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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제 수호 국민대회'가 15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서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 예비역대령연합회장)과 정통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갓을 쓴 유림 관계자가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호주제 폐지하면 남편 외도가 더욱 늘어난다."

15일 오후 3시 종로 종묘공원에서 열린 '호주제 수호 국민대회'에서 나온 얘기다. 지난 2003년 5월23일 탑골공원에서 열린 호주제 수호 집회에서 터져나온 "호주제 폐지하면 짐승된다"에 이은 '황당 주장'이다.

국민행동본부·정통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정가련)·한국성씨총연합회가 주최한 이날 대회에는 구상진 정가련 상임공동대표, 탈북자 김명희씨, 김대인 '호주제폐지반대시민사회단체연합' 공동대표, 김정자 '나라살리기어머니모임' 회원 등이 연사로 참석했다.

이들은 이날 새로운 '호주제 폐지 반대론'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최근 호주제 폐지 반대 대열에는 우익단체인 국민행동본부까지 가세했다. 이 단체는 한 일간지에 "호주제 폐지는 북한 따라하기"라는 광고를 실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주장#1: 호주제 폐지하면 남편 외도가 심해진다?

이날 단연 돋보인 주장은 '호주제를 폐지하면 남편들이 바람을 많이 피운다'는 주장이다.

'나라살리기어머니모임' 소속의 김정자씨는 연단에 올라 "호주제가 없어지면 반만년 역사와 후손에게 물려줄 가문의 족보와 민족이 없어진다는 심정으로 나왔다"고 말문을 연 뒤 "호주제를 폐지하면 남편의 외도를 부추겨 여성인권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논지를 폈다.

"호주제를 폐지해 개인별신분등록제를 실시하면 혼외 자녀를 (낳아도) 호적에 올릴 필요가 없으니 남편의 외도가 늘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무부와 대법원이 호적제를 이을 새로운 신분등록제도로 마련한 '가족부 형태의 1인1적제'가 시행되더라도 개인의 신분등록부에는 부모, 형제가 표기된다. 이러한 주장은 '기우'라는 얘기다.

굳이 새 신분등록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호적제가 있으면 외도를 쉽게 하지 못하지만 호적제가 없어지면 외도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황당하다. 호적제와 가정의 건강성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또 혼외 자녀가 있으면 '외도'이고 그렇지 않으면 외도라고 볼 수 없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어 김씨는 한국만큼 여성이 대우받았던 나라는 없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옛부터 남성은 사랑방에 머물렀고 여성은 안방을 차지했다. 곶간 열쇠도 '안방마님' 차지였고 요즘도 남편의 통장은 여성이 갖고 있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자식이 내 성씨를 따르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 '호주제 폐지 반대' 구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참가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주장#2: 호주제 폐지하면 북한의 대남적화 성공한다?

▲ 탈북한 김명희씨가 북한의 가족제도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날 대회를 공동주최한 국민행동본부는 "호주제 폐지는 북한 따라하기"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한 탈북여성까지 내세웠다.

북에서 가수로 활동했다는 김명희(48)씨는 이날 연단에 올라 사회자와 문답형식으로 북한에도 호주제가 없으며 탈북 후 들은 바로는 최근 개인별신분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본 봉태홍 국민행동본부 사무처장은 연단에 오른 김씨에게 ▲개인별신분등록제가 시행되면 지금의 호적은 없어지는데 북한도 그러한지 ▲북은 공산화 성공 직후 호적제를 폐지했고 현재는 이혼녀가 재혼하면 계부성도 따르도록 하고 있다는데 그러한지 ▲북한은 개인과 김정일의 관계만 존재한다는 데 맞는지 등을 물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북한은 호적제가 없고 내가 탈북한 이후에는 계부성도 따를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은 개인별신분등록제를 시행하며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들도 김정일과의 유대관계가 더 강하다"고 답했다.

김씨의 대답을 들은 봉 사무처장은 "(김씨를 통해 확인했다는 듯) 호주제를 폐지하면 북한처럼 가족·친족과의 결속력이 떨어져 (북의) 대남적화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청중을 선동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일 호주제를 규정한 세 민법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써 호주승계 순위,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에 있어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로 "호주제는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규정한 헌법 제36조 제1항에 위반된다"는 것.

헌재의 결정문과 같이 호주제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위헌성이나 성불평등성에 있다. 호주제 폐지 반대의 근거를 "북한도 폐지했기 때문에"라고 대는 것은 너무 궁색하다.

▲ 종묘공원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던 300여명이 탑골공원까지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주장#3: 정부가 국민에게 '호주제 폐지' 세뇌하기 위해 시민단체에 돈을 줬다?

정부가 호주제 폐지를 독려하기 위해 시민단체에 국민들의 세금을 줬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대인 법률소비자연맹 총재는 "정부는 국민들의 세금 수백억원을 '호주제를 폐지해달라'며 시민단체에 줬다. 여성단체, 남성단체에서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달라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수백·수천만원씩을 줬다"고 주장했다.

또 김 총재는 "국민을 위해서 중립의 위치에 있어야할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민단체에 돈을 줘가며 '호주제는 나쁜 것이므로 호주제가 있으면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망한다'고 국민들에게 (말하게 해) 세뇌교육 시켰다"고 성토했다.

하지만 호주제 폐지는 참여정부의 공약사항이었고 정부는 공약의 실천을 위해 민관이 참여하는 '호주제폐지특별기획단'을 구성해 호주제 폐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을 뿐이다.

"호주제 폐지에 참여해달라는 뜻에서 정부가 시민단체에 돈을 줬다"는 주장도 사실무근. 이와 관련 여성부의 한 관계자는 "시민단체와 정부간의 '공동협력사업'과 관련한 사업비 지원을 뜻하는 것 같은데, 이는 매년 여성부가 특정 주제에 대한 사업을 공모해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 단체들에게 주는 사업비"라며 "정당한 행정절차를 따른 지원"이라고 일축했다.

이날 종묘공원 집회에는 주최 단체 회원과 시민 등 800여명(경찰추산)이 참석했다. 집회 후 주최 측 회원 300여명(경찰추산)은 "호주제 폐지 결사반대"를 외치며 탑골공원까지 행진했다. 이날 집회 참석자들은 주로 60대이상 남성들로 젊은층은 찾기 힘들었다.

이날 집회에서 터져나온 주장을 바라보는 시민단체의 시각은 자못 측은하다는 반응이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헌재에서까지 호주제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고 여론도 이제는 호주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쪽이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이런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이제는 이런 변화를 인식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긍정적인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동참해야 할 때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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