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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사상사
하루키의 상상력은 하늘을 찌르며 종종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표현을 뽐내기도 한다. 물론 그가 상상하는 세계, 정체성이 흐트러지고 독특한 종말의 예감하는 세계는 아주 두렵고 무시무시하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은 밤에는 꼭 무서운 꿈을 꾼다. 하늘에서 정어리 비가 내리기도 하고 온 세상이 벗어날 수 없는 벽으로 막혀 있기도 하고 때로는 거대한 식빵에 짓눌려 압사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들은 참 재미나다. 그처럼 다방면에 박식한 사람과 유머러스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특히 그의 그런 특징은 수필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무라카미 단편 소설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다. 너무나 아름다운 발상인 빵가게 습격사건이나 재습격사건, 그리고 코끼리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우스우면서도 재밌고 독특하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여행 중에 쓴 <먼 북소리>도 아주 재밌는 이야기로 한번 책을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사실 그의 소설은 수필에 비해 재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어렵고 난해하고 읽고 나면 괜히 몽해지는 느낌까지 들곤 했다. 하루키의 문학 세계가 가장 명확히 반영됐다는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그런 편견 속에서 읽게 된 그의 초창기 소설이다.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전혀 다른 두개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이 두개의 세계 즉,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얼핏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의 전혀 다른 얘기지만 종국에는 놀라운 결말을 맺으며 자연스럽게 하나로 통합되는 세계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의식을 통해 만들어진 세상으로 그의 상상력에 새삼 다시 놀라게 한다. 정말이지 그의 말처럼 '상상이란 건 새처럼 자유롭고 바다처럼 넓다'.

주인공 ‘나’는 뇌 활동을 통해 정보를 처리해 주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늙은 과학자의 의뢰를 받으면서 ‘나’에게는 이상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노박사가 진행하는 뇌 연구의 대상이 되고 연구 결과를 노리는 집단으로부터 위해 공작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의 방해로 ‘나’는 의식을 잃게 된다.

주인공 ‘나’는 뇌 속에 두가지 인식의 노선을 갖고 있다. 하나는 무의식 세계의 깊은 곳에 안치된 세계의 끝.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세계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일반 인식의 세계다. 그러던 어느 날 박사는 나에게 샤프링을 시키고 나의 뇌 속에 제3의 인식 세계를 만든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 세계는 무의식 속에 안치되었던 나의 제1 세계를 형상화했고 나는 무의식의 세계와 현실 세계에서 혼돈하게 된다.

그리고 외부 조직의 방해로 뇌의 인식을 제대로 돌릴 수 없게 되자. 나는 현실 세계와의 연결 끈이었던 제1인식과 제2 인식을 잃어 버린 채 무의식의 세계였던 제3세계에 영원히 갇히고 만다. 그 세계는 고요한 세계다. 잃을 것이 없는 세계의 끝이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모두들 각자의 순수한 구멍을 파나가고 있지. 목적이 없는 행위. 진보가 없는 노력,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는 보행. 근사하다고 생각지않나? 아무도 상처 입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아. 아무도 앞지르지 않고 누구에게도 추월당하지 않네. 승리도 없고 패배도 없어 " - 세계의 끝 중에서

주인공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무의식의 깊은 곳에 독특한 나만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곳은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그곳은 아무도 죽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불사의 장소다. 그것이 바로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느끼는 세계의 끝이다.

"이른바 그것이 당신의 의식이 핵인 거요. 그러니깐 당신의 의식이 그려내고 있는 것이 바로 세계의 끝이란 말이요. 어째서 당신이 그런 것을 의식의 바닥에 감추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소만 어쨌든 그렇게 된거요. 당신의 의식속에서 세계는 끝나있소. 거꾸로 말하면 당신의 의식은 세계의 끝안에서 살고 있는 셈이요. 그 세계에는 지금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것이 결락되어 있소. 거기에는 시간도 없고 공간의 확장도 없고 삶도 없고 죽음도 없소. 정확한 의미의 가치관이나 자아도 없소. 그곳에서는 짐승들이 사람들의 자아를 컨트롤하고 있지요."
–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중에서


처음에는 두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소설이 끝날 때쯤 두개의 세계는 서로 자연스럽게 합쳐져 결국 ‘나’라는 주인공에서 합일점을 찾게 된다.

책을 다 읽은 후에 두개의 세계를 정리하면서 혹시 ‘나’라는 사람이 ‘왕따’가 아닐까 하는 생뚱 맞은 생각을 했다. 마음을 굳게 닫고 자신만의 세계에 갖혀 사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마음 속에 존재하는 그 세계가 바로 '세상의 끝'인 것이다. 그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는 뇌사 상태로 병원 침실에 누워 있거나 아니면 할아버지의 뚱뚱한 손녀딸이 냉동시켜 은밀한 곳에 보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만의 세계에서 자신이 인식하는 사람들과 함께 또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생각하기 나름, 인식의 세계, 정체성의 문제다. 이 소설이 말하는 것이 바로 정체성, 나의 인식에 관한 것이다. 설령 현실에 가까운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는 그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인식 속에서 계속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곳은 불사의 세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는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나의 존재는 나의 인식에서 시작되어 끝나고 내가 속한 세계 또한 나의 인식을 통해 바꿀 수 있다. 동적이고 끊임없이 급변하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남을 것인가, 죽은 듯이 고요한 ‘세계의 끝’에 남을 것이냐는 결국 나의 선택이다. 하루키마저도 몇 번이나 고쳐 썼다는 소설의 엔딩처럼 그것은 결국 고단한 선택의 과정이다.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나자 나는 나 자신이 우주의 끄트러미에 홀로 남겨진 듯 했다. 난 이제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도 되돌아갈 수 없다. 여기는 세계의 끝이고 세계의 끝은 그 어디와도 통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세계는 그 끝을 고하며 고요하게 멈춰 있는 것이다"
- 세계의 끝 중에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바로 ‘대니보이’다. 최근에 방송된 드라마에서 사용되었던 아일랜드 민요 ‘대니보이’! 주인공 ‘나’가 두개의 세계에서 합일점을 찾는 매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음악이다. 잔잔하면서도 자칫 감상적인 느낌을 주는 이 곡은 정체성을 상실한 채 세계의 끝에서 방황하는 주인공 ‘나’의 심리를 너무도 잘 반영하고 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문학사상사(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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