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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4대문과 4소문
조선시대 4대문과 4소문 ⓒ 종로구

봄바람 부는 화창한 주말, 궁궐을 찾는 이들도 부쩍 늘어난다. 조선궁궐 중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은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일 것이다. 필자는 경복궁을 왼쪽에 두고 동십자각을 따라 삼청동 길로 오른다. 최근 복원해 놓은 경복궁 담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는 연인들도 봄의 한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발길은 청와대로 가까워지면서 마음은 무거워진다. 삼청동 길로 오르다보면 군인이 경계를 서는 초입을 만나게 된다. 그 너머에 조선 4대궁궐의 하나인 북대문(숙정문)이 유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조차 북대문을 직접 방문한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방문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곳이다.

4월초순경 청주대학교 학생들이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의 주제를 ‘숙정문’으로 잡고 <문화유산연대>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현장 방문을 할 수 없었다. 숙정문 일대를 관할하는 수도방위사령부에 협조요청을 했지만 결정권은 청와대 경호실에 있으니 그쪽으로 협조요청을 하라고 했고 경호실측도 구태의연한 명분으로 현장 방문을 불허를 했다.

필자는 2003년 종로구가 문화재위원, 시민단체 관계자 등을 초청, 현장 방문했던 기억들과 서울시립대 부설 서울학연구소, 한신대박물관에서 진행한 ‘서울소재 성곽조사보고서’, 기타 문헌 등의 발자취를 따라 북대문을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1975년 복원되기 이전의 숙정문.
1975년 복원되기 이전의 숙정문. ⓒ 종로구
조선시대 4대문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북쪽의 문인 ‘숙정문’을 직접 답사한 일반인은 전무하다. 숙정문은 경복궁에서 청와대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수도방위사령부 초소 너머 삼청터널 상단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4대문 중 유일하게 산에 위치해 있으며 사적 제10호로 지정된 서울성곽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어 개별적으로 지정문화재로 된 숭례문, 흥인지문과 차이가 있다. 조선 태조 5년(1396년) 창건되었으며 연산군 10년(1504년)에 원래 위치에서 약간 동쪽인 지금의 자리로 이건했다.

북대문은 독재 권력과 남북분단에 갇힌 문화유산이다. 숙정문은 1968년 이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이 산책이나 등산이 자유로웠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시절인 1968년 ‘1·21 김신조 사건’으로 인해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한 김신조 사건으로 생명의 위협을 강하게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까지도 임진강을 넘어 북한산 자락을 타고 청와대 밑까지 침투했던 소위 김신조 침투로 대부분은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경기도 연천군은 비무장지대와 인접한 곳에 안보관광코스를 조성했다. 바로 김신조 침투로다. 여전히 남북이 대치하는 분단상황에서 DMZ 인근에 안보관광코스 조성을 허용한 것은 군사안보에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서울 북악산에 위치한 숙정문도 김신조 사건 때문에 군사보호구역으로 설정,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는 점에서 개방을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조선 태조가 도성을 쌓을 때의 명칭은 숙정문이 아니라 ‘숙청문’이었다. 성문 이름이 바뀐 이유에 대한 문헌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연산군 10년에 이건, 홍예석문을 만든 이후 숙정문으로 바꿔 부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산군 이후 <중종실록>부터 숙정문으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17세기 이후에 숙청문과 숙정문을 뒤섞여 쓰이고 있지만 공식기록인 <대전통회>에는 숙정문으로 적고 있다.

숙정문. 독재와 분단에 의해 잊혀져 있던 숙정문은 시민의 품에 돌아와야 한다.
숙정문. 독재와 분단에 의해 잊혀져 있던 숙정문은 시민의 품에 돌아와야 한다. ⓒ 박신용철

숙정문은 풍수지리상 주산인 북악산 정상부에 4소문 중 하나인 자하문과 좌우로 위치해 있다. 숙정문으로 오르는 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던 탓에 송림(松林)이 울창하다. 소나무 숲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다보면 성루가 보이고 홍예(무지개) 모양의 문을 만난다.

