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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빈 검찰총장 내정자.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소신이 강하고 신중하며 일처리가 꼼꼼하다."

새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김종빈(58·사시 15회) 서울고검장에 대한 검찰 안팎의 주된 평가다. 하지만 그는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시절 '내사 대상자 명단유출'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김 내정자는 전남 여수 태생으로 검찰 내 호남 인맥의 선두 주자로 주목받아왔다.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8월 인천지검 차장에서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발탁되면서 사시 동기생 선두그룹에 진입했고 승진가도를 달렸다.

김 내정자의 명성을 날리게 한 사건은 신한국당이 국세청을 동원해 대선자금을 모금했던 사건인 이른바 '세풍'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이 사건은 당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으며, 김 내정자는 수사를 잘 지휘해 광주고검 차장으로 검사장 승진을 했다. 이어 전주지검장과 법무부 보호국장을 거쳐 2002년 대검 중수부장으로 화려하게 돌아온다.

특히 대검 중수부장으로 재직중이던 2002년에는 호남 출신이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인 홍업씨 등 동교동계 비리를 밝혀내는 수사를 지휘했다. 당시 정치권의 온갖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대통령의 아들을 둘러싼 비리의 사슬을 밝혀내고 홍업씨를 구속기소하는 등 원칙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줬다. 때문에 국민들의 찬사를 받기는 했지만, 정치권으로부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원성과 함께 보복성 좌천설이 나돌기도 했다.

또 중수부장 시절에 '이용호 게이트' 수사를 맡아 검찰 선배인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 김대웅 전 광주고검장을 소환조사하기도 했으며, 공무상 기밀누설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하는 악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수부장으로서 공적자금 비리 합동수사반을 무난하게 지휘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김 내정자는 2003∼2004년 대검 차장으로 재임하면서 고비 때마다 송광수 검찰총장을 잘 보필해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잘 마무리하는데 기여했다는 평이다. 특히 그는 대선자금 수사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2003년 10월경 과로로 인해 왼쪽 눈에 실핏줄이 터져 간단한 수술을 받았다. 이때 송광수 총장이 입원중이던 그를 찾아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외에도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그의 이력중 하나는, 지난 1990년 수원지검 강력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유전자 감식 기법을 수사에 처음 도입했다.

이처럼 화려한 경력을 쌓은 김 내정자에게도 고비는 있었다.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으로 재직할 당시 내사대상자 200여명의 명단이 언론에 유출돼 곤욕을 치렀으며, 이 사고로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호된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지난해 대검 차장에서 서울고검장으로 인사가 났을 때 검찰총장 후보군에서 멀어진 것이 아닌가라는 관측이 팽배했으며, 이번에 총장 내정 소식이 알려지자 "특별한 관운을 타고났다"는 평가를 검찰 안팎에서 받기도 했다.

한편 김 내정자는 학자풍의 외모에 걸맞게 명지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진술거부권과 그 침해 여부가 문제되는 사례', '헌법소원의 대상', '언론의 자유와 기본권 상충에 관한 연구' 등 세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김 내정자는 독실한 불교신자여서 일주일에 한번은 주변 사찰을 찾아 불공을 드리는 등 종교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에서 손꼽히는 바둑 애호가로 아마 3급이며, 전주지검장 시절 이창호 9단을 초청해 대국을 하기도 했다.

술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고, 부인 황인선씨와 사이에 딸 셋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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