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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아 25일 오전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국정운영 경과를 보고하고 향후 국정과제 및 국정운영 기조를 밝히는 연설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아 25일 오전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국정운영 경과를 보고하고 향후 국정과제 및 국정운영 기조를 밝히는 연설을 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대통령이 올해의 국정목표로 내건 화두는 '선진한국'과 '동반성장'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취임2주년 국정연설에는 '선진한국'과 '동반성장'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많이 등장할지가 관심사였다.

그러나 막상 배포된 연설문에는 선진한국이라는 표현이 세 번밖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것도 다른 두 번은 "선진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치도 선진정치가 되어야 합니다"(중간) "긍정적인 사고와 자신감을 가지고 선진한국을 향해 힘차게 달려갑시다"(말미) 식으로 열거만 되었지 개념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선진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노 대통령은 연설 전에 김원기 국회의장실에서 5당 대표들과 가진 환담에서 "이번 연설문 작성은 취임사보다 더 힘들었다"고 솔직한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노 대통령 "지난 2년 많이 느끼고 배웠으며 좀더 깊어지고 넓어지고자 노력했다"

노 대통령은 '선진한국'을 연역적으로 설명하는 대신에 선진경제와 선진사회, 선진언론과 선진문화 그리고 선진정치에 대해 다소 장황하리 만큼 길게 열거한 뒤에 "이런 세상이 바로 선진한국이다"고 귀납적으로 접근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털어도 먼지 안나는 시민, 그래서 누가 좀 보자고 해도 오금이 저리지 않는 떳떳한 시민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런 세상이 바로 선진한국입니다."

'선진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선진한국의 미래상'을 연설에 담으려 하다보니 '취임사보다 더 힘든 연설'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 대통령은 연설 초반에 "북핵문제, 이라크 파병문제, 대북송금 특검 등 모두 하나같이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사안이었고 저는 그 갈등의 틈바구니에 끼인 처지였다"면서 "이 처지에서 언론과의 갈등, 열린우리당 창당, 대선자금 수사, 그리고 탄핵이라는 전에 없던 일들을 결단하고 감당해 왔으며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행정수도 위헌판결 등 그야말로 파란만장의 2년이었다"고 회고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이 파란만장의 2년 동안 "많이 느끼고 많이 배웠으며 좀더 깊어지고 좀더 넓어지고자 노력했다"면서 "힘들었던 지난날의 경험이 남은 3년의 국정을 보다 성숙하게 꾸려갈 수 있는 역량의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고 말해 1년 전의 연설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과시했다.

노 대통령은 또 "지난 2년을 평가하고 남은 3년의 구상을 말하려고 준비했으나,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서 국민 여러분이 내린 다양한 평가를 보았다"면서 "생각이 다른 점이 없지는 않으나 이의를 달지 않고 수용하는 것이 저의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언론의 평가를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 "올해는 사회적으로 큰 갈등이나 싸울 일은 없을 것 같다"

이해찬 총리와 이헌재 경제부총리,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듣고 있다.
이해찬 총리와 이헌재 경제부총리,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듣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노 대통령의 성숙된 면모는 특히 지난 2년 내내 대립각을 세웠던 언론과의 관계에 대해서 "(언론이) 많이 달라졌습니다만, 그러나 선진언론이 되기 위해서 우리 언론은 좀 더 변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이 문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한발 비껴서는 태도를 보인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1년 전에 취임 1주년 KBS 대담 때만 해도 언론사를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변화를 거부하고 특권과 반칙, 야합에 익숙해 있는 집단으로 묘사한 것에 견주면 '여유'마저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

여유 있는 사람은 싸울 일이 없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연설은 지난 연말부터 노 대통령의 머릿속에 준비된 '선진한국 및 동반성장' 전략에서 태동한 것이다.

"올해는 사회적으로 큰 갈등이나 싸울 일은 없을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지난 1월 1일 이해찬 총리와 김우식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의 신년 하례를 받고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를 '일하는 해'로 삼겠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의 연설은 집권 첫해만 해도 '전투적'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대한민국 공동체의 공존과 번영을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면서 '동반성장'을 구호로 내세웠다. "올해를 그 귀중한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는 말도 했다.

