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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1월 25일 경남 통영에서 태어남
2004년 11월 29일 서울 삼성병원에서 지병으로 타계(향년 82세).


대여(大餘), 그는 이렇게 처음과 마지막의 이력을 남겨두고 갔다. 이 세상 어느 누군들 파란 많은 세월을 보내다 가지 않으랴만 유독 그의 삶이 파란만장했던 것은 그의 글을 사랑한, 시작(詩作)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게 여겨졌으리라. 한때는 국회의원이라는 색다른(?) 직업을 갖기도 하였던 그였으나 홀로 외로이 시인으로서의 본분의 길을 가다가 그 길의 끝 어디쯤에서 홀연히 발걸음을 멈춘 한국 모더니즘시의 대표적 존재로서 우리 문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사람. <꽃>의 시인 김춘수(金春洙).

누구나 시를 사랑한다. 그의 초기 시 작업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영향을 받았으나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실존주의 사상의 영향 아래 시를 썼고 60년대에는 무 관념, 즉 관념 이전의 시를 쓰게 된다. 그리고 그는 꾸준히 낱말까지 해체시키기도 하는 실험적 해체시를 쓰기도 하고(<한국 문학의 사생활> 10~33쪽 참조, 김화영 저, 문학동네간)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하여 깊이 천착하다 간 것이다.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산문집이기에 그의 시 세계는 여러 오프라인에서나 인터넷 상에서 소개되고 있어 그의 대표적인 시 <인동 잎>을 소개하고 넘어 가기로 한다.

눈 속에서 초겨울의 /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 서울 근교에서는 보지 못한 /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 그것을 쪼아먹고 있다. / 월동하는 인동 잎의 빛깔이 / 이루지 못한 인간의 꿈보다도 / 더욱 슬프다.

▲ <왜 나는 시인인가>
ⓒ 현대문학
김춘수 대표 에세이 <왜 나는 시인인가> 남진우 엮음, 현대문학 간

‘시인이 된다는 것’ ‘내 속에 자리한 예수’ ‘지금 집 없는 사람은’ ‘누군가가 보고 있다’의 4부로 나누어 편집한 산문집을 읽으면서 느낀 김춘수는 한마디로 글에 대해서 폭발적인 스펙트럼과 가히 환상적인 글쓰기의 기술을 가진 대가라는 것이다. 무릇 시인은 자기 시론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만 나나 우리 시인들 일부는 아직도 그 자기 시론의 경지에 가닿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자기 시론을 곧추세우고 그 틀에서 시를 만든 영원한 장인이었던 것이다.

나는 차라리 이 한권의 산문집이 ‘김춘수평전’ 바로 그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제1부에서는 경남 통영에서 나고 자라면서 시인이 되게 해준 고향의 자양분과 그 걸어온 궤적에 대한 아릿한 추억, 제2부에서는 예수라는 존재를 탐구하고 그의 정신 세계에 몰입해 간(제2부에서 피력하고 있는 내용의 일부는 미국 작가 댄 브라운이 지은 <다빈치 코드>의 내용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준다), 제3부에서는 서정적 산문의 글을 보여주는데 이 대목에서 그의 최고 지성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고, 제4부에서는 정치 칼럼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당대의 논객으로서의 유감없는 진면목을 또한 보여준다.

한 독자가 시를 감상하고 시를 통해 그 시인의 삶과 인생역정을 어슴푸레 아는 것보다는 이런 소중한 산문집을 읽음으로써 그에게 가장 가깝게 가 닿을 수 있고 그의 시 세계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덤 같은 것을 얻는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다.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 간)라는 정민 교수가 지은 책이 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우리 선조들의 각 분야에 걸친 장인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 몸과 마음으로 실행에 옮기다 세상을 떠난 한 떨기 꽃, 이제 그 꽃은 졌지만 그 꽃은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남으리라.

나는 왜 시인인가? 존재하는 것의 슬픔을 깊이 느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시인이다. 그중에서도 사람이란 더없는 슬픈 존재다. 사람으로 태어난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야만 한다고 깊이, 깊이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본문 중에서.

김춘수 지음,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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