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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 역사는 넓고 높다. 열차가 빨라진 만큼. 키 클 준비를 하고 있는 대나무들이 오고가는 사람들을 지켜 본다. 시간을 움켜쥐고 자신들의 모모를 찾아서 떠나는 사람들을. 역사 아래로 수많은 열차들이 멈추고 출발한다. 윤택해지고 넓어진 역사. 우리들 삶도 그랬으면.
용산역 역사는 넓고 높다. 열차가 빨라진 만큼. 키 클 준비를 하고 있는 대나무들이 오고가는 사람들을 지켜 본다. 시간을 움켜쥐고 자신들의 모모를 찾아서 떠나는 사람들을. 역사 아래로 수많은 열차들이 멈추고 출발한다. 윤택해지고 넓어진 역사. 우리들 삶도 그랬으면. ⓒ 박태신
구례로 가려고 인터넷으로 열차 예매를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입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고속철도를 개통하면서 새로운 예매시스템을 준비하는 중이라 전화예매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철도공사 직원에게 물어보고 나서 전라선과 호남선은 용산역으로 출발지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인터넷으로 들어가니 수월하게 예매를 할 수 있었습니다.

첫 단추를 다시 잘 끼우니 뒷일이 수월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비단 이런 것만이 아니라 많은 일들에 대한 사소한 예비지식과 이해가 없어 고생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불만을 털어놓게 되지요. 사람 관계도 그러하지 않을지. 상대의 성격과 특이한 모습을 인정하면 그 다음 관계는 수월해지지요.

서울역 신역사처럼 용산역도 근사한 모습을 자랑합니다. 높은 천장과 넓은 실내, 깔끔하고 쾌적한 환경 그리고 유리창으로 된 천장… 날이 어두워서 많지는 않지만 봄 햇빛들이 넓은 실내로 들어와 칭얼거리고 있습니다. 햇빛들이 들어오기에 창이 아직 청소가 덜 되어 있어서요. 그러면서 로비 한 곳에 정착 준비를 하는 대나무들을 감싸고돕니다. 봄빛은 봄꽃을 보러 떠나는 제 마음 속에도 이미 들어와 고단했던 추억들에 따스한 온기를 쬐어줍니다.

가림의 미덕이라고 할지. 이 창을 보면 그런 생각이 난다. 가림이, 침묵이, 다소곳함이 꼭 소통의 막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말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노출하는 녹색 잎의 나무처럼. 그런 말없는 대화가 절실하기도 하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없어진 창...
가림의 미덕이라고 할지. 이 창을 보면 그런 생각이 난다. 가림이, 침묵이, 다소곳함이 꼭 소통의 막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말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노출하는 녹색 잎의 나무처럼. 그런 말없는 대화가 절실하기도 하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없어진 창... ⓒ 박태신
장식용 창을 봅니다. 친절한 상담원이 있는 안내 센터 옆에 있습니다.(여기에다 메모지를 부탁했는데 임시변통이나마 업무 일지를 몇 장 뜯어주었습니다.) 격자무늬로 된 유리창이니 창은 창이지만 밖을 향해 있지 않으니, 또 열고 닫을 장치도 없으니 창으로서 역할을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안쪽의 조명을 불투명의 가치로 걸러 내보냅니다. 불투명하니 빛은 창 전체로 고루 분산됩니다. 분명 안쪽에는 일련의 조명기구가 놓여져 있겠으나, 그걸 투명 유리로 보였다면 밉상스럽기도 하거니와 빛의 강도가 판이한 불균질의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불투명 유리의 가치는 이런 장점이 있습니다. 내면의 모난 모습을 감싸주면서 내면의 본 역할도 드러내 주는 그런 역할. 속의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솔직함만이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벽이었으면 밋밋했을 그리고 여러 광고로 치장되었을 공간을 이런 창으로 장식하니 새롭습니다.

역사 전체를 빛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려 했던 것은 아닌지. 천장과, 위쪽 벽면 사방도 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비록 내부의 창일지언정, 막힌 느낌을 조금이라도 덜게 하려고 창을 많이 만든 것 같습니다.

천장에는 대형 모형 전시물이 매달려 있습니다. 아니 날아다닙니다. 실내 한 곳에서는 아이스 링크에서 볼 수 있는 청소차가 부산하게 돌아다닙니다. 대나무들은 광화문 교보빌딩 로비에 있는 것들처럼 자랄 수 있겠지요. 그만큼 용산역은 높고 넓습니다.

개인적으로 직선을 선호한다. 직선의 아련한 진실을 좋아한다. 과거와 미래가 일직선 안에 공존하면서 현재를 증거한다. 만약 이 직선이 곡선의 호위를 받는다면... 두 팔로 에워싸는 곡선의 몸짓이 직선을 위로한다.
개인적으로 직선을 선호한다. 직선의 아련한 진실을 좋아한다. 과거와 미래가 일직선 안에 공존하면서 현재를 증거한다. 만약 이 직선이 곡선의 호위를 받는다면... 두 팔로 에워싸는 곡선의 몸짓이 직선을 위로한다. ⓒ 박태신
역사 출입구 앞에는 부속 건물이 높게 솟아 있습니다. 전면 유리창의 곡선 형태로 본 역사를 감싸고 있습니다. 태양에너지를 받는 반사판 같기도 합니다. 벽면에서 돌출되어 나온 곡선의 유리 구조물은 안쪽의 여러 설치물들을 살짝 가리기도 하고 드러내 보이기도 합니다.

