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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얼바허핑 공원 앞 거리와 스쿠터
얼얼바허핑 공원 앞 거리와 스쿠터 ⓒ 김준희
리무진 버스의 종착지점인 타이페이역에 도착한 것은 약 7시. 버스에서 내려 혼자가 된 나는 배낭과 보조가방을 멘 채로 지도를 보고 중정기념당 쪽으로 발길을 잡았다. 친구들과 자유여행을 다녀본 경험은 몇 번 있지만, 지금처럼 말 한마디 안 통하는 곳에서 혼자가 되어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혼자가 되었다는 자유로움과 함께 불안한 기대감이 생겨났다. 지도를 보면서 중정기념당 가는 길에 있는 얼얼바 허핑공원에 우선 들러보기로 했다. 공원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과일 주스(20NT)를 사서 공원에 들어가 벤치에 앉았다. 이른 아침이라서 조용하고 한적한 공원, 그 벤치에 앉아서 주스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니까 이제야말로 자유가 찾아온 느낌이었다.

얼얼바 허핑공원
얼얼바 허핑공원 ⓒ 김준희
얼얼바 허핑공원은 타이페이시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공원이다. 이 공원에는 일요일 이른 아침인데도 몇몇 사람들이 나와서 유명한 중국의 만권을 하는 모습들이 보이고 여러 대의 자판기도 보였다.

모닝커피가 생각이 나서 자판기로 다가갔다가 실망만 했다. 모두가 캔 음료수 자판기뿐이고 우리나라와 같은 종이컵 커피 자판기는 없었던 것이다. 대만여행을 하는 동안 수십 대의 자판기를 보았지만 커피 자판기는 한 대도 못 보았다.

얼얼파 허핑공원을 나와서 다시 지도를 보고 중정(中正)기념당으로 향했다. 중정기념당은 장제스(장개석)을 기념하기 위한 곳으로 25t짜리 동상과 각종 기념품들이 전시된 곳이다. 중정은 장제스의 본명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장제스란 인물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쨌건 타이페이에 왔으니 이곳은 필수적으로 들러야 할 것만 같았다.

중정기념당의 정문 앞에 서자 커다란 아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 넓은 광장을 배경으로 서있는 푸른 지붕에 하얀 대리석 건물인 기념당이 보였다. 아치를 지나서 광장으로 들어서자 양 옆으로 두개의 고전적인 건물이 서있었다. 국립극장과 콘서트홀이라는 건물이다.

중정기념당 앞 광장
중정기념당 앞 광장 ⓒ 김준희
9시가 되자 기념당의 문이 열렸다. 문 안쪽으로 커다란 장제스 동상이 나타났고 곧 이어서 그 앞에 서있던 근위병들이 교대식을 시작했다. 무언지 알 수 없는 말들을 외치면서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로봇 같은 움직임이다. 한 시간에 한 번씩 한다는 그 교대식이 끝나자 여기서는 더 이상 볼게 없다. 밑으로 내려가서 장제스의 유물 등이 전시된 곳으로 향했다.

장제스 동상 위병 교대식
장제스 동상 위병 교대식 ⓒ 김준희
유물 전시실에는 장제스가 생전에 이용했던 자가용과 다른 물건들과 사진 등이 있었다. 장제스가 박정희와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 대충 둘러보고 나서 한쪽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새벽에 기내식을 먹기는 했지만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고 돌아다니다 보면 언제 또 밥을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식당으로 들어가자 아주머니가 날 보더니 뭐라고 말을 한다.

"&*%$#@@!"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다가가서 말했다.

"워…워스한궈런…(저는 한국인입니다)."

메뉴판은 온통 한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만만해 보이는 우육면(100NT)을 가리키며 말했다.

"게이워쩌거(이거 주세요)."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리니까 곧 음식이 나왔다. 작은 접시에 놓인 그릇에 담긴 우육면이 전부이다. 김치나 단무지 같은 밑반찬은 아예 없고 물도 안준다. 여기도 물은 셀프인가 싶어서 둘러보았는데 어디에도 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없다.

우육면은 중국음식 특유의 강한 향이 조금 거슬렸지만 그런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국물 맛도 괜찮고 고기도 많이 들어있어서 술 퍼마신 다음날 해장용으로 좋을 것 같았다. 밥을 먹고 기념당을 좀더 구경하다 밖으로 나왔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지하철을 타고 시내유람을 다닐 생각이다.

일일패스면 주요 관광지 둘러 볼 수 있어

타이페이의 지하철인 MRT(Mass Rapid Trasit)는 총 6개의 노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6개의 노선이니까 역도 많고 복잡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서울의 지하철 노선에 비하면 MRT는 단순한 노선에 속한다. 이 MRT 노선은 타이페이의 주요 관광지로 많이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MRT만 타고 하루 정도 다니면 타이페이의 주요 관광지들을 둘러볼 수 있다.

