한강 둔치에서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간신히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넓이로 인도가 드넓은 차도 옆에 달랑 매달려 있다.

다시 위기, 올림픽 대교에 연결된 모든 램프를 달리는 차들의 속도에 도저히 횡단보도를 건널수가 없다. 한참을 기다려도 기회를 잡기가 영 어렵다. 잠깐 속도를 줄여 주면 좋으련만, 공항버스 아저씨가 차를 멈추고 먼저 건너라고 손사위를 하신다. 나도 얼른 목례로 답한다.

자장면 왔습니다

광장동으로 진입하는 올림픽대교 북단은 남단 계단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다. 선배는 반짝반짝 빛나는 자전거를 타고 반짝반짝한 표정으로 그녀의 작은 강새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나타났다. 여고시절 체육시험을 위해 딱 하루 여의도 광장에 가서 연습한 후 처음 타는 실력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다. 상투적이긴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단 말이 실감난다.

토끼굴을 나서자마자 시야가 확 트이며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토끼굴을 나서자마자 시야가 확 트이며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 이승열
토끼굴을 통해 한강변에 이르니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도심의 풍경과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푸른 강물, 한껏 물오른 버드나무의 부드러운 흔들림, 내가 건너온 올림픽 대교의 조형물에 가슴이 확 트인다.

초보인 자전저가  바람을 가르며 달려오고 있습니다
초보인 자전저가 바람을 가르며 달려오고 있습니다 ⓒ 이승열
쌩쌩. 힘껏 페달을 밟아 잠실대교 앞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이 채 5분도 되지 않는다. 낚시를 하는 사람, 돗자리를 깔고 해바라기를 하는 사람, 도시락을 먹는 사람. 강가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입니다. 아저씨 그릇 어떡할까요? 그자리에 그대로 두시면 돼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입니다. 아저씨 그릇 어떡할까요? 그자리에 그대로 두시면 돼요. ⓒ 이승열
“앗, 배달의 기수다.”
작은 강새의 눈이 보배다. 철가방을 든 아저씨께 배달을 부탁하니 채 10분도 되지 않아 자장면과 짬뽕과 시원한 물까지 풀세트로 갖다 준다. 그릇은 먹은 장소에 그대로 두면 수거해 간단다. 바위 틈에 쪼그리고 강물을 바라보며 먹는 자장면의 맛은 환상 그 자체다. 이제 배도 부르고 다시 페달을 힘껏 밟는다. 이내 청담대교에 닿는다.

선배의 작은 강새 채은이. 고3인 언니에게 꽃반지를 만들어 주려 열심히 연습 중입니다.
선배의 작은 강새 채은이. 고3인 언니에게 꽃반지를 만들어 주려 열심히 연습 중입니다. ⓒ 이승열
제비꽃으로 꽃반지를 만들다

이미 유원치가 되어 버린 뚝섬근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초보 자전거 운전자들이 타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위험해 되돌아가기로 한다. 한적한 계단 위에 씨를 뿌려 일부러 재배한 듯 보라색 제비꽃이 가득하다.

어린 시절의 실력을 되살려 꽃자루를 떼어내고 제비꽃반지를 만들어 작은 강새 손가락에 끼워준다. 꽃반지를 낀 작은 강새의 맑은 얼굴이 햇살에 반짝인다. 고3인 언니를 위해 열심히 꽃반지 만드는 법을 배우는 예쁜 작은 강새. 토끼풀로 시계는 만들어 봤지만 제비꽃반지는 처음이란다.

천호대교까지 다시 전진. 자전거로 다섯 개의 한강 다리 밑을 통과했다. 올림픽대교, 잠실대교, 영동대교, 청담대교, 그리고 다시 천호대교. 실력이 늘면 여의도까지, 성산대교까지 달려봐야겠다. 성산대교 21킬로미터, 도전해 볼만한 거리다.

다시 한강을 건너야 할 시간. 길모퉁이 편의점에서 커피 한잔으로 한나절 한강 달리기를 마무리하는 가슴이 뿌듯하다. 한강을 건너니 참 좋다. 홈그라운드를 강조하며 자장면도 사주고, 커피도 사주고. 다시 올림픽 대교 위, 아무래도 자전거와 깊은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진한 예감이 밀려온다.

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24일 자전거일기입니다. 사진 파일을 통째로 잃어버려 선배에게 보냈던 사진을 다시 받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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