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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채유정은 담당 공안을 만나기 위해 경찰서에 들어서고 있었다. 눈앞의 천장에 철사 줄로 드리워진 '수사1계'의 하얀 팻말이 먼지 냄새를 풍기며 흔들리는 게 보였다. 채유정은 주춤거리며 그 수사 1계로 들어섰다. 밖은 뿌연 안개 속에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는 굵어졌다 가늘어졌다를 반복하며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담당 공안은 체포한 범인에 관한 조서를 꾸미고 있는 중이었다. 김 경장이 출입국장에서 탈출한 사건이 여기까지 전해지면서 한바탕 난리가 나있었다. 이미 그에게 수배가 내려졌고, 대부분의 형사들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출동한 상태였다. 불법 체류자 한명을 잡기 위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았다.

채유정은 담당 공안에게 다가가 안 박사를 죽인 범인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을 표시했다.

"그건 안될 소립니다. 비록 범인이라고 하지만 그 신분은 보장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전 그 범인이 박사님을 살해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금품을 노리고 침입하였다가 주인에게 들키자 엉겁결에 살해한 것입니다."

"단순한 살인 강도일 리가 없어요."

"댁이 수사를 하는 거요? 이미 사건은 종결되었으니 그만 물러가도록 하시오."

담당 형사는 그렇게 일러 놓고 다시 조서 작성에 열중했다. 그는 컴퓨터가 옆에 있는데도 타이프를 두들기고 있었다. 두 손가락으로만 사용하여 치는데도 속도가 빨라 글자를 금방 적어갔다. 채유정이 조서를 들여다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지만 형사는 몸으로 그것을 가렸다. 경계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녀가 옆에 있는 게 신경이 쓰이는 지 형사가 퉁명스럽게 내뱉았다.

"도대체 언제 갈 거요?"

"범인을 만나게 해주기 전에는 가지 않을 겁니다."

"마음대로 하슈."

형사는 서랍에 넣어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어 라이터를 찾아 손을 더듬는데 채유정이 얼른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형사가 씩, 웃어 보이며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채유정은 그 연기를 맞으면서도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 보자 오전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녀가 여기에 온 지 한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형사는 그녀에 대해 조금도 개의치 않고 조서를 작성했으며, 그 조서 내용을 자신의 사건 수첩에 옮겨 적고 있었다. 그때 수사계 내의 전화가 울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 전화를 받을 사람이 없어 벨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젠장 모두 어디들 간 거야?"

형사가 투덜거리며 전화를 받으러 갔다. 채유정은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슬쩍 옆으로 내밀었다. 타이프에 걸린 조서를 몰래 살피는 것이다. 조서는 모두 세장 분량이었다. 범인의 주소는 맨 앞장에 있을 것이다. 전화 통화는 길어지고 있었다.

형사는 통화를 하면서 가끔 이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통화에 열중했다. 채유정은 그 사이를 노렸다가 얼른 맨 앞장을 펼쳐 읽었다. 범인의 주소가 분명히 적혀 있는 게 보였다. 메모할 여유가 없는 그녀는 얼른 그 주소를 머리에 입력 시켰다. 몇 번이나 중얼거리며 외우고 있는 것이다.

형사가 전화를 받고 자리에 왔을 때 그녀는 가버리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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