양 옆에도 건물이 있어 건물과 본 역사의 사이는 하늘이 뻥 뚫린 사각형의 공간이 됩니다. 달음박질할 수도 있는 통로 겸 작은 마당이 됩니다. 사방이 높은 건물과 건물로 둘러싸여 만들어지는 빈 공간은 잠시 주변과 차단되어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독자적인 공간이 됩니다.

중곡동에 있는 한 성당이 이런 구조입니다. 건물은 높게 솟아 있고 그 밑을 지나 입구에 들어서고 마당에 들어섭니다. 본 역할을 하는 장소는 가능하면 공중에 떠 있습니다(1층이 아닌 그 이상의 공간에 있습니다). 사방이 막혔지만 하늘은 열려 있어 고양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문을 연 지 1년이 지난 지금 이 건물에는 여러 상가가 들어서 예전의 말끔함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개찰구를 통해 열차가 있는 1층으로 내려갑니다. 용산역에는 모든 종류의 열차들이 서고 떠나고 하는 독특한 역입니다. 지하철에서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군용열차에서 이제는 고속열차까지 일렬로 서 있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서울역은 지하철과 기타 열차가 딴살림을 하지요.

가장 빠른 열차를, 중간 빠르기로 달리는 열차 타기 전에 바라보면서 괜히 겸연쩍어 한다. 행선지를 알리는 빨간 전자문자 표시까지도 남달라 보인다.
가장 빠른 열차를, 중간 빠르기로 달리는 열차 타기 전에 바라보면서 괜히 겸연쩍어 한다. 행선지를 알리는 빨간 전자문자 표시까지도 남달라 보인다. ⓒ 박태신
며칠 전 4월 1일로 개통 만 1년을 맞이한 고속 철도. 언론에서만 보던 고속열차를 무궁화호 탑승하기 전에 바라봅니다. 저런 모습이면 어렸을 때 잘 보던 만화 영화 ‘은하철도 999’처럼 우주를 유영하는 열차의 외관이라고 해도 무난할 것 같습니다.

탑승구 옆 전자 표지판에 도착지명이 빨간 글자로 연달아 지나갑니다. 끝이 없이 기다란 열차는 느림이라는 미덕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빠릅니다. 하루 동안에 부산을 구경하고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에 나도 혹하고 맙니다. 이미 빠르게 움직이도록 태생지가 정해져 버린 존재하고는 그 빠름의 속성으로 교감할 도리밖에요.

구례 가기 얼마 전 3월에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느린 열차라고 할 정선선 관광열차를 탔습니다. 아직 겨울이라 창밖의 풍경은 쓸쓸했습니다만, 재작년 여름 때 본 이 열차 밖 풍경은 기다란 풍경화 그 자체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같이 탄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창밖 조양강 주변을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 명인 승무원과 관광객이 담소를 나누고 사진도 같이 찍고 하는 풍경이 연출되는 곳이었습니다. 산과 산 사이 넓은 터에 자리잡은 종착지에서는 열차 앞 기관차가 분리 연결되는 장면을 동네 풍경처럼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그 정선선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번 다루겠습니다.

빠름을 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최신의 문명물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나서 내 감각의 속도를 확인해 봅니다. 빠름과 느림은 사실 아무런 조건이 되질 못합니다. 시간의 가감만이 있을 뿐. 여행은 어떤 빠르기의 열차든 타는 순간부터 시작되지요. 행선지의 도착 시간은 편의성의 관건일 뿐. 고생하며 여행하던 순간들이 아련하게 기억납니다. 내 감각의 속도는 가장 빠른 열차보다 빠르다고 믿고 싶어집니다.

아마도 고속열차 안에서는 그저 안락함을 느끼면 그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안전하고 빠르고 튼튼한 대신 지불해야 할 것이 있는 것이겠지요. 아마도 저도 저 열차를 타고 남해 바다를 보러 갈 것입니다. 자신의 태생에 충실할 열차에 고마워하면서요.

봄꽃을 보러 떠났습니다. 봄은 서서히 남쪽부터 점령하고 북상합니다. 봄의 기운만큼 위력이 강한 점령군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반기는 점령군이지요. 그걸 기다리기가 아쉬워 열차를 타고 냉큼 달려갑니다. 마치 서울의 봄과 남녁의 봄은 다르기라도 하듯이.

덧붙이는 글 | 작년 이맘때 산수유와 벚꽃을 보러 구례 산수유 마을과 화개를 갔다왔습니다. 진작에 올려야 했습니다. 고속철도와 용산역사도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원고와 다음 번 구례 산수유 마을 갖다온 소감을, 산수유가 활짝 핀 이맘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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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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