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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바다 '주꾸미 축제' 현장
서해바다 '주꾸미 축제' 현장 ⓒ 허선행
다함께 뭉칠 수 있는 휴일인 식목일을 오랫동안 손꼽아 기다려 왔습니다. 다섯 집이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모처럼의 휴일에 늦잠도 자고 싶을 텐데 정해진 시간에 다들 모였습니다.

각자 간식을 준비해왔는데 전날부터 준비했다는 치즈 넣은 샌드위치와 조카딸이 먹기 좋게 모양내서 준비했다는 오렌지가 우리들의 미각을 돋웠습니다.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간식을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하랴 바깥 풍경 보랴 입과 눈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겨울인 줄만 알았더니 들판에 초록빛이 아스라이 보이고, 이름 모를 풀꽃과 봄에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꽃들이 봄을 알려 줍니다. 봄이 아니라 여름처럼 덥게 느껴지는 날씨 때문에 가끔 열어 젖힌 창으로 맛볼 수 있는 봄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졌습니다.

청주에서 2시간 30분을 쉬지 않고 달려 충남의 서천에 갔습니다. 가는 길에 아주 오랜만에 보는 시골장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나무묘목 몇 단과 찐빵과 만두 등 먹거리. 몇 개 안 되는 좌판이 장터의 전부였지만 훈훈한 시골인심이 느껴졌습니다.

몇 해 전 조개잡이를 왔던 소나무가 병풍처럼 처진 바닷가를 지나니 동네 어귀에 쭈구미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모르고 왔지만 동백꽃도 보고 쭈구미도 먹을 수 있다니 행운이라고 이야기 하는가 하면 “어이구, 복잡해서 잘못 왔다”고 이야기 하는 일행도 있었습니다.

한가한 차도를 가다보니 어느새 눈앞에 바다가 보입니다. 그곳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 있어 차들과 사람이 엉겨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간신히 주차를 하고 돌아서는데 현수막이 눈에 띄었습니다.

ⓒ 허선행
“저희 축제를 찾아 주심을 환영합니다. - 서해바다 주꾸미 일동 - ”

이런 세상에! 잔인하기조차한 문구입니다. 살아 보려고 꿈틀거리는 것을 먹겠다고 오는 사람들에게 환영한다는 문구를 주꾸미가 말하는 것처럼 써 있었습니다.

바닷가에 위치한 식당은 모두 만원입니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여러 식당 중에서 그래도 자리가 있을 만한 곳으로 들어서서 잽싸게 자리가 비는 곳에 앉았습니다. 일행이 열 명이 넘으니 자리 차지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 허선행
아수라장이 따로 없습니다. 주문하는 소리와 이야기 소리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꿈틀거리는 주꾸미를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뒤적이더니 이내 찌르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이 제철에 나는 음식이 맛있다고 이곳으로 모였나 봅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소라껍데기에 들어 있다 줄줄이 들어 올려지는 주꾸미를 잡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렇게 잡은 주꾸미인가 봅니다.

ⓒ 허선행
집에서 맛 볼 수 없던 싱싱한 해물을 맛 볼 수 있었습니다. 먹물 때문에 냄비 안이 새까매졌습니다. 검은 색이 몸에 좋다고 하니 먹어 보기는 해야겠는데 선뜻 숟가락이 가지 않습니다.

샤브샤브를 해서 먹고 그 국물에 국수를 넣어 덩달아 까맣게 된 국수가닥도 먹었습니다. 먹는 중에 “누가 메추리알 먹을 사람~”하며 냄비 속에서 메추리알을 꺼내 보입니다. 아무도 먹겠다는 사람이 없자 옆에 분에게 잡숴보시라고 권합니다.

그런데 글쎄 메추리알이 아니고 주꾸미 알이라고 하네요. 맛은 못 보았지만 생김새가 메추리알처럼 생겼지만 씹히는 감촉이 다르다고 합니다. 서로 알을 찾겠다고 냄비 안을 뒤적였지만 끝내 찾지 못했답니다.

ⓒ 허선행
다른 상에 철판볶음도 시켜서 밥까지 볶아 먹으니 아이들도 맵다 소리도 안 하고 잘 먹습니다. 숟가락을 놓자마자 아이들은 바다로 나가고, 어른들은 사람 구경에 사는 이야기 하느라 쉽게 일어나지 못합니다.

처음으로 가보는 동백나무숲 입구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여든 몇 그루가 심어져 있다는 숲에 터널처럼 생긴 곳에서 아이들은 마치 술래잡기라도 하는 양 내다보고 어른들은 사진 찍어 주기에 바쁩니다.

모두들 일상을 잊고 편안한 휴일을 즐기는 모습입니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작은 섬이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동백정’이라고 써 있는 정자의 문양에 관심을 두는 일행 중에 사회선생님을 보니 밖에 나와서도 직업을 알겠다고 한마디 했습니다.

“축제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봅시다.”

누군가 일행 중에 우스개 소리를 하며 엿장수의 장단소리를 들으며 각종 좌판을 둘러보았습니다. 아까 식당에서 보았던 주꾸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스티로폼 상자에 포장을 하느라 여념없는 장사 하시는 분들도 축제 분위기에 빠진 듯합니다. 어깨춤을 추시는 아주머니 일행을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흥이 납니다.

‘ 주꾸미! 너 때문에 오늘 하루 잘 보냈단다. 하지만 우리를 환영한다는 문구가 마음 아프기는 했어.’

속으로 한 마디쯤 해야 제 마음이 편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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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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