노 대통령은 또 1월 3일 첫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는 '계획적인 국정운영'과 '선진한국 전략지도'의 정리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선진한국으로 가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지도를 정리하자"면서 이번에는 '선진한국'을 새로운 구호로 내세웠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을 연상시키는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구호였다.

"다음 정부가 출발할 때는 선진국 간판을 달고 출발할 수 있도록 하겠다"

그러나 다음날 새해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올해에는 대한민국의 목표를 그야말로 선진한국으로 세워서 바로 선진국을 달성하는 그런 야심찬 자세로 국정을 운영해갔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히면서 선진한국 구호에 '살'을 붙였다.

노 대통령은 이어 "지난 한해 국정운영과 해외순방을 하고 새해 계획을 여러 가지로 구상해본 결과, 한국이 이제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때가 된 것 같다"면서 "(참여정부) 3년차를 출발하는 시점에서 선진한국의 청사진을 국민 앞에 제시할 수 있도록 각 부처에서 계획을 잡아주면 좋겠다"고 이를 구체화했다.

노 대통령은 또 이날 장·차관 이상 공직자 및 정당대표와 가진 신년인사회에서도 "올해는 선진국 수준의 대한민국을 다시 설계하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선진국 진입을 미래가 아닌 '현실적 과제'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계획(전략지도)'을 세워서 '지금 바로 실천하자'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를 위해 "올해를 새로운 꿈을 만드는 해로 정하고 죽어라고 남은 기간 뛰겠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다음 정부가 출발할 때는 선진국 간판을 달고 출발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거나 "다음 정권을 운영하는 사람은 선진국 도로에서 운행할 수 있도록 중진국과 선진국 톨게이트에서 한국호 자동차 키를 넘겨주겠다"라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13일 신년기자회견에서도 "광복 60주년인 올해를 선진한국으로 가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만들자"고 올해가 선진한국으로 가는 원년이 될 것임을 역설했다. 회견장에 배치된 모니터의 화면에 쓰인 글귀도 '선진한국 동반성장'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 모두연설에서 "그동안 우리는 선진국을 구호로만 내세우고 막연한 미래로만 생각해 구체적인 비전과 전략을 갖지 못했다"면서 "이제 우리 경제도 선진경제를 얘기할 때가 됐으며, 선진한국을 향한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할 때가 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연설을 마친 노무현 대통령이 의원들의 기립속에 퇴장하며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만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설을 마친 노무현 대통령이 의원들의 기립속에 퇴장하며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만이 박수를 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국가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미래관리'다"

노 대통령은 평소 국가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미래관리'라고 역설해왔다. 지난해 12월 20일 '참여정부 정책평가 보고회'에서 노 대통령은 "좋은 정부는 미래를 준비하는 정부"이며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미래관리"라고 말했다. 그 '미래에 대한 준비'가 '선진한국'이라는 구체적 과제로 실천에 옮겨지고 있는 셈이다.

선진경제를 하려면 선진사회로 가야 하고, 선진사회로 가려면 먼저 정치와 언론이 선진화되어야 한다는 노 대통령 연설은 지나치게 나열식이어서 취임사 때보다는 감동을 주지 못한 느낌이다. 또 총론보다는 각론에, 비전 제시보다는 다짐과 호소에 주력한 느낌이어서 울림도 덜한 느낌이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국정을 이끌어오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정부가 진실 되게 말하고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연설에서 보듯, 그 어느 때보다 진실된 주장을 책임 있게 말하려는 진정성이 역력해 보였다.

노 대통령은 지금 "남은 임기 동안 죽어라 뛰겠다"고 다짐하면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 앞에서 그 '실천의 신발끈'을 강하게 죄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 "선진한국 구호 사용 로열티 지급하겠다"
[국회연설 스케치] 증시(證市)는 축복, 정시(政市)는 냉온교차로 어정쩡한 취임2주년

▲ 퇴장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의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국정연설은 '조짐'이 좋았다.

