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 충격으로 인해 전화박스 밖으로 퉁겨 나가버렸다. 출입구가 아닌 옆면 유리벽을 밀어 무너뜨리고 밖으로 나가떨어진 것이다. 위에서 유리 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전화박스 유리벽이 산산조각 난 것이다.

김 경장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손을 짚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공원의 어두운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누군가가 달려가는 발소리가 들렸지만, 얼굴을 들어 확인하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화장실 뒤에서 몸을 웅크린 채 슬쩍 고개를 들었다. 분명 주위에 그자들이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위협만 하고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위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적이 감돌 정도였다.

'이렇게 된 바에는…….'

김 경장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공원을 둘러싼 철망을 넘어 곧장 주택가로 향했다. 달리면서 줄곧 뒤를 돌아보았지만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공중전화 박스를 부숴 버린 놈들은 분명 자신을 노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자신을 따르고 있지 않다니……. 어쩌면 멀찍이 떨어져서 미행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한참동안 가늘고 긴 천 조각 같은 어둠침침한 길을 달려갔다. 가면서 줄곧 뒤를 살폈지만 미행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여태 끈질기게 따라오고, 공중전화 박스에 있는 자신을 위협하던 그들이 아닌가? 이렇게 쉽게 포기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자세히 살펴도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숨어 있다가 거리를 두고 몰래 자신을 뒤따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골목을 한참동안 돌아 자신이 묶고 있는 여인숙으로 향했다. 옴이라도 걸린 것처럼 껍질이 벗겨진 담벼락이 골목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담 사이로 보이는 집들은 무더운 여름이라 창문을 열어놓고 덧문과 빗장까지 열어 놓았지만 빛은 전혀 새어나오지 않았다. 달빛만이 괴괴하게 골목길을 비출 뿐이었다.

그 골목길을 몇 번이나 서성이며 주변을 살폈지만 미행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을 놓친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일부러 놓아주었거나. 어쨌든 이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도 될 것 같았다.

2 층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리자 예의 그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이 투시구를 열어 밖을 살피다가 문을 열어주었다.

김 경장은 방에 들어오자 말자 방바닥에 쿵하고 쓰러져 누웠다. 여태 웅크렸던 긴장감이 풀리며 온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풀어졌다. 오랫동안 달렸던 덕분에 팔다리가 쑤셨고, 머리가 뻐근해져왔다. 동시에 알 수 없는 의문들이 또다시 그의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여러 가지 장면들이 플래시백처럼 되살아날 뿐, 하나로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될 뿐, 일과 일을 연결하고 있는 실이 뒤엉켜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도대체 박물관에 있는 그 유적들이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게 무엇일까?'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고개를 저었다. 피곤해서 몸이 가라앉을 지경이니 제대로 생각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육감에 지나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어떡해서든 그 단서를 얻고 싶었다.

머리에 여러 가지 단서들이 뒤엉켰다. 무엇인가가 분주하게 떠오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실체를 몰라 답답할 뿐이었다. 김 경장은 누웠던 몸을 겨우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열어 놓은 좁은 창문 사이로 후텁지근한 바람이 몰려왔다.

좁은 방안에 갇혀 있다 시피 하자 문득 북만(北滿)의 광야가 떠올랐다. 구질구질한 골목길 대신 높은 언덕과 광활한 대지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는 곳. 그들에게 발각된다 해도 그런 곳에서 잡혀가고 싶다. 여기는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데 문득 스쳐 가는 어떤 것이 있었다. 동시에 머리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아주 작은 구멍이 서서히 확대되고, 그 틈에서 빛이 스며 나왔다. 그러다가 어디에선가 생각이 딱하고 멈추어 섰다.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순간 김 경장은 커다란 대못이 숨골에 박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왼쪽 무릎을 땅바닥에 대고 오른쪽 무릎을 곧추세운 채 몸을 구부린 자세 그대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켜 다시 방에서 나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