숙정문이다. 조선시대 양주와 고양을 왕래하는 통로로 이용되었지만 축성 18년 만에 폐쇄되었다. 태종 13년(1413년) 6월에 풍수학자 최양산이 “풍수지리학상 경복궁의 양팔이 되는 창의문과 숙정문을 통행하는 것은 지맥을 손상 시킨다”고 상서를 해 북문을 폐쇄하고 길에는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지했다.

또한 태종 16년(1416년)에는 ‘기우절목’을 만들어 가뭄이 심하면 숙정문을 열고 숭례문을 닫았으며 비가 많이 내리면 숙정문을 닫고 숭례문을 열게 했다‘고 전해진다.

풍수지리적으로 보지 않더라도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습한 찬 기운의 바람일 수밖에 없어 건강에도 좋지 않고 농촌사회에서도 곡식에게 해를 주게 된다. 평상시에는 문을 닫아 놓았다가 가뭄이 들게 되면 숙정문을 열고 숭례문을 열어놓았다는 문헌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가뭄이 들 때 습하고 찬 기운을 가로막고 있던 숙정문을 열어 도성에 비를 조성하려는 과학적인 사고의 일환이었던 것.

숙정문에는 유교사회에 갇힌 여성들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진다. 왕명에 의해 폐쇄된 이후 숙정문에는 사람들의 출입이 뜸해져 여인네들의 나들이 길로 자리 잡게 된다. ‘남녀칠세부동석’을 강조했던 조선시대였지만 꽃피는 춘사월에 꽃나들이를 간 양반집 쳐녀들의 가슴에도 봄바람이 불었을 게다. 숙정문으로 나들이를 나온 처녀들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사내들과 눈이 맞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 사회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남녀간의 사랑이란 권력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법.

“…양주 북한산으로 통하는 숙정문 역시 지금 폐문하고 쓰지 않으니, 속전된 바로는 이 성문을 열어두면 성안에 상중하간지풍(桑中河間之風)이 불어 폐했다 한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규경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쓴 숙정문을 폐쇄한 이유다. 상중하간지풍은 ‘풍기문란’을 뜻한다. 조선시대 실학자 조재삼도 <송남잡기>에 “북대문을 열어두면 양가집 부인들에게 음풍(淫風)이 일어 닫아 두었다”고 적고 있다.

숙정문은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후인 1975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루가 복원되었고 ‘숙정문’이라는 편액이 걸렸다. 숙정문 개방 논의는 2003년 처음 제기되었다. 당시 김 모 종로구청장은 청와대에 숙정문 개방을 건의했고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시민단체 관계자등 50여명이 현장을 방문할 수 있었다.

당시 종로구는 사전 관람예약제 등을 검토한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현재 논의의 진전은 없다. 당시 종로구가 숙정문 개방을 추진한 것은 ‘숙정문 개방에 대한 주민 여론’이 높아서가 아니라 총선을 한해 앞둔 시점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문제는 청와대에도 있다. 당시 종로구의 건의를 받은 청와대측은 “개방할 경우 보안상 문제가 없는지 등을 검토해보겠다”고 했지만 묵묵부답인 것은 매한가지다.

김성한 문화유산연대 사무처장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졌던 곳이기 때문에 전면개방은 문제가 있다”면서도 “우거진 송림 등 자연생태계가 우수하고 문화유산인 점을 고려, 방문자 수를 제한해 영향을 최소화하는 대책을 수립하고 개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문화유산은 국민의 문화유산 향유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개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하루빨리 독재와 남북분단의 과거시대에 갇혀 있는 숙정문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 ‘문화향유권’을 되돌려 받는 날을 기대해 본다. 청와대와 종로구는 박정희 시절부터 군사 권력과 남북분단 이데올로기에 의해 유배당해온 숙정문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데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 '신새벽의 새꿈꾸기(http://blog.naver.com/storyrange.do)'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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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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