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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17년만에 처음으로 ‘경위서’를 쓰고, 이것도 모자라 윗사람에게 불려갔다. 일을 잘못해서도 아니고, 지역주민과 마찰이 있어서도 아니고 민원이 발생해서도 아니다. 단지 화요일 저녁에 보건진료소에서 잠을 자지 않고 편찮으신 팔순노모가 혼자 사는 집에 가서 같이 잠을 자고, 늦은 저녁과 이른 아침 식사를 챙겨드리고 출근했다는 이유가 전부이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대학원을 다니는 날이므로 강의가 끝나고 진료소로 돌아오면 월요일은 밤 10시, 화요일은 저녁 8시 30분쯤 된다. 월요일은 강의가 끝난 후 진료소로 돌아왔고, 화요일은 지난주부터 심한 몸살감기로 고생하고 계시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집에 다니러 갔었다.

마침 수요일 아침에 군 보건소 직원들이, 보건진료원이 진료소에서 잠을 잤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하러 아침 일찍부터 다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어머니 뵈러 집에 갔다가 아침에 출근한 날이 바로 그 날이었다.

지난주부터 편찮으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진료소를 벗어나기가 어려워 주말까지 기다리다 겨우 주말에 찾아뵙고 오긴 했지만, 계속 편찮으신 어머니에게 전화로만 안부를 묻기가 죄송스러워 학교가 끝나고 찾아갔던 게 문제가 되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어머니는 내게 늘 슬픔과 애처로움으로 다가온다. 얼마 전에 팔순을 지내신 어머니는 시골집에 혼자 사신다. 고향도 아니고 그 동안 사시던 동네도 아닌 낯선 마을에 낯선 사람들과 겨우 얼굴 익히며 살고 계시다. 그렇게 어머니를 시골에 혼자 두고 사는 자식들 중 어느 누가 단 하루라도 마음 편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계시는 곳과 내가 근무하는 보건진료소는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다. 그 한 시간의 거리 중간쯤에 대학교가 있어 그 동안 학교가 끝나면 가끔 어머니에게 들리곤 했다. 그 동안 어머니에게 다니면서도 늘 조마조마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이렇게 일이 커지고 보니 앞으로 어머니가 편찮으시더라도 찾아가 뵙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편찮으신 어머니 찾아뵙고 몸은 좀 어떠신지 여쭤보고, 약은 제대로 들고 계시는지 챙겨 드렸다. 또 심한 감기 몸살로 입술이 부르트고 입맛을 잃으신 어머니에게 따뜻한 국 한 대접 끓여 드리고, 쑤시고 아프다는 무릎에 파스 몇 장 붙여 드리고 왔을 뿐인데 난 지금 죄인 아닌 죄인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보건진료원이 보건진료소 내에 거주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이 의무를 알고 보건진료원이 되었다지만 보건진료원도 사람이다. 하늘에서 혼자만 뚝 떨어져 나온 사람이 아니라 어머니가 있고 자식이 있고 남편이 있는, 그저 평범한 보통의 직장인이다.

아무리 관할구역 내의 거주의무가 있다지만 난 앞으로도 어쩌면 지금처럼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다시 경위서를 쓰고 윗사람에게 불려 다닐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보건진료소에서 생활을 하긴 하지만, 무생물인 돌멩이가 아닌 숨 쉬며 살고 있는 사람인 내가 어떻게 1주일 내내, 하루 24시간을 진료소에만 머무를 수 있겠는가. 앞으로도 어머니가 편찮으시면 주 중이라도 찾아가 뵈어야할 테고 퇴근 시간이 지나면 일주일에 두 번은 대학원도 가야하고, 이른 아침엔 운동을 하거나 가까운 온천에 목욕을 다녀오기도 할 것이다.

그 시간 어느 때라도 누군가 진료소를 감시자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난 결국 적발될 수밖에 없다. 퇴근시간이 지나 볼 일을 보러 밖으로 나갈 때마다 나는 죄인이 되고, 혹시 누군가 감시하러 오는 것은 아닐까 싶어 불안하겠지만 어쩌겠는가. 난 여전히 엄마의 든든한 보호자여야 하고, 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 진료소 일에만 매달릴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이 땅의 보통 직장인 중의 한 사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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