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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칼 하인즈 그라서(Karl-Heinz Grasser, 36) 재무부장관은 계속되는 스캔들로 인해 빈축을 사고 있지만, 5년이 넘도록 장관으로 일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위공직자들이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줄줄이 낙마하는 한국의 정치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 스캔들이 일었던 그라서 장관의 개인 홈페이지 메인화면. 사적으로 이용했으나 장관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기부받아 운영했다.
ⓒ Grasser
겨우 서른한 살의 나이로 오스트리아 최연소 재무부장관에 임명되던 2000년에만 해도 그의 이미지는 센세이셔널한 여피족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몇 차례의 스캔들이 터지면서 그의 이미지는 부도덕함은 물론 사생활까지 문란한 공인으로 타락해버렸다.

오스트리아산업협회로부터 돈을 기부 받아 만든 홈페이지 스캔들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간 것으로 유명하다. 그라서 장관은 기부금으로 조달된 홈페이지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홈페이지와 관련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민들은 공무원이 사적인 협회로부터 어떻게 돈을 기부 받아 홈페이지를 운영하느냐며 몰아세웠지만, 그라서 장관은 형법상 잘못된 게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이후 공영방송국인 ORF라디오와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홈페이지스캔들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또한 몇 년간 사귀었던 변호사 여자친구를 차버리고, 재무부에 근무하던 남미출신의 나탈리아 코알레스 디에즈(Natalia Corrales-Diez, 28)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그의 사생활은 국민들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되기 시작했다. 재무부장관과의 ‘사내연애’라는 이유로 코알레스 디에즈는 직장을 떠나야만 했고, 두 사람은 작년 봄에 약혼했다.

약혼녀와 그라서 장관은 작년 연말 몰디브의 한 섬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쓰나미와 마주했다. 다행히 장관이 머물던 리조트에는 피해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장관으로서 쓰나미 피해지역의 오스트리아 국민들 및 부상자들을 돕기는커녕 2주간의 여행을 즐기다 고위공직자에게만 발급되는 VIP항공 마일리지 카드로 비행기 클래스까지 업그레이드 받아 돌아온 쓰나미 스캔들은 가장 기가 막힌 스캔들로 꼽히고 있다. 당시 그라서 장관은 이를 질책하는 ORF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의사도 아닌데 부상자들을 어떻게 돕느냐”며 황당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3월 13일 프랑스 파리 드골 공항에서 세계적인 크리스털 재벌 스와로브스키의 상속녀 피오나 스와로브스키(Fiona Swarovski, 40)와 키스를 주고받는 사진이 시사주간지 뉴스(News)에 실리면서 약혼녀와 상속녀, 장관과의 삼각관계가 대중에 노출되었다.

마침 3월 16일 자살미수로 추정되는 약혼녀 코알레스 디에즈의 자동차 교통사고가 잇따르면서 세 사람의 스캔들은 오스트리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피오나 스와로브스키는 뉴스(News)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라서 장관이 약혼녀와 지난 토요일 헤어졌다”며 “우리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라서 장관은 이 모든 스캔들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 단지 약혼녀의 교통사고에 대해서만 “수동기어를 사용하던 약혼녀가 자동기어로 바꾼 새 자동차에 익숙하지 않아 교통사고가 났다”고만 언급했다.

▲ 재무부 웹사이트의 그라서 장관 소개 페이지
ⓒ Ministrium
또한, 자신이 즐겨 입는 브랜드가 아메리칸 캐쥬얼브랜드인 ‘타미 힐피거(Tommy Hilfiger)'라며 타미 힐피거의 영문로고가 크게 쓰인 티셔츠를 들고 찍은 사진이 공공연히 언론에 노출되면서 국민들로부터 “CF모델이냐 재무부장관이냐?”는 빈축과 더불어 “친인척이 타미힐피거를 수입해 판매하는 게 아니냐”는 등의 의혹까지 샀다.

그라서 장관의 이러한 철없는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의 여론은 장관의 사생활과 공직에 뚜렷한 선을 긋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공인의 사생활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권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고위공직자들의 이혼, 재혼 등의 사생활은 웬만해선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라서 장관의 스캔들은 공과 사를 떠나 언제나 언론에 노출되어 “그라서 장관이 유명세를 더 타기 위해 언론공세를 펼치는 게 아니냐”는 여론까지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오스트리아 여론은 그라서 장관에게 청렴결백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공무원인 하랄드 쿰머(Harald Kummer)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장관의 사생활이 복잡한 것은 못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고위공직자에게 가장 필수적인 것은 행정능력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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