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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 텃밭이에요. 가운데가 걸어다니는 길이고, 앞쪽에는 딸기나무가 자라고 있어요. 그리고 저 멀리는 대파가 자라고 있구요. 이렇게 꼼지락 꼼지락 자라고 있는 것들을 다 뽑아 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집앞 텃밭이에요. 가운데가 걸어다니는 길이고, 앞쪽에는 딸기나무가 자라고 있어요. 그리고 저 멀리는 대파가 자라고 있구요. 이렇게 꼼지락 꼼지락 자라고 있는 것들을 다 뽑아 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 권성권
처음엔 그냥 그것들이 잡초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 뽑아내고 다른 것을 심으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헌데 차츰차츰 똑똑한 몸체를 하고서 흙 밖으로 자기 몸을 밀어 낼 때에 비로소 그게 딸기나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두 나무면 그것을 뽑아내고서 다른 것들을 심어본다지만 너무 많아서 그렇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키우기로 다짐했습니다. 헌데 놀라운 것은 그것들이 봄비를 맞고 또 따뜻한 봄 햇살을 맞으면서 점점 더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뿌리에 뿌리를 이어가며 또 잎에 잎을 이어가며 그 녀석들은 자꾸자꾸 새끼줄을 쳤습니다.

그 오른쪽 텃밭과는 달리 왼쪽 텃밭은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쓸모없는 잡풀들이 여기저기 피어올라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뽑아내고 또 삽으로 땅을 파서 다른 씨앗을 심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복판에다 무엇을 심어야 할지 고민 고민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전주에 계신 장모님께서 대파를 보내오셨습니다. 너무 많아서 그걸 다 냉장고에 담아 두기는 무리였습니다. 몇 뿌리만 추려서 맛난 요리를 해 먹고 나머지는 그 텃밭에 심기로 했습니다.

헌데 대파를 심던 그날은 햇볕이 너무나 쨍쨍 내리쬈습니다. 아무리 많은 물을 준대도 다 말라비틀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들을 심던 그날 저녁에 봄비가 억수 같이 퍼부어주었습니다. 정말로 고마운 봄비였습니다. 다음날이 지나고 또 그 다음날이 지나면서 내 눈길은 자연스레 대파에 쏠렸습니다. 그 대파들은 너무나 싱싱한 모습으로 살아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그 대파는 완전 딴판으로 변해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수많은 봉우리들이 죄다 솟구쳐 있었던 것입니다. 어디서 그렇게 생겨난 것인지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봉우리가 없는 것들은 그냥 놔두고 봉우리가 있는 것들만 골라서 뽑아낼 생각이었습니다. 그건 어차피 먹지도 못하고 또 먹어 봤자 맛도 덜할 것 같았던 까닭이었습니다.

장모님께서 보내 준 대파가 봄비와 봄 햇살을 머금고 쑥쑥 자랐습니다. 그런데 대파에 봉우리가 너무나 많이 피어 올랐습니다. 아마 반절 이상은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게 다 쓸데가 있다네요.
장모님께서 보내 준 대파가 봄비와 봄 햇살을 머금고 쑥쑥 자랐습니다. 그런데 대파에 봉우리가 너무나 많이 피어 올랐습니다. 아마 반절 이상은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게 다 쓸데가 있다네요. ⓒ 권성권
그래서 장모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위를 생각해서, 멀리 충주 땅에서 보내 온 대파였으니 그냥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전화를 걸었던 것입니다. 장모님에게 봉오리가 생겨 쓸모가 없을 같으니, 그냥 뽑아 버리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 드릴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모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머님. 그거요, 어머니께서 보내 주신 대파요. 다 잘 살았어요.”
“어떻게 했는데.”
“예, 비가 많이 와 줘서요. 저절로 살아났어요.”
“그래. 그럼, 잘 키워서 해 먹고 싶을 때 해 먹으면 되네.”
“예. 그런데요, 있지도 않던 봉오리들이 절반 이상은 생겼는데요.”
“그렇지. 우리 집 것들도 그렇더라고.”
“그럼, 그냥 뽑아 버릴까요. 쓸모도 없을 텐데요.”
“아니야, 이 사람아. 그것 나중에 씨앗으로 모아 놓으면 내년에 또 뿌리면 될 걸세.”
“아, 그런가요. 그걸 몰랐네요.”

어쩌면 그날 내가 하찮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또 한 번 더 생각지 않았다면 그날 난 그 귀한 것들을 잃었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때론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정말로 하찮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이 생각할수록 정말로 귀중한 사람이었던 것을, 그것을 나중이 돼서야 더 깨달을 때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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