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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보다 먼저 하객들의 주연이 베풀어졌다.
결혼식보다 먼저 하객들의 주연이 베풀어졌다. ⓒ 김우출
이 무한경쟁시대에 도시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좋은 직장이나 잘 나가던 직업을 훌훌 벗어 던지고 귀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통나무집이나 흙집을 짓는 학교를 나오거나 동호회를 만들어서 심산유곡에 집을 짓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나빠진 건강을 다스리기 위하여 요양 차 시골생활을 자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용기가 없어서 실천을 못하고 있을 뿐이지 필자 역시 늘 동경하고 있는 삶이다.

어릴 때부터 동생 친구인 최아무개를 오랜만에 만났더니 달라진 가치관으로 엄청난 변화를 보여주었다. 내가 알고 있던 최아무개가 아니었다. 너무나 걸림이 없고 편해 보였다.

어느 지인의 결혼식에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알만한 사람들이 많이 올 거라고 했다. 신랑은 남방 차림으로 축하객들 속에 묻혀 있었으며, 이미 막걸리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결혼식에서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여기에 소개한다. 필자는 오래 전에 <계간 영주문화>의 '문화풍속도'라는 꼭지에서 '결혼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다음 손님 때문에 시간의 여유도 없이 속도감 있게 새로운 신랑 신부를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예식장 문화를 꼬집은 적이 있다.

산업사회의 시스템을 갖춘 이런 결혼식보다는 모교 운동장에서 천막을 치고 축하객들에게는 국말이 밥과 막걸리를 대접하는 결혼식을 제안했었다. 이를테면 모교의 은사를 주례로 모시고 예식을 치른 후, 마을 사람들 전체가 참여하여 하객들과 함께 즐기는 축제로 승화되는 그런 결혼식을 꿈꿔왔던 것이다.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 구름 밖에 길은 삼십 리/ 그리워서 눈감으면/ 산수유 꽃 섧게 피는 꽃길 칠십 리.

- 곽재규(시인)의 '산수유 꽃 필 무렵'


ⓒ 김우출
미문(美文)으로 알려진 김훈이 산수유 꽃은 이미지 꽃이라 했다. 봉화 봉성면 동양리 뒷드물 산수유 마을을 소개했던 정용환(사진작가)은 "봄날 오후 늦은 햇살을 받아 샛노란 빛을 토해내는 꽃송이를 보고 있으면 세기말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이 즐겨 사용한 점묘법이 생각난다"고 했다.

이렇게 나른한 봄날 봉화통로를 거쳐서 다미안 병원 맞은편 골프연습장 옆으로 상망동 팻말을 보고 가다가 철도건널목을 건너면 단운리가 나온다. 이곳에 10년째 살고 있는 황수권 씨가 이날의 주인공이다.

그는 경남 통영 출신으로 1980년대 대중음악계에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해진 신중현, 전인권, 이런 분들과 함께 작업했던 대표적인 건반주자이다. 그래서 서울서 오신 손님들은 대부분 대중음악에 종사하는 분들이라고 했다. 이 날 결혼식 축가는 '강산에'가 불렀다.

사물놀이로 분위기를 돋우고 나니 그림이나 조각, 건축을 한다는 사람들도 기분 좋게 취하고, 시인, 소설가는 물론이며, 천연염색이나 동양자수까지, 아니 문화예술 언저리에 맴도는 모든 사람들이 무용이나 음악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졌다. 이렇게 사는 우리네의 평소 삶이 문화요, 예술인 것을…….

축시

- 황수권과 이순희의 결혼을 축하하며 -


여기에 세 사람이 서 있네
억 만겁(億 萬劫)의 시간을 너머
파도를 넘어
산맥을 넘어
이들은 참으로 귀한 인연으로 만났네

이들에게는 수많은 어려움과
가눌 수 없는 절망의 시절이 있었네
하지만 말하지 않겠네
지금 이 순간부터는 잊기로 하세

이들이 집 하나 지었네
우주의 작은 별 위에
조그만 사랑의 집 한 채 지었네

이제 이들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찬바람 불지 않으리라
비틀거리며 넘어지지 않으리라
길은 환히 열려 있고
지붕 위에서 새들이 노래하리라
눈부신 햇살이 꽃봉오리 피어나게 하리라

그리하여 이들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리라
힘들고 소외된 이웃들의 등을
아무도 몰래 밀어주리라
아무도 몰래 기도하리라

2005. 3. 26 신동여(도예가)

덧붙이는 글 | ‘결혼 에피소드’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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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주고등학교, 선영여고 교사. 한국작가회의 회원. 대경작가회의, 영주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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