노 대통령 일행이 국회 연설을 위해 청와대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출발할 무렵인 오전 9시5분께 여의도 증권거래소의 전광판은 종합주가지수 1000.26 포인트를 기록하며 5년만에 처음으로 네자릿수 주가시대를 열었다. 증시(證市)도 노 대통령의 취임 2년을 '축복'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40분에 국회 현관에 도착해 김원기 의장의 영접을 받으며 의장실로 이동해 거기서 연설 전에 국회의장단과 5당 대표 및 원내대표들과 가볍게 환담을 나눴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1000포인트를 돌파한 증시 탓인지 환담장의 공기는 훈훈했다.

박근혜 대표 "여야 정치권이 힘을 합쳐서 선진한국으로 잘 해나갔으면 좋겠다"

노 대통령은 먼저 "전에도 와봤지만, 이렇게 오늘 같이 앉아보니 새삼 자리가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임채정 열린우리당 의장은 "국회 (국정) 연설은 이례적이지만, 여야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다"면서 "야당에게 고맙다고 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오늘 연설에서) '선진한국'을 말씀하는 것으로 들었다"면서 "선진한국은 작년에 한나라당이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해, 세미나도 열고 프로젝트로 추진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선진한국' 구호의 지적소유권을 주장한 셈이다.

박 대표는 그러나 "대통령도 (선진한국이) 나라가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한다니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여야 정치권이 힘을 합쳐서 선진한국으로 잘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우호적인 덕담을 했다.

노 대통령은 "말씀을 듣고 보니, 한나라당이 먼저 열심히 다듬고 있던 개념인데, 내가 먼저 써서 미안하다"고 화답했다.

그러자 박 대표도 "중요한 것은 선진한국이 되는 것이다"고 말을 받았고, 노 대통령은 "좋은 생각은 비슷한 모양이다"면서 "같이 쓰고 같이 만들어 보자"고 응대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 말미에서 "긍정적인 사고와 자신감을 가지고 선진한국을 향해 힘차게 달려갑시다"고 당부하면서 "지금 한나라당에서는 대통령이 '선진한국'이라는 구호를 표절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 제가 과문해서 한나라당이 그런 구호를 내세운 것을 미처 몰랐던 것 같다"면서 "(지적소유권에 대한) 사실 증명을 보내면 로열티를 지급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원고에 없던 즉석연설을 해 박수를 받았다.

박 대표가 환담장에서 말한 '선진한국' 개념의 지적소유권을 염두에 둔 즉석 농담인 셈이다.

원고에 없는 즉석연설 덕분에 예정에 없던 박수를 '덤'으로 받기도

환담을 마친 노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 중앙통로로 입장하자 여야 의원 거의 대부분이 기립박수로 환영했지만 몇몇 야당의원들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노 대통령은 40여분간의 연설 도중에 주로 여당의원들로부터 18차례에 걸쳐 박수를 받았다. 입장과 퇴장할 때의 박수를 합치면 모두 20차례 박수를 받았다. 지금까지 네 번째 국회연설 가운데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셈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거의 박수를 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중앙통로로 퇴장할 때도 여당의원들은 다시 기립박수로 환영한 반면에 상당수 한나라당 의원들은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노 대통령은 이번에도 연설원고에 없던 문장을 중간중간에 여러 차례 삽입하며 연설을 해 눈길을 끌었다. 그 덕분에 노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박수를 '덤'으로 받기도 했다.

이를테면 노 대통령은 미리 배포된 연설문집 29페이지를 낭독할 때 '정부 경쟁력이 세계 30위권' 대목을 읽으며 "며칠 전에 40위권이라고 말했으나 다시 보니 30위권이어서 정정한다"고 즉석에서 말하자 야당 의원석에서는 "잘했어"라고 화답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엉겹결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자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사소한 것이지만 노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했을 때 한나라당에서 박수가 나온 셈이다.

결과적으로 여의도의 증시(證市)는 노 대통령의 취임 2년을 축하했지만, 같은 여의도에 자리잡은 정치의 시장인 국회 본회의장의 '정시'(政市)는 냉기와 온기가 교차하는 다소 썰렁한 풍경이었다.

본회의장을 채운 부채꼴 좌석의 반쪽은 네 번째로 국회를 찾은 노 대통령을 박수로 환호했지만, 나머지 반쪽은 박수를 거의 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퇴장할 때도 마지못해 일어서는 어정쩡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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