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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27일 아침은 특별한 날이었습다. 제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된 후 처음으로 취재를 나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날 같으면 휴일이라 집에서 책을 읽거나, 그저 빈둥빈둥 시간을 보낼 것인데 취재를 가기로 마음을 먹은 후로 괜히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이 군 시절 휴가를 나오기 전날 밤과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우연찮게 여자 야구 시합이 집근처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취재하기에 제격이다 싶어 이만저만 즐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더러 함께 가자고 이야기를 던져놓고는 나만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우리 나라에 야구가 들어온 지 100년이 됩니다. 1904년에 기독교청년회(현 YMCA)의 청년회원들이 기독교청년회 창립 공로자 중의 한 사람인 미국인 질레트(P. S. GILLET)로부터 야구를 처음 배웠으니 말입니다.

이후로 많은 발전을 거듭하여 1946년에는 ‘대한야구협회’를 조직했으며, 1962년 9월 제5회 아시아 야구대회에서 처음으로 국제대회 우승을 하고 1977년에는 대륙간컵 쟁탈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야구사의 발전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것은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한 것입니다.

눈치를 보니 아내와 같이 가기는 틀린 모양입니다. 그래서 먼저 가니까 나중에 오라고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집에서 시합이 열리는 운동장까지는 걸어서 채 5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디지털카메라와 수첩, 필기구를 챙겼습니다. 시합이 열리기 전에 미리 도착해 선수들의 훈련 모습부터 카메라에 담자고 생각했습니다. 운동장(부산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부산공고)에 들어선 시각은 오전 11시 즈음. 서울에서 원정 온 비밀리에팀과 부산을 연고로 하는 빈팀의 시합 전 몸 풀기가 한창이었습니다.

▲ 몸 풀기가 한창입니다.
ⓒ 김병기
요 며칠 동안 이상기온(?)으로 날씨가 매우 추웠고, 일기예보에는 이날도 추울 것이라 했지만 다행히 바람이 그리 많이 불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원정온 팀은 지난해 3월 21일에 창단한 ‘비밀리에여자야구단(BIMYLIE)’으로, 주부 3명과 직장인, 학생 등 약 40여명의 선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팀을 이끄는 감독은 야구의 명문 서울 덕수정보산업고(구 덕수상고)에서 선수 생활을 한 한국 최초의 여자 야구선수 안향미씨 입니다. 구단 이름은 안향미 감독의 생활신조인 ‘야구는 나의 인생이다’(BASE BALL IS MY LIFE)에서 따온 것이라 합니다.

부산을 연고로 하는 팀은 ‘부산빈여자야구단’으로, 지난해 5월에 창단한 직장인, 학생 등 20여명으로 구성된 팀입니다. 이 팀을 이끄는 감독은 역시 야구의 명문 부산고와 연세대에서 선수 생활을 한 윤동학(41)씨 입니다.

▲ 빈과 비밀리에의 시합 전 상견례
ⓒ 김병기
시합을 진행하기 전에 양 팀 모두가 운동장으로 나와서 상견례를 나눕니다. 그리고 시합을 진행할 심판진이 소개됩니다. 시합진행 요원이 자리로 가 앉고 포수 박스 뒤쪽 그물 너머에 스코어판도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윽고 시합이 시작됐습니다. 1회 초 수비는 홈팀인 ‘빈’이 맡았습니다. ‘빈’의 선발 투수인 김태림 선수(‘비밀리에’의 선발 투수는 강효선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가 몇 개의 연습 공을 던지고 난 뒤 곧바로 시합이 시작되었습니다. 1회 초, 김태림 선발 투수의 구위에 밀려 원정 팀 ‘비밀리에’는 점수를 내지 못합니다.

시합이 진행되면서 그 달아오르는 열기가 뜨겁습니다.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감독이나 코치 그리고 관계자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더 빨리 해라, 더 빨리”
“와 엉덩이를 끄덕끄덕 드노!”
“숏, 연습하던 대로 해라”

또 한쪽에선 누군가가 “급할 거 없다. 천천히 해라”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칩니다.

‘빈’ 선수들은 북을 두드리며 응원을 하고, ‘비밀리에’ 선수들은 플라스틱 빈 물병을 두드리며 응원을 합니다.

▲ 시합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 김병기
야구라는 운동이 아무래도 여성에게는 조금은 힘든 운동인 것 같습니다.선수 부상의 위험이 가장 클 것 같습니다. 징이 박힌 스파이크며 딱딱한 볼 등이 남자 선수들에게도 부담이 되는데 여자 선수들에게는 오죽하겠습니까?

▲ 비밀리에 선수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 김병기
이 두 팀은 야구를 본업으로 삼고 야구에만 전념하는 팀은 아닙니다. 국민생활체육의 일환으로 꾸려지는 동호회 성격의 팀이며 야구가 좋아 야구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것입니다. 현재 국내 여자야구팀은 이들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주말과 일요일에 만나 피나는 훈련으로 실력을 쌓고 상호 교류를 활발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여자야구 붐이 일어 많은 여성 팀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윤동학 감독의 이야기로는 대구, 광주, 울산 지역에서도 여자야구단을 창단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합니다. 그러나 창단이 쉬운 일만은 아니라 합니다. 팀 재정을 선수 각자가 내는 입회비, 월 회비, 후원회 기부금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빈’의 경우는 후원회가 있어 다행입니다. 후원회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열악하기만 합니다.

▲ 부산 빈 팀 플래카드
ⓒ 김병기
“와 쫄아갔고 눈을 못떠노?”, “병살, 병살”

시합이 시작되고 2시간 정도가 지나고 있는데 아직 5회입니다. ‘비밀리에’가 공격에서 6점을 내고 공수 교대를 합니다. 그러나 스코어는 13대 10으로 ‘빈’이 앞서가고 있습니다.

시합을 임하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열정을 갖고 경기에 임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또한 야구에 대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구김살 없이 서로를 격려하며 즐기는 게 보기가 좋습니다. 프로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하는 운동을 즐겨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몸이 경직되고 게임이 잘 풀리지 않는 법이며 급기야는 슬럼프로 이어지기도 하고 부상에 시달리기도 하지요.

“아고.”

이 소리는 ‘비밀리에’의 투수가 공을 던지다가 엉뚱한 곳으로 굴러가자 내지른 소리입니다. 관중들은 이 소리를 듣고 박장대소를 합니다.

이 정도의 속도로 간다면 9회까지 시합이 5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양 팀 감독들이 7회까지만 경기를 진행하자고 서로 협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3시간 30분여에 걸친 시합은 부산의 ‘빈’이 17대 14로 이긴 가운데 끝이 났습니다. 양 팀 인사와 기념 단체 촬영 및 4월에 다시 만나서 친선경기를 가질 것을 약속하며 해산을 합니다.

“한국 여자 야구 파이팅!”

이 말은 선수들 중의 누군가가 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부르짖는 함성이 허공 중에 떠도는 공허한 울림은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저들만의 리그는 더 더욱 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과 함께 나도 “한국 여자 야구 아자”를 외치며 나의 취재를 끝냅니다.

▲ 경기를 끝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 김병기

덧붙이는 글 | 우리 모두 한국 여자 야구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많은 팀이 생겨나기를 또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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