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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월 23일 2시는, 기억이 용이하다는 것 외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이왕히면 22일로 정하면 좋겠다 싶어 평일 저녁 결혼식을 생각했다가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분들 숙박비 니가 책임질 거냐"는 부모님의 한마디에 찍소리 못하고 하루를 늦춰 잡은, 제가 결혼식을 치른 날입니다.

그다지 내세울 만한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결혼을 준비하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저와 아내가 치렀던 결혼식 이야기를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생각했던 것은 단순히 사람들 앞에서 저희 두 사람의 결합을 확인시켜주는 것을 넘어, 참석한 사람들 모두에게 나름대로 뭔가 기억에 남을 만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결혼 당사자의 입장에서야 그렇지 않지만 신랑 신부 얼굴 보고, 사진찍고, 식사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이미 수없이 많은 결혼식에 참석했을 하객들께 조금이라도 뭔가 새로운 것이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담아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결혼 준비

한국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희는 일단 신혼 살림을 준비하는 일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늘 신경쓰이고 조심스런 문제인 혼수 문제도 양가 부모님의 배려로 대폭 생략하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결혼 당시 저와 아내의 경제적 능력으로는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현실적 이유가 물론 컸지만, 검소한 결혼식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저희 생각을 부모님들께서 이해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신 성의 표시로 양가 가족들에게 조그만 선물이 될 수 있는 정도의 예단비를 준비하는 선으로 혼수를 마무리했고, 저와 아내는 감사의 마음으로 양가 부모님께 손목시계를 하나씩 선물했습니다.

결혼식에 필요한 조언은 대학 시절 한때 활동했던 기독교 시민운동 단체와 연계되어 있는 결혼문화원 목사님과의 대화를 통해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과는 처음 만남이었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결혼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고 동시에 결혼 준비에 필요한 실제적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각종 단체에서 시행하는 예비 신랑, 신부를 위한 결혼학교가 많이 열리는데 가능하다면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식

결혼 사진은 새로운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결혼식 당일, 신부화장을 마친 후 식이 시작되기 전에 스튜디오에서 몇 장 찍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흔히들 한 권씩 갖고 있는 스튜디오나 야외에서 촬영, 제작한 두툼한 앨범은 없지만 아직까지 아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결혼식에서 결혼 서약문을 낭독하는 순서를 가졌는데 결혼서약문은 각자가 직접 썼습니다. 어떻게 보면 형식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서로에 대한 중요한 약속인데 적당히 쓰기 보다 직접 쓰면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라는 의도에서 였습니다.

결혼식에서는 지인들이 불러준 결혼 축가 외에 신부 측 고모 가족(고모, 고모부, 꼬맹이 동생)이 나란히 서서 저희를 위해 축가를 불렀습니다. 지인들이 불러준 축가도 좋았지만 어른과 아이로 이뤄진 한가족이 축가를 불러주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결혼식 직전, 정신없는 와중에서 저와 아내가 적지 않게 공을 들였던 것은 다름 아닌 결혼을 기념한 읽을거리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자발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유학생활을 시작한 자기(저)를 2년 반이나 기다렸는데 나한테 뭔가 특별한 것을 선물해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아내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이런 저런 궁리를 하던 와중에 나온 생각이 바로 읽을거리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 준 아내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신랑, 신부 소개, 그동안 나누었던 편지, 양가 부모님께서 결혼을 앞둔 저와 아내에게 주시는 글, 양가 부모님께 드리는 글, 신랑, 신부 지인들이 보내준 축하 메시지, 신랑, 신부가 드리는 감사의 메시지 등을 담아 8페이지 짜리 읽을거리를 만들어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분들께 드렸습니다.

바쁜 가운데 준비하느라 좀 분주하긴 했지만 결혼식 당일 읽을거리를 받아든 미혼 가운데에는 보자 마자 '나도 꼭 이렇게 만들어야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읽을거리를 받아든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괜찮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읽었을까'라는 생각은 지금도 갖고 있지만 아내가 아주 흐뭇해 했으니까 다른 건 더 바랄 게 없었습니다.

결혼식 읽을거리는 넉넉하게 찍어서 지금도 갖고 있는데, 간혹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저희의 연애, 결혼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재미로 하나씩 선물합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여전히 나쁘지 않습니다.

▲ 결혼 기념으로 만들었던 결혼기념 읽을거리.
ⓒ 강구섭
돌발적 상황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은 예상치 않게 결혼서약문을 읽는 순서에서 발생했습니다. 주례를 보신 목사님의 짧은 설교가 끝난 후 결혼서약문을 읽던 제가 그만 감정이 겪해져 울먹이면서 겨우 서약문을 끝까지 읽었던 것이지요. 반대로 아내는 차분하게 잘 읽었습니다.

