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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S
1970년대는 여전히 모든 것이 부족한 시대였다. 쌀이 부족했고, 연탄이 부족했고, 전기가 부족했다. 서로 서로 나누지 않으면 힘든 시대가 바로 그때였을 것이다. <나 어릴 적에- 아홉살 인생>(G&S)은 1970년대 풍경을 담은 만화다. 작가인 위기철이 1961년생이니 그의 아홉살 시절은 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였을 것이다. 그림은 만화가 이희재가 그렸다.

작가가 굳이 수많은 나이를 놔두고 '아홉살'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아홉이 불안한 숫자이기 때문이다. 아홉이기에 넉넉해 보이면서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에 허전한 숫자다. 작가는 이게 단지 숫자놀음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공포스런 기억이기도 했다고 반추한다.

작품 속 배경은 하늘보다 땅이 가까운 달동네다. 비가 오면 온 동네 지붕이 물이 새고, 아침마다 공동 지하수장에서 물을 긷느라 전쟁을 벌인다. 부모 없이 사는 오누이 가족이 있었고, 집 나간 아들을 몇 십년째 기다리는 노파가 있다. 그래도 그들은 모두의 안부를 살피고 염려한다. 새로 이사 오면 없는 살림에도 온 동네에 전을 구워 돌린다.

주인공 여민네 가족은 그 시대 가장 아름다웠을 가정을 상징한다. 남편은 동네 불편한 사람들의 물을 대신 떠줄 정도로 정이 많으면서, 부인에게 깍듯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인이 짊어진 물지게를 대신 짊어지고, 부인은 눈이 하나 없지만 잘못된 일은 따질 정도로 대차다. 동네 제일 높은 곳 쓰러져 가는 곳에 집을 얻지만, 세상이 내려다 보인다고 즐거워하는 게 이들 가족들이다. 여민 어머니의 가난에 대한 해석을 한번 들어보자. "가난하다고 모두 불쌍한 것은 아니야. 스스로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그게 불쌍한 거야."

이희재는 우둘투둘한 느낌이 살아 있는 그림 선과 우리 나라 사람들의 체형을 쏙 빼닮은 인물들을 통해 당시 느낌을 고스란히 살려냈다. 포대기로 애기 업은 어머니, 골목에 빨래 너는 주부들, 공동 우물, 고무신, 낙서하는 동네 아이들, 이를 구경하는 강아지, 부엌에 쌓인 연탄 등 세심한 배경이 당시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한 손에 갈퀴를 단 상이 용사,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미친 학생, 큰 가위를 '짤깍'거리던 고물 장수, 매일 부인에게 행패를 부리던 못난 아버지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달동네의 주인공들이다.

주인공 여민이는 아홉살 시절에 참 많은 일을 겪는다. 동기생 장미와 풋사랑을 하고, 고학생의 가슴 아픈 짝사랑을 지켜본다. 아버지에게 매맞는 친구를 보고, 귀신이 두려워 정신 못 차리는 시기도 겪는다. 미술전국대회에서 입상한 뒤 오만의 늪에 빠지고, 다시 친구의 소중함을 느낀다. 가장 친한 친구를 떠나 보내는 이별을 겪는 것도 아홉살 시절이다.

비록 제목이 '아홉살 인생'이지만 이 책은 성인 누구라도 볼 수 있는 책이다. 주인공은 아홉살 여민이지만, 그 속에는 토굴 할매의 삶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토굴 할매가 세상을 떠난 뒤 여민이 아버지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말을 꺼낸다. "이별이 슬픈 까닭은 우리가 떠난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이야. 후회하며 찾을 땐 이미 곁에서 멀리 가 버리고 없어."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가난의 시절. 이제 벗어난 그 시절을 많은 사람들은 그리워하고 기억하기 위해 애쓴다. 무엇을 두고 왔기 때문일까. '아홉살 인생'에서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나 어릴 적에- 아홉살 인생>(G&S)/ 전권 3권/ 2000년 9월

G&S판은 현재 절판된 상태며 지난해 청년사가 한 권짜리로 다시 발행했습니다.


아홉살 인생 - 개정판

위기철 지음, 청년사(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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