MRT의 기본요금은 20NT인데 150NT를 내고 일일패스를 사면 하루 종일 거리와 시간에 구애 없이 마음껏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

중정기념당을 나와서 MRT 중정기념당역에 들어가서 일일패스(150NT)를 샀다.

"One day pass, please!(일일 패스 주세요)."

역무원은 역시 영어로 말을 하며 표를 건네준다.

"OK, Write down your name here(네, 여기에 이름을 쓰세요)."

일일패스를 사면 거기에 자신의 사인을 하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본인만 사용할 수 있다. MRT역 내부 모습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개찰구도 비슷하고 플랫폼도 비슷하다. 차이가 좀 있다면 MRT 내부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 없고 껌도 씹지 못한다. 아예 음식물 반입이 안 된다고 한다.

걸리면 벌금이 엄청나고 애완동물은 반드시 휴대용 우리에 넣어서 탑승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MRT 내부는 꽤나 깨끗하고 쾌적해 보였다. 또 차이가 있다면 좌석의 배치가 좀 다르다는 것이고, 여기에도 우리나라 같은 노약자 전용석들이 보였다.

타이페이의 지하철역 내부
타이페이의 지하철역 내부 ⓒ 김준희
국부기념관역에서 내렸다. 여기는 쑨원(손문)의 동상과 유물들이 있는 곳이다. 기념관 계단을 올라서 안으로 들어가면 역시 커다란 쑨원의 동상이 보인다. 그리고 기념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큰 관심이 없다면 별로 볼만한 것이 많지는 않다.

기념관 앞마당의 꽃들을 보며 조금 쉬다가 다른 곳에 가보기로 했다. 기념관이나 공원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좀더 활기찬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 그래서 대만 대학에 가보기로 했다. 대만 대학은 역시 지하철을 타고 공관역에서 내리면 있다. 공관역에서 내리자 낡아보이는 건물들과 한자로 쓴 간판들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얼마 못가서 오른쪽으로 대만대학이 보였다.

국부기념관
국부기념관 ⓒ 김준희
그런데 여기서도 별로 활기찬 느낌은 받을 수가 없었다. 하필 오늘이 일요일인데다가 어쩌면 여기도 지금이 방학일지 모르니까. 그 생각을 못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 실수였는지 모른다. 아무튼 대학을 대충 둘러보기로 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야자수들이 양쪽으로 늘어선 긴 진입로 비슷한 것이 나온다. 그 진입로를 따라서 걸어 들어가면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도서관이고 그 옆에는 특이하게도 편의점이 있다.

대만대학 정문 진입로
대만대학 정문 진입로 ⓒ 김준희

대만대학에서 만난 한국인 선교사

도서관 앞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나에게 다가오면서 말했다.

"#@$%^&*...한궈런?"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한궈런'이라는 말이 나온 걸로 봐서 한국인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워스한궈런"

그가 씩 웃는다.

"한국인이세요?"

이 사람도 한국인이었구나. 대학생처럼 보이지는 않고 여행객도 아닌 것 같은데 여기서 뭘 하는 걸까? 그가 내 옆에 앉으면서 물었다.

"여행 오셨어요?"
"예. 오늘 새벽에 도착했습니다."
"왠지 모습이 한국인처럼 보이더라구요. 전 대만에 온 지 4년 되었습니다. 선교사예요."

선교사. 설마 여행 온 사람을 상대로 선교를 하는 건 아니겠지.

그가 말했다.

"대만의 인상이 어떠세요?"
"글쎄요…. 사람들이 무척 친절하고 개방적으로 보이네요. 물가는 우리나라하고 비슷한 것 같구요."
"예 맞아요. 한국이랑 경제 수준은 비슷한데 사람들은 많이 친절하고 소박합니다. 정도 많구요. 여행 하시다 보면 느낄 거예요."

그 사람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대만의 정치 얘기가 나왔다.

"대만은 외환보유고 세계 1, 2위를 다투는 나라지만 정치적으로는 많이 불안해요."
"왜요?"
"중국 때문이죠. 중국은 대만을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아요. 그냥 중국의 한 지역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지요."

재미있는 얘기다. 좀 더 들어볼까?

"아 그렇습니까?"
"올림픽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대만은 올림픽에 출전할 때 타이완(Taiwan)이란 국명으로 출전하지 못하고, 차이나-타이페이(China-Taipei)란 이름으로 출전하지요. 그게 다 중국의 압력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만에서 정말 돈 많은 사람들은 전부 외국으로 나가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대만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구나. 그동안 내가 대만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져 대만대학을 둘러보고 나와서 용산사로 향했다. 용산사도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고 그 근처에 예약해둔 호텔이 있다. 용산사를 보고나서 호텔로 가서 체크인 하고 좀 씻고 나서 쉬고 싶었다. 아니 무엇보다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용산사 주변은 서민의 거리

MRT 용산사역에서 내려서 그 앞의 편의점에서 포도 주스를 하나 샀다(20NT). 포도주스를 먹으면서 용산사로 들어갔다. 용산사는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전형적인 대만의 사원이라고 한다. 내부의 돌기둥에는 용들이 조각되어 있고 지붕에도 용들이 장식되어 있다.