그때 왜 그랬는지 특별히 이유라고 할 만한 것은 딱히 없고 그저 제가 무엇이든 마음에 동하는 뭔가가 있으면 잘 울컥하는 편이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결혼식 후 한참 동안 그때가 떠오를 때 마다 '어휴! 내가 왜 그랬지'라는 생각에 얼굴이 뜨거워지고는 했는데, 본의 아니게 발생한 그 순간이 참석했던 사람들에게는 퍽이나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는 좀 안 했으면 싶은데, 결혼식에 참석했던 분들은 어김없이 그 이야기를 꺼냈고 괜히 얼굴이 화끈해져 서둘러 화제를 돌리려고 해도 "그렇게 감격스러웠냐?, 정말 극적이었어"라고 말하며 껄껄 웃고는 했습니다.

"남편이 참 감정이 풍부한 사람인가 봐요"라는 그다지 칭찬같지 않은 말을 아내도 종종 들었는데 아내는 그런 말이 그리 싫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저 엉뚱하게만 느껴지는 그 일이 떠오르면 요즘도 전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인데 그나마 그 순간이 사람들에게 '감동적 순간'으로 기억되어 있다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녀평등 폐백

이것 역시 완전히 독창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특별한 것이 없었던 결혼식에서 그나마 새로웠던 것은 대화를 나눴던 목사님으로 부터 힌트를 얻어 준비한 남녀평등 폐백입니다.

기존의 폐백이 갖고 있는 전통적 의미도 나름대로 중요하지만 폐백이라는 기회를 통해 대면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양가 식구들이 짧게나마 인사를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양가 가족과 직계 친척이 함께 하는 폐백을 준비했던 것이지요.

남녀평등 폐백이라고 이름은 거창하지만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형님의 사회로 먼저 시댁, 처가댁 부모님께 각각 인사(절)를 드리고 시댁 친척, 처가댁 친척들께는 단체로 한 번씩 모두 네 번 인사를 드린 후 짧은 덕담을 듣는 순서로 진행했고 인사를 모두 마친 후에는 자리에 함께 하신 양가 친척들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 처음 대하는 얼굴들이라 어색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형님의 재치 있는 사회로 그런대로 화기애애 하게 양가가 자리를 함께 했던 괜찮은 시간이었습니다.

폐백음식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고 꽃 바구니를 준비해 양가 부모님께서 앉아 계셨던 앞자리 테이블에 올려 놓았습니다. 남녀평등 폐백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양가 어른들께 먼저 사전 설명을 드리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비현실적 결혼식?

결혼식을 나름대로 무난하게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양가 부모님께서 저희의 생각을 많이 이해하시고 동의해 주신 덕택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어째 어디 끼어들 틈도 없이 애들 둘이서 다 결정을 해버리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아내와 저의 생각에 기꺼이 동의해 주셨고 저희에게 주시는 편지글을 써 주시는 등 결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대단한 무엇인가가 있었던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괜찮았던 결혼식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전혀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결혼식은 양가 가족, 가까운 친지 일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정말 섭섭해 할 몇몇 지인들만 모아놓고 조촐하지만 신랑, 신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하는 결혼식이었습니다.

단순히 사람만 적게 모인 썰렁한 결혼식이 되지 않으려면 보통의 결혼식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할 거라는 것을 물론 생각 못한 것은 아니지만 소박하지만 나눔이 있는, 사실 우리의 사회적 상황에서는 비현실적이기도 한 그런 결혼식에 관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당시 품었던 그런 비현실적 생각은 결혼을 준비하면서 접했던, 제가 생각했던 방식으로 결혼식을 치렀던 사람들의 결혼 후일담을 모아 놓은 책을 읽으면서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결혼식을 치렀던 분들 또한 대체로 결혼 준비 과정에서 '이렇게 해도 되나, 청첩장 안 돌렸다고 한 소리 듣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을 품기도 했지만 나중에 결혼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쉽지 않은 일인데 참 잘했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내용을 접하면서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아내에게 그런 작은 결혼식을 제안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내는 여러 가지 사정을 설명하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비췄고 저는 당사자인 아내의 동의도 얻지 못한 채 결국 생각을 접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요즘 아내는 "그때는 정말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결혼식도 괜찮았을 것 같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결혼식에 대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 가끔 저는 아내에게 "나중에 우리 아이들 결혼식은 그렇게 해야 겠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아내는 "치, 그게 뭐 자기 결혼이야, 아이들 결혼이지"라고 응수하구요.

맞는 말입니다. 저의 결혼식이 아니니까 당연히 제가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지만 그때가 되면 결혼 당사자인 아이들과 상대편 어른들께 넌지시 물어볼 생각입니다. 소박한 결혼에 대한 저의 계획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덧붙이는 글 | 결혼 에피소드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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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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