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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긴 겨울 동안 새봄을 마련했다가 3월이 되자 활짝 그 자태를 드러내는 군자란. 꼭 봄의 태양을 닮았습니다.
춥고 긴 겨울 동안 새봄을 마련했다가 3월이 되자 활짝 그 자태를 드러내는 군자란. 꼭 봄의 태양을 닮았습니다. ⓒ 김형태
3월, 봄꽃같은 아이들

해마다 피는 꽃이거늘 왜 늘 새로울까?

해마다 만나는 아이들이거늘 왜 늘 설렐까?


3월이면 골리앗을 넘어뜨린 소년 다윗을 본 것처럼.

비갠 후 색안경을 쓰고 나타난 무지개를 본 것처럼

나는 자꾸만 솜사탕이 되고 물풍선이 된다


겨울을 밀어내고 함박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봄꽃처럼

어둠을 밀쳐내고 해맑게 미소짓고 있는 우리 아이, 아이들......


봄꽃 같은 아이들. 화사한 봄꽃과 해맑은 아이들이 참으로 닮은 꼴입니다.
봄꽃 같은 아이들. 화사한 봄꽃과 해맑은 아이들이 참으로 닮은 꼴입니다. ⓒ 김형태
시인의 말

3월,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며 시작합니다.

종업식, 졸업식... 진급, 입학... 2월하면 어쩐지 이별, 아쉬움이란 단어가 떠오르고 3월하면 어쩐지 만남, 새로움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종점 같은 2월을 보내고 출발점 같은 3월을 맞이했습니다.

교단에 있는 저에게는 특히 2월은 12월 같고, 3월은 정월 같이 느껴집니다.

3월 1일, 새해 첫날 같은 기분입니다. 송구영신하는 마음가짐으로 이 달과 이 날을 맞습니다. 아직도 작년 아이들이 눈 안에 그렁그렁합니다.

교편을 잡은 지 1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저는 아직도 풋내기 교사처럼 계속되는 만남과 이별이 낯설기만 합니다.

얼마 전, 밖에 나가 겨울나무를 보았습니다. 나무는 알몸으로 새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마다 용솟는 꽃망울이 마치 여인의 젖가슴 같았습니다. 작년 가을,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잎새들과 열매들을 모두 떨어 버리고 하얀 된바람에 속절없이 울었을 나무...

그러나 나무에게는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이미 몸 안에는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알몸으로 혹독한 겨울을 넉넉히 이겨낸 것도 어쩌면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새 봄을 준비하고 있는 겨울나무를 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부끄러움을 읽습니다. 나는 얼마나 나무와 닮은 꼴일까? 어떤 점에서 선생님이란 직업은 나무줄기와 같습니다.

1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들었던 아이들을 겨울과 함께 떠나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3월이 되면 이별의 아쉬움에 젖어 있을 새도 없이 새로운 아이들의 얼굴을 익히고 더불어 힘겨운 씨름을 해야 합니다.

내일, 입학식... 35명의 학생을 다시 맞이합니다. 엊그제 오리엔테이션하는 날 한번 보았지만 아직 한 명도 얼굴을 제대로 모릅니다.

내일 입학하는 우리 반 아이들을 위해 이름을 외웁니다. 1번 강병무, 2번 김근호, 3번 김상인...

그러나 웬일인지 쉽게 암기되지 않습니다. 그새 기억력이 나빠진 것일까요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꾸만 작년 아이들이 오버랩되기 때문입니다. 1번 강병무... 그러면 자꾸만 작년 1번 강동구가, 2번 김근호... 그러면 작년 2번 강병호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작년 아이들의 번호와 이름이 빨리 내 머리 속에서 사라져야 새로운 아이들의 번호와 이름이 쉽게 자리잡을 텐데, 이렇게 진도가 느려 큰 일입니다. 과연 오늘 35명의 학생 이름을 다 외울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가슴에 조금은 따뜻함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위로가 됩니다. 그만큼 작년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겠지요.

새 반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면서 작년 아이들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때는 교편을 놓아야 되지 않을까요?

저는 지금 더디지만 기쁨 마음으로 아이들의 번호와 이름을 외우고 있습니다. 1번 강병무... 2번 김근호... 3번 김상인...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 <좋은교사>에도 송고되었습니다.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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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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