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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민주화와 버마-태국 국경지대 '메솟' 난민촌 어린이 교육지원을 위한 부천시민모임' 방문단장 김범용 외 15명은 버마(미얀마)의 정치탄압과 가난 때문에 버마를 탈출하여 버마와 태국 국경지대 '메솟'에 살고 있는 난민촌 어린이 교육과 민주화를 지원하기 위해 2월 23일부터 5박 7일간의 일정으로 '메솟' 난민촌을 방문하고 3월1일 돌아왔다.

▲ 버마민주화 촉구와 아웅산 수지여사의 연금 해제를 요구하는 포스터
ⓒ 양주승
194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황금의 땅 버마(미얀마)는 1960년대와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권에서는 잘사는 나라, 축구 강국, 불교의 성지로 기억되는 나라였으나 1987년 이후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전락해 버렸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1983년 10월에 발생한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이 기억된다.

1989년 군사정부에 의해 국명이 버마(Burmer)에서 미얀마(Myanmar)로 바뀌었다. 1990년 의회구성을 위한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정당은 총선에서 82%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군부는 선거무효를 선언한 뒤 민주인사를 구금하고 15년이 지난 현재까지 정권이양을 거부하고 있으며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지 여사를 가택에 연금하고 있다.

지난 2월23일 오전 9시 50분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오후 1시40분 방콕에 도착한 일행은 일본 릿쿄대학 법학과에 재학 중인 마리꼬(20.여)양과 김경(지학순정의평화기금 사무국장)씨와 현지에서 합류하여 태국과 버마의 국경지대인 메솟을 향하여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로 4시간, 자동차로 8시간, 총 12시간의 긴 여행 끝에 태국의 북부지역, 버마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메솟에 도착했다.

메솟은 태국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인구의 절반 이상이 버마인으로 이루어진 작은 도시다. 버마의 군부독재와 경제적으로 피폐해진 생활고 때문에 국경을 넘어 메솟시와 멜라 계곡에 20여만명의 난민과 이주 노동자들이 거대한 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는 곳이다.

▲ 멜라 난민촌 캠프에서 만난 버마의 어린이들
ⓒ 양주승
메솟과 멜라 난민촌 캠프의 아동들은 부모를 잃거나, 인신매매, 강제노동, 아동징병 등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마약운반, 성매매 등에 이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24일 오전 방문단 일행은 메솟의 산악지대의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멜라 난민촌을 찾았다. 난민촌을 들어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태국 국경수비대와 난민촌 관리 캠프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허락 없이 사진을 촬영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지시를 받았다.

▲ 쌀배급을 받기위해 BBC광장앞에 모인 난민들
ⓒ 양주승
굳게 닫힌 거대한 난민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캠프의 중앙 광장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여 쌀 배급을 받고 있었다. 안내자에게 물었더니 한 달에 한 번 식량을 공급하는 날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남여 노소를 가리지 않고 줄을 선 난민들은 약 40Kg의 쌀을 배급 받아 어깨에 짊어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난민촌은 방콕에 본부를 두고 있는 BBC(Burma Border Consortium)라고 불리는 민간단체들이 관리하고 있으며 난민촌 내부는 지역(Zone)과 지구(section) 등으로 나누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 배급받은 쌀포대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가고 있다
ⓒ 양주승
난민 캠프에 들어선 방문단 일행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부천외국인 노동자의집과 가장 큰 인연을 맺고 있는 '야뭉나' 유치원 이었다. 2000년도 설립된 야뭉나 유치원은 2003년 1월부터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 매월 20만원의 지원금을 보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 '야뭉나 '유치원 교사와 어린이들
ⓒ 양주승
유치원의 규모는 약 50여평의 목조건물에 교실과 주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책상과 의자는 없었으며 5-6명의 아이들이 마룻바닥에 앉아 선생님과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틴틴누웨 선생은 "7세 미만의 어린이들을 지도하고 있다"며 "어제 시험을 치른 날이어서 오늘은 유치원이 쉬기 때문에 아이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야뭉나 유치원의 환경은 방문단 일행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교육여건이 열악했다. 교육을 위한 교재 교구는 눈에 띄지 않았으며 색종이를 이용한 종이접기와 물감을 이용한 그림 그리기가 전부인 듯 보였다.

▲ 부천시민방문단과 아뭉나 유치원 선생님들과 함께
ⓒ 양주승
이날 방문에는 메솟시에서 하이스쿨을 운영하고 있는 끌레미(여) 교장도 함께 참석했는데 끌레미 교장은 난민촌 하이스쿨 건립 8인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끌레미 교장은 "멜라니 난민촌에는 3개교의 유치원을 비롯하여 초등학교 30개소, 중학교 4개교, 고등학교 4개교 등 총41개의 학교가 있다"는 설명과 함께 "말만 학교 일뿐이지 제대로 된 교육시설은 하나도 없으며 학교 운영은 한국, 미국, 캐나다, 일본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버마어린이 교육지원을 위한 버마인 모임과 각국의 NGO에서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야뭉나 유치원 '모윈' 교장은 "대한민국 부천에서 미얀마 어린이교육지원(AFEBC)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마웅저'씨와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 도와준 덕분에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감사함을 표시하고 "난민촌에 도서관을 건립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범용 단장은 "말로만 전해 듣던 야뭉나 유치원을 찾아와 직접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말하고 "여러분의 애로사항을 직접 보고 들은 만큼 한국에 돌아가면 1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계획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김 단장은 야뭉나 유치원에 기념품과 6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 60만원은 3개월간 100여명 원생에게 급식과 교재를 지원할 수 있고 4명의 교사에게 급료를 지급할 수 있는 예산이 된다.

▲ 난민촌 채소가게
ⓒ 양주승
야뭉나 유치원 방문을 마친 방문단은 난민촌 계곡을 따라 정상까지 올라갔다. 난민촌에 사는 버마인들은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된 통제 시스템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취업,노동 등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구호기관에서 제공하는 식량만 먹으면서 살아가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구멍가게와 식료품점은 눈에 띄었다.구멍가게에는 과자류, 식료품점에는 귤, 수박, 토마토, 무, 고추, 오이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난민촌 어린이들이 즐길수 있는 유일한 재미는 무엇일까?
허름한 판잣집에서 흘러나오는 TV음향에 귀가 번쩍 열려 문을 열어 보았더니 15평 정도의 공간에 어린이들이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돈을 주고 비디오를 볼 수 있는 어린이들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난민의 자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천외국인 노동자의 집 최현자 사무국장은 "메솟과 멜라 난민촌이 처한 현실에 태국 정부를 비롯한 외국 정부의 공식 지원은 하나도 없고 세계 각국의 NGO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아쉬워하며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이들을 공식지원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바나나 잎을 사용하여 지붕을 얹은 난민촌 건물
ⓒ 양주승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타임즈(www.bucheontimes.com)에도 실렸습니다.양주승 기자는 <부천타임즈> 기자이며 정치개혁 및 바른 언론과 환경보호를 위한 홈페이지(www.interko.net)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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