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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
언젠가 단골로 가는 헌책방에 갔더니 주인 아저씨가 책 한 권을 내민다. 선물로 주려고 갖고 있었다고.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 刊)란 책이다. 지금 읽고 있다고 했더니 빙긋이 웃는다.

첫 장을 연 지 거의 반 년만에 책을 덮었다. 표지만 잠깐 보고 '나중에 나중에' 읽겠다고 한 게 벌써 그렇게 시간이 지나버린 탓이다. 호빵을 먹을 때 맛있는 팥을 나중에 먹는 것처럼 그렇게 한참을 미뤄놓았다.

<모든 책은 헌책이다>는 헌책방 정보를 담은 책이다. 그러나 단순한 안내책 구실만 하지는 않는다. 헌책방은 대부분 구석진 골목이나 오래된 동네에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손때가 덕지덕지 붙은 책들이 그곳에 놓여진다.

베스트셀러가 입구를 가득 메운 신간서점들과 달리 헌책방은 그런 요란스러움이 없다. 오히려 전혀 몰랐던 책들이 입구를 꾸미고 손님을 맞이한다. 그래서 헌책방 나들이는 도시의 이면과 사람사는 모양,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하다. 저자가 "날마다 헌책방을 찾아가는 동안 만난 책 때문에 삶을 배우고 지식을 얻고 슬기를 깨우쳤다"고 책에서 밝힌 것처럼 말이다.

그래선지 이 책은 처음과 두 번째는 주제는 나들이를 즐기기 위한 방법을 다룬다. '헌책이란?' '헌책방 책값?' '찾기 어려운 헌책은 어떻게 찾을까?' '헌책을 깨끗하게 만드는 방법?' 등은 헌책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한다. 이것도 모자라 '헌책방 즐김이 다짐'까지 덧붙인다. 그러고서야 독자들은 헌책방 나들이가 가능하다.

세 번째 주제 헌책방 나들이에 들어가면 서울 각 지역별로 헌책방이 나눠져 있다. 각 헌책방의 특징, 주인의 성품, 가는 길 등 관련 내용이 자세하다. 게다가 헌책방에서 발견한 귀한 헌책 내용과 근처 싼 먹거리집도 소개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헌책들은 헌책방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책들이다. 1960년판 <표준 한국우표도록>, 여성운동가 마가렛 생거의 <이유있는 반항>, 가가와 도요히꼬의 <한 알의 밀알>, 조자용의 <한화 호랑도> 등을 책 내용과 함께 저자를 자세히 알려준다.

고백컨대 이들 책들을 전혀 모르거니와 저자도 생소한 이름들이다. 그런데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붉은 악마가 흔들던 깃발 문양의 치우천황은 조자용에 의해 발굴됐다고 저자가 소개한다. 마가렛 생거는 '출산권'을 주장한 대표적인 여성운동가다. 묵묵히 제 길을 가나 화려한 빛에 가려진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도 많다. 손님은 책값을 더 주겠다 그러고 주인은 깎겠다 그래서 벌어진 실랑이, 소설을 써 1등까지 한 윤구병, 500원 외상값 돌려주려 먼 길을 찾아온 손님, 교과서값 받는다고 신고한 아주머니, 교보문고보다 더 큰 헌책방을 만들 꿈을 꾸었던 책방 주인 등 헌책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헌책방 나들이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한쪽 면만 보고 판단하고 그것이 전부인 줄 아는 세상을 비판한다. 저자의 뒤통수를 때린 대형출판사를 실명으로 비판하고, 시인 서정주를 평가한 책의 잘못된 대목도 조목조목 집어낸다. 친일 문학가에서 어느새 친일잔재 청산가로 돌아선 문학가를 심하게 질타하기도 한다.

TV를 안본다는 저자는 자본주의 문화를 넘치도록 누리는 여러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산다. 그래서 '헌책방 나들이' 속에는 우리가 잊고 사는 것, 사라지는 것, 뒤로 밀려나는 풍경들이 담겨 있다.

덧붙이는 글 | 1판 1쇄 2004년 5월 20일


모든 책은 헌책이다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최종규 글 사진, 그물코(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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