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순천시 석정마을의 당산나무엔 이상한 점이 있다. 똑같은 장소인데 한쪽은 풍성하게 잎이 맺혀져 있지만 다른쪽은 앙상한 가지뿐이다.
순천시 석정마을의 당산나무엔 이상한 점이 있다. 똑같은 장소인데 한쪽은 풍성하게 잎이 맺혀져 있지만 다른쪽은 앙상한 가지뿐이다. ⓒ 서정일
낙안면의 끄트머리, 지방 국도 857번 도로를 따라 벌교에서 선암사로 가는 길에 석정마을이 있다. 병풍 같은 앞산을 바라보며 비스듬한 언덕배기 양지바른 곳에 50여 가구가 자리하고 있다. 예전엔 인근부락에서 가장 잘살고 인구도 제일 많았다고 회고하는 이영휴(78) 할아버지. 하지만 지금은 여느 초라한 시골마을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당산나무와 청림대터를 아무렇게나 관리해서 그렇다는 말을 덧붙인다.

일반적으로 마을을 방문하여 듣게 되는 소리는 대부분 비슷하다. 특히 당산나무에 관한 얘기는 너무나 똑같아서 질문을 하고도 어색할 때가 있다. 만약 석정마을도 그저 흔한 일반 당산나무였다면 기자의 관심 사항에서 멀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달랐다. 같은 장소에 있는데 한쪽은 잎이 푸르고 많아 하늘을 뒤덮을 정도인데 다른 쪽은 가지만 앙상해 너무 초라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속에 둥근원 표시가 된 곳이 가지를 자른 부분이다. 15년전의 일인데 아직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사진속에 둥근원 표시가 된 곳이 가지를 자른 부분이다. 15년전의 일인데 아직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 서정일
"가지 하나를 잘라서 그렇습니다"라고 거드는 곽기수(56)씨, 15년 전 '정심정'이라는 마을쉼터를 만들면서 거추장스러워 옆으로 뻗어 나온 가지 하나를 잘랐다고 한다. 그 후부터 나무가 시들해져 마을주민들이 거름을 주고 정성을 다했지만 좀처럼 회복할 기미가 없어 결국 무당을 불러 굿 까지 했는데도 아직까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는 잎도 늦게 피고 풍성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상식적으로 나무는 가지치기를 해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둥지를 잘라도 살아가는데 15년 전에 가지 하나를 잘랐는데 오늘날까지도 잎이 늦게 피고, 그것도 아주 적게 핀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다른 곳에서 듣지 못한 색다른 이야기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더니 또 하나가 더 있다면서 마을 앞을 지나 선암사 쪽으로 가는 도로를 가리킨다. 그곳은 마을 형성의 중요한 곳이며 경치가 아름다워 시를 읊고 한가하게 휴식을 취하던 청림대가 있는 곳이다. 도로가 나기 전까지 마을주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 사는 이영휴(78)씨와 곽기수(56)씨는 두가지 일에 관해서 비교적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이 마을에 사는 이영휴(78)씨와 곽기수(56)씨는 두가지 일에 관해서 비교적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 서정일
멀리서 바라봐도 아름드리나무들이 삐죽 삐죽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있어 한눈에도 예사자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내려다보면 아래쪽으로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있고 옆으로는 물이 흐르고 있어 흔히 말하는 명당자리 같은 느낌이었다.

"고개를 자른 겁니다."

산이 평야를 향해 치달아 끝 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청림대 터. 그런데 도로를 내면서 산줄기를 관통했는데 청림대를 머리로 보자면 고개를 자른 형태다. 멀리서 바라보니 영락없는 그 모양새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곳일까 하는 궁금함에 가까이 가 보니 널찍널찍한 자연석이 둥근 원형모양으로 널브러져 있다. 사람들의 발길은 오래전에 끊긴 듯 잡초가 무성하고 옆으로 넘치게 흘렀다는 계곡물은 고랑으로 변했다. 멋들어진 장소가 하루아침에 아무 흉물처럼 변해 버린 것.

사진에서 길을 중심으로 오른쪽 느티나무가 풍성하게 자란곳이 청림대터다. 사진안쪽 흑백사진은 쉼터로 이용했을 자연석이 널브러져있는 모습.
사진에서 길을 중심으로 오른쪽 느티나무가 풍성하게 자란곳이 청림대터다. 사진안쪽 흑백사진은 쉼터로 이용했을 자연석이 널브러져있는 모습. ⓒ 서정일
300여년이 넘은 당산나무의 가지 하나를 잘랐다. 1600년경 마을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청림대의 멋스러운 풍광의 중심을 동강냈다. 그 후 급작스럽게 가구 수가 줄고 마을이 쇠퇴하게 되었다고 믿는 주민들. 현대인들은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자연은 인간들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알고자 노력하고 싶지 않고 그냥 그대로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진실이라 알리고 싶은 것은 어디선가 또다시 이런 일을 되풀이 하고 있을 사람들 때문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