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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를 지나가다 발견을 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반드시 먹어보곤 하는 길거리 음식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호떡이고 다른 하나는 바나나빵이다. 호떡은 요즘 자주 눈에 띄는 녹차호떡, 쑥호떡 같은 것은 아직은 입에 맞지 않고, 집이 일산이기 때문에 일찍 발견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황가네호떡' 본점의 호떡을 가장 좋아한다.

호떡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바나나빵은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지만 최근에 열광하고 있는 최고의 길거리 음식이다. 작년 겨울쯤 홍대 근처를 지나가다 유명한 돈가스 전문점 앞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천원에 4개 하는 걸 사서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정말 그렇게 맛있는 길거리 음식은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대단한 발견이었다.

바나나빵 맛도 그때 그때 달라요?

그날 이후 난 바나나빵을 먹는 재미로 그 거리를 자주 갔는데 무슨 일인지 그 노점상은 곧 없어져 적잖은 실망을 했다. 그런데 몇 개월 후에 우연히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또 바나나빵을 발견하고 그 장소를 기억해 두었다가 찾아가 2천원어치를 사서 먹었다. 그런데 그 노점이 또 없어져 다시 한동안 먹지 못하다가 얼마 전부터 내가 일하는 사무실 근처에 등장한 것을 보았다. 아쉽게도 천원에 3개라는 무지막지한 변화와 함께.

오랜만에 떨리는 마음으로 먹어본 바나나빵의 맛은 여전했다. 만들어지자마자 바로 먹는 게 오히려 맛을 약간 떨어뜨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음도 새삼 알았다.

그런데 바나나빵에 대한 나의 정성이 통한 것일까. 최근엔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서 바나나빵을 팔고 있는 노점상과 해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경기도라서 그런가, 그것도 천원에 4개이고 크기도 꽤 큰 모습으로 말이다.

재빨리 천원어치를 사서 전철역을 향해 걸어가며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이럴 수가! 바나나빵이라고 다 같은 맛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죽에 문제가 있는 건지 푸석푸석하고 기름이 자르르 손에 묻는 것이다. 정말이지 그 바나나빵을 만들고 있는 노점상 사장님에게 사무실 근처의 바나나빵 노점상을 벤치마킹하라고 일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요즘은 사무실 근처의 바나나빵은 변함없이 애용하고 있고(단골이라며 4개를 주신다) 집 근처 바나나빵도 가끔씩 이용하는 정도이다.

혹자는 맛집들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한다. 맛은 거의 평준화가 되었으니 이제 중요한 것은 서비스나 마케팅이라고. 물론 이런 의견에도 일리가 있음을 충분히 알겠지만 강한 동의를 하기엔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천원에 서너 개 하는 거리의 바나나빵도 맛이 천차만별인데 하나에 수천원에서 수만원 하는 음식들을 팔고 있는 다양한 맛 집들은 어떻겠는가! 바나나빵의 평준화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싶다.

▲ 수타 자장면
ⓒ 김영주
정성 깃든 수타 자장면의 묘미

그런데 한편으로는 평준화가 되었다고 생각을 해도 과언이 아닌 음식이 있기는 하다. 자장면이다. 밥을 제외하고 자장면처럼 자주 먹는 음식이 또 있을까. 물론 중국집에 가서도 먹지만 배달을 통해 진출하지 못하는 곳이 없다는 게 바로 자장면이다.

이런 자장면이니, 지금까지 먹어본 자장면만 수 십, 아니 수 백 군데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동안 먹어본 자장면 중에서 기억에 남는, 그래서 꼭 다시 한번 가서 먹어보고 싶은 자장면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없다. 다시 말해 자장면은 그야말로 평준화가 거의 이루어진 메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한 일이 있었다. 몇 달 전에 내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자장면을 다루면서 수타 자장면을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이 곳의 수타 자장면은 그 동안 흔하게 먹어온 자장면이 아니었다. 자장면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한 집이다. 물론 이 집의 자장면을 먹어본 사람들은 적지 않을 것인데, 마포에 있는 '현래장'이 그 곳이다.

이 곳은 무엇보다 정말 잘 나가는 곳이다. 하루에 만들어 내는 자장면 수가 최소한 500그릇이라고 하니, 자장면만 이 정도일 텐데 짬뽕, 군만두와 여러 가지의 요리들도 있을 것이니 이 집의 매출이 대단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주명연 사장이 운영한 지는 30년이 되었지만 이 집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 된 54년 역사를 자랑한다. 화교가 운영하던 곳을 주명연 사장이 인수해서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 잘 비비고 나서
ⓒ 김영주
이 집의 자장면은 수타 자장면이다. 그렇다면 기계로 뽑은 면으로 만드는 일반적인 자장면과 수타로 뽑은 자장면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무엇보다 쫄깃한 면발을 훨씬 더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수타는 입에 들어갔을 때 쫀득하고 부드러운 반면 기계면은 껄끄럽고 질기고 입에서 논다는 것이다. 물론 수타로 면을 뽑아내는 모습에서 옛 맛을 찾을 수도 있다는 점도 있다. 식당 입장에서는 눈길을 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런데 왜 점점 수타로 자장면을 만드는 집들이 줄어드는 것일까. 문제는 수타로 자장면을 만들다 보면 워낙 몸이 고되고, 또 항상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수타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 친구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자연히 인건비 부담도 늘게 되어 있다.

수타를 하려면 4계절을 최소한 두 번은 경험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고난의 길에 선뜻 발을 내딛는 친구들이 없는 것이다. '현래장'은 현재 수타를 3명이 돌아가며 하고 있다. 4계절을 겪는다는 것의 의미는 배우는 기간 외에도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반죽을 몸으로 익히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반죽의 농도를 맞추는 게 힘든데 추워지면 따뜻하게, 더워지면 찬 물에 해야 한다.

강력분 특밀에 물을 넣고 반죽을 하는 수타 기술의 핵심은 중심을 잘 잡아야 하고, 특히 꽈배기를 많이 해야 면발이 고르게 된다. 수타는 결국 사람의 정성인 것이다.

▲ 입에 넣기 직전의 자장면
ⓒ 김영주
자장면에서 춘장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춘장은 기름에 볶는데 여기에 노하우가 있다. 볶지 않으면 냄새가 나고 볶는 시간은 3, 4분 정도라고 한다.

다른 부재료들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논에서 나는 것이 아닌 밭에서 나는 양파와 강원도 오지에서 생산한 감자, 국산 콩 그리고 체중 80kg 이내의 암퇘지 고기가 준비되어야 비로소 자장면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자장면 조리 과정은 면을 만들고, 춘장을 볶고, 콩 넣고, 간 돼지고기(등심부위) 볶고, 생강 넣고, 마늘과 야채(양파, 호박, 감자) 넣고, 물 넣고 소금과 약간의 조미료에 전분 넣어서 만든 자장소스를 면에 올린다.

단무지와 양파와의 조화는 자장면의 기름기를 없애주고 시원하게 하는 것이고 찍어먹는 생춘장은 물에 무를 담가놓은 데서 나오는 물을 가미하여 만든다.

현래장이 처음에 12평 테이블 7개로 시작하여 지금은 120평 150석의 규모로 커진 데는 이렇게 남다른 자장면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자장면의 맛을 알게 되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세운 철칙이 있다면 될 수 있으면 수타 자장면을 먹고, 또 될 수 있다면 배달을 시키지 않고 직접 식당에 가서 먹는다는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는 평준화가 올바른 방향이겠지만, 자장면에 있어서는 비평준화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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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관심이 많습니다. 진심이 담긴 글쓰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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