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1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및 비정규 권리입법 쟁취 결의대회' 가 개최됐다.
21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및 비정규 권리입법 쟁취 결의대회' 가 개최됐다. ⓒ 강이종행
"엄마, 아빠에 이어 우리 아들까지 비정규직 생활을 하고 있다.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걱정이 크다. 아들에게만큼은 비정규직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는데, 죽기보다 싫은데…."

이덕순(56)씨의 주름이 더욱 짙어진다. 지하철 신정차량기지에서 청소용역원을 하는 이씨는 평생을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왔던 자신의 굴레를 아들에게만큼은 지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8년 넘게 하루종일 먼지 쌓인 지하철 차량과 차량기지를 쓸고 닦으면서도 버틸 수 있었는 건 "가족과 내 일터의 소중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정규직에 대한 시선과 차별은 한숨만 늘게 했다고 한다.

"최저임금 보장이 가장 큰 문제다"

이덕순씨.
이덕순씨. ⓒ 강이종행
21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 '불법파견 정규직화 및 비정규 권리입법 쟁취 결의대회' 현장에서 만난 이씨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최저임금 보장이 가장 큰 문제다. 64만1800원 본봉에 연월차 수당 등을 합하면 실수령액은 72만원 정도다. 사실 오는 9월에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해도 우리는 바로 혜택을 받을 수도 없는 실정이다."

왜냐면 용역원들은 모두 용역업체 소속 파견근무자이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는 지하철 공사와 최저 낙찰제를 통해 결정된다. 이번 업체는 이미 공사측과 계약을 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올해 말까지는 올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임금에 대한 문제 외에도 용역원들에 대한 차별은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다.

"1년차와 10년차의 월급이 같다. 복리후생이 안돼 있다. 힘들게 일을 하다가 쉴 수 있는 휴게실이 가건물로 마련돼 있었는데 그마저 지난달 말 없앤 뒤 마치 헛간을 연상케 하는 장소를 던져줬다. (지하철) 공사는 자질구레한 책상정리, 오물수거 등까지 우리들에게 시키면서 정작 우리들의 휴게실은 용역업체에서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일은 시키고 돈은 안 내겠다는 것 아닌가."

"10년 전과 연봉 총액 바뀌지 않았다"

김광복씨.
김광복씨. ⓒ 강이종행
하이닉스 반도체 비정규직 출신 김광복(40)씨는 지난해 12월 31일부로 해고됐다. 하청업체의 파견근무자가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내가 근무를 했던 10년 5개월간 연봉이 똑같았다"며 "임금은 올라갔지만 각종 수당과 연월차 등이 매년 깎이다 보니 결국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숨을 쉰다. 물가는 상승하고 아들이 커가면서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제는 월급조차 받지 못하게 됐다.

"회사를 다닐 때 정규직에 비해 임금, 상여금이 많이 부족했다. 언제 그만둬야 할 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월급이 적은 것은 그나마 낫다. 사실 IMF 때는 3개월이나 6개월마다 계약을 다시 했으니까…"

김씨는 동료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사례들도 소개했다.

"혼자만 벌어 살기 힘들기 때문에 한 동료의 아내가 전자회사에 취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전자파 독성 때문에 눈 근처에 종양이 생겼다고 진단 받았다. 3번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고통으로 잠을 제대로 못 이룬다고 한다."

100일째 천막시위, 기아차 사무계약직 해고자들

김은성씨
김은성씨 ⓒ 강이종행
김은성(31)씨는 지난해까지 기아자동차 영업소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19일 '나가달라'는 날벼락같은 회사의 요구를 받았고 31일부로 해고되고 말았다.

용역업체 파견으로 2년, 이후 계약직으로 2년 6개월을 일해오면서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3년 미만의 계약직들을 해고하지 않으면 정규직으로 전환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규직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주말특근, 자정 이후까지 근무해도 추가수당은 꿈도 못 꿨다. 눈치가 보여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신경성 피부질환까지 앓게 된 김씨는 "(회사측은)법적으로 문제가 될까봐 집까지 찾아와 '사직서'를 강요했다"며 "회사야 밉지만 집에 찾아온 전 직장 상사를 매몰차게 할 수 없어서 사직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이렇게 김씨와 같이 기아자동차에서 해고된 여성 사무계약직 노동자들은 54명. 이 중 18명이 기아차 소아리(경기도 광명시) 공장 앞에서 지난 1월 11일부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다음달 26일이면 꼭 100일째가 된다.

"농성을 하고 있는 동료 중에는 임신을 해 입덧을 참는 사람도 있고 아이가 돌을 맞은 애기 엄마도 있다. 다들 힘겹게 투쟁을 하고 있지만 너무나 불합리하게 해고를 당했기 때문에 곧 복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김씨는 "다 똑같이 교육받고 세금도 내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비정규직이란 말 자체가 없어졌으면 한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날 만난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최근 정부의 '비정규직 특별법'과 '김대환 노동부장관의 발언'을 강력히 비판했다. 이덕순씨는 "김 장관은 노동부장관이 아니라 사용자 장관"이라고 말했고, 김광복씨는 "정말 내 앞에 있으면 그냥 두고 싶지 않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