대만에서는 현재 도교와 불교 인구가 가장 많아서 약 90% 가량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용산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기도를 하고 향을 피우는 모습들이었다. 사람들이 워낙 많고 시끄러워서 차분히 둘러볼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결국 마지막 날까지 다시 들르지는 못했지만.

용산사에서 지도를 보면서 호텔로 향했다. 용산사 주변 거리는 전형적인 대만의 서민 거리라고 한다. 오후 3시 가량인데도 노점상 주변에서는 모여서 음식을 먹으며 술을 마시는 아저씨들이 많다. 거리의 좌판에도 알 수 없는 음식과 물건들을 파는 사람들이 많다.

호텔에 가서 바우처를 보여주니 "Only one people?(한 사람?)" 하면서 키를 건네준다. 작은 싱글 룸에 들어가서 씻고 침대에 누우니 나도 모르게 잠이 쏟아졌다. '단수이에 가야 되는데…'

눈을 뜨니 4시가 넘은 시간이다. 일어나자마자 가져온 인스턴트커피를 꺼내 복도에 있는 식수대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서 커피를 만들었다. 씻고 난 후에 자고 일어나 뜨거운 커피를 마시니까 남부러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단수이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커피를 마시고 나서 보조가방만 멘 채로 밖으로 나섰다. 단수이는 MRT 단수이선의 종착역에 위치한 항구이다. 교통이 편리해서 타이페이 시민들이 평일에도 많이 찾는 인기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일몰의 모습이 볼만하고 해안의 길을 따라 늘어선 좌판의 먹을거리가 많은 곳이라서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곳이다.

MRT를 한번 갈아타고 50분 정도 가니까 단수이역이 나왔다. 밖으로 나가서 조금 걸으니까 해안과 바다가 나타났다. 날이 흐리고 빗방울마저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서 그 유명한 단수이 석양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아니 석양은커녕 수평선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이 흐리다. 여기가 바다인지 안개 낀 강가인지 알 수가 없다.

단수이 해안가 상점들
단수이 해안가 상점들 ⓒ 김준희
그래서 그냥 해안을 따라 걷기로 했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고 젊은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달라붙는 ‘삐끼’들도 보였다. 내가 외국인처럼 보이는지 삐끼들이 나에게는 아무 말도 붙이지 않는다. 외국인처럼 보여서 그러는지 젊게 보이지 않아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안의 상점들에는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많았다. 온갖 꼬치종류와 오징어(처럼 보이는) 구이, 과일주스와 사탕을 입힌 작은 과일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오뎅탕’이나 핫도그 종류들도 많다. 이곳에서 파는 음식들은 대부분 10NT 또는 20NT이다. 물론 자리잡고 앉아서 먹는 음식보다는 그냥 서서 먹거나 들고 다니면서 먹는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먹을거리를 파는 곳들 사이사이로 다른 상점들도 보인다. 조그만 액세서리나 열쇠고리를 파는 곳도 있고 정교한 목공예품을 파는 곳도 있다. 그리고 전자오락실도 비슷한 것도 보이고 다트를 던지는 곳도 보인다.

배가 슬슬 고파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선 꼬치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한 상점으로 가서 만만해 보이는 꼬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게이워쩌거(이거 주세요)."

상점의 아저씨가 날 보더니 꼬치를 집고 뭔가를 바르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뚸샤오치엔(얼마입니까)?"

아저씨는 손가락을 2개 펴 보인다. 내가 역시 외국인처럼 보이나 보구나. 20NT를 건네주고 꼬치를 받아서 먹었다. 재료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맛있는 것 같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먹었다. 과일주스도 먹고 다른 꼬치도 먹고 해산물이 들어간 조그만 탕도 먹었다.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게이워쩌거" "뚸샤오치엔?" 그리고 돈.

마지막으로는 사탕을 입힌 조그만 과일들을 꼬치에 꿴 것을 먹었다. 돈을 주고 나서 돌아서며 내가 말했다. "셰셰(감사합니다)."

그 아저씨도 나에게 말했다. "아리가또."

여행을 갈 때면 배낭과 보조가방에 태극기 배지를 붙이고 다니는데 그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어쩌면 보고도 몰랐는지 모른다. 하긴 나도 대만 국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데 대만 아저씨가 우리나라의 국기를 모른다고 나무랄 수는 없겠지.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호텔로 돌아오니까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호텔 앞의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한잔 마시고 잠이 들었다. 내일은 양명산으로 간다.

덧붙이는 글 | 2월 6일부터 9일까지 2박 4일간 대만의 타이페이를 여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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