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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 앞에서

▲ 내 마음의 고향인 외가, 그새 초가지붕에서 함석지붕으로 바뀌었다.
ⓒ 박도
청개구리가 부모가 죽은 뒤에야 제 잘못을 알고서 울듯이 나도 그와 같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떠나신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태 외가를 찾고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어느 해 가을,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네 식구가 외가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외가에서 사과를 한 상자 주었는데 네 식구가 그걸 갖고 택시를 타려니 쉽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택배로 쉽게 해결되었을 테지만 그때는 그런 편리한 유통회사가 없어서 웬만한 짐은 일일이 가지고 다녀야 했다. 외가는 교통이 외진 마을이라서 김천 시내 택시를 불러서 타고 김천역에서 서울행 열차를 타고 왔다.

서울역 플랫폼에서 힘들게 사과상자를 들고 역 광장까지 들고 나왔지만 택시를 잡아서 집까지 가는 게 문제였다. 네 식구에 짐까지 있는 걸 본 기사가 쉽사리 문을 열어주겠는가.

그래서 나는 주차장에 대기 중인 택시기사에게 다가가서 사정을 말하고 미터 요금에다가 2000원을 더 주겠다고 흥정을 한 뒤 사과상자를 트렁크에 싣고 뒷자리에 가족을 태우고 나는 앞자리에 탔다.

택시기사는 천천히 출발하면서 내 집이 고지대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였더니, 곧장 내리라고 하면서 차를 세우려고 했다. 순간 엄청 화가 났다.

“세워? 이 사람이 내가 잠바를 걸치고 있으니까….”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순간 택시기사는 깜짝 놀라면서 태도가 돌변했다. 그는 아마 내가 경찰이나 아니면 고위공직자로 본 모양이었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제가 몰라봤습니다.”

그는 내 집까지 가면서 비굴할 정도로 굽실거리면서 차도 막히고 손님도 없기에 먹고살고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잔뜩 늘어놓았다.

내 집 앞에 내린 뒤 나는 미리 정한 대로 웃돈까지 주고 난 다음, 제발 좀 손님에게 그러지 말라고 타일러 보냈지만 그가 그 뒤로 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날 아이들이 택시 뒷좌석에서 웃음을 참느라고 혼났다면서 그 기사가 신분증을 보자면 어떻게 하실 참이었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 친구가 감히 내 신분증을 보자고 그럴 수도 없을 테지만, 만일 그랬다면 서울역 앞 남대문경찰서 교통계로 가려고 했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진국일수록 목소리가 낮다

안흥으로 내려가면서 아이들만 살기에 단독주택인 내 집이 불편해서 팔려고 내놓았다. 하지만 마땅한 임자가 없어서 팔리지 않던 터에, 내 집 아래 빈터에 주택이 새로 들어섰다. 그래서 그쪽으로 난 하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자 지난 가을에 한 토목 기술자에게 일을 맡겼다.

그리고는 안흥에 내려왔는데 이튿날 저녁, 그가 하수도에다가 플라스틱 관을 연결시켰다면서 공사대금으로 40만원을 요구했다. 멀리서 보지도 못한 처지지만 공사비가 터무니없이 비싼 것 같다고 했더니, 나머지 공사는 재료비만 받겠다고 하며 기분 좋게 온라인으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그를 믿고서 인터넷뱅킹으로 돈을 보냈다.

그런데 그게 나의 실수였다. 그는 곧 해주겠다는 공사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돈은 10월에 건넸는데 12월이 지나도록 곧 해준다면서 이윽고 해를 넘기더니, 그때부터는 겨울철이라서 공사를 할 수 없다고 또 미뤘다.

다시 몇 차례 전화 끝에 지난 3월 10일 무렵 나타난 그는, 다른 업자를 불러와서 다시 견적을 내고서는 80만원을 새로이 요구했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80만원 속에는 이미 지불한 40만원이 포함되었냐고 묻자, 그는 지난번 돈은 하수도 구멍 뚫은 공사비라고 우겼다. 공사를 지켜본 사람에 따르면, 두 사람이 한 시간도 안돼 하수도 구멍을 뚫어 관을 연결했다고 증언했다.

아무리 돈 가치가 없고 인건비가 비싸다고 하지만 해도 너무 하고, 그 모든 것을 녹음해 두지 않았다고 세 치 혀로 사람을 농락한 게 너무 분했다. 아내는 손재수가 들어서 돈을 잃어버린 것으로 치자고 극구 말렸지만, 분을 참을 수가 없어서 큰 소리가 폭발했다.

그때까지 나는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만 알았을 뿐인데, 내가 주소를 묻자 그가 왜 그러냐고 반문했다. 경찰에나 검찰에 고발하여 전문가의 입회로 잘잘못을 가리기 위하여 그런다고 하자, 그는 가르쳐주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그럼 좋다고, 요즘 경찰에서는 전화번호만 알아도 소재 파악을 할 수 있다고 하자, 그제야 그는 갑자기 꼬리를 내리면서 지난 번 공사비의 절반은 돌려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에게 앞으로는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한 뒤에 그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큰 목소리가 통하는 사회는 정치 후진국이다. 선진국일수록 작은 소리로, 아니 아무 말 없이도 사회가 제대로 굴러간다. 끝까지 참지 못하고 큰 소리쳐서 문제 해결한 나도 전근대적인 사람이리라.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연재해 오던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단행본으로 펴냈습니다. 

- 책이름 :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 펴낸 곳 : 도서출판 지식산업사
- 쪽수 : 295 쪽 (일부 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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