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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매형이 앉아 있고, 그 둘레에 손주 녀석들이 둘러 앉아 밥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의 친 누나가 여러 반찬들을 나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 사이 어머니는 반찬 맛을 보는 것 같기도 하구요. 아무튼 이 밥상이 시간이 좀더 지나고 나니까 푸짐한 밥상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정말로 맛난 음식들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매형이 앉아 있고, 그 둘레에 손주 녀석들이 둘러 앉아 밥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의 친 누나가 여러 반찬들을 나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 사이 어머니는 반찬 맛을 보는 것 같기도 하구요. 아무튼 이 밥상이 시간이 좀더 지나고 나니까 푸짐한 밥상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정말로 맛난 음식들이었습니다. ⓒ 권성권
그 밥상에는 전남 신안군 지도 땅에서 나는 먹을거리들이 여럿 올라와 있었습니다. 콩나물과 고사리와 버섯, 갈치와 고등어와 조기, 그리고 감태와 마른 김들이 올라와 있었는데, 지도 땅과 바다에서 잡은 것들이라 어찌나 싱싱하고 맛나던지, 누구하나 다른 데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고 오로지 먹는 데에만 열심이었습니다.

그토록 맛난 저녁 밥상을 대한 까닭인지 배는 불러왔고, 아침 일찍 서둘러 내려와서 어머니 일손까지 열심히 거들었기 때문인지 서서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방 세 개에 열댓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잘 수는 없어서 하나 둘씩 읍내에 살고 있는 누나 집으로 옮겨갔고, 형수와 조카들이 읍내로 갔는지조차 모른 채 나는 코를 골며 깊은 잠에 곯아 떨어졌습니다.

"얼른 일어나라야. 바람이 불어오기 전에 비닐을 씌워야 허지 않겄냐야."
"알았어요. 일어나요."
"야, 막내야, 얼른 일어나라."
"나는 일어났어요. 형이나 얼른 일어나세요."
"얼른 연장들 챙겨라야. 바람 불기 전에 빨리빨리 가야 안 쓰겄냐."
"가요, 지금 나가요."
"성권아, 빨리 나와야. 넌 빨리 올라갈라믄 빨리 허고 와야 안 쓰겄냐."
"나가요, 나가."

아무리 밤늦게 잠을 자더라도, 이른 아침에 일어나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 어머니는 설날 그 아침에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리곤 우리 모두를 독촉하듯하며, 바람이 더 불어오기 전에 오로지 비닐 하나를 씌워야 된다며, 온 자식들을 깨웠던 것입니다.

덜 떠진 눈을 비벼가며, 형들과 나는 비닐 하나와 삽자루 몇 개를 챙겨서 뒷밭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뛰다시피하며 걸어왔던 그 밭에서, 곧장 건조장이 세워진 둘레 온 곳에 흙을 팠고, 비닐을 펼쳐 건조장 쇠에 덧씌웠고, 바람이 점차 거세지기 얼마 전에는 비닐로 된 밧줄을 여기 저기 감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일은 삽시간에 끝이 났습니다.

칠순을 훌쩍 넘긴 울 어머니입니다. 스무해가 못 돼 아버지께 시집 와서, 한 평생 수고과 슬픔 많은 세상을 보내신 어머니입니다. 일찍 아버지를 저 세상에 보내시고, 홀로 자식들을 거느리고 돌보며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고생한 날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어머니는 막내인 나를 여전히 '삥아리'로 부르고 있답니다.
칠순을 훌쩍 넘긴 울 어머니입니다. 스무해가 못 돼 아버지께 시집 와서, 한 평생 수고과 슬픔 많은 세상을 보내신 어머니입니다. 일찍 아버지를 저 세상에 보내시고, 홀로 자식들을 거느리고 돌보며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고생한 날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어머니는 막내인 나를 여전히 '삥아리'로 부르고 있답니다. ⓒ 권성권

"왔다매, 금방 해 버린다이."
"그러니까요. 자식들이 많아서 그런가 보네요."
"옛날 사람들은 그래서 자식농사를 많이 지었나봐요, 안 그래요, 어머니?"
"뭐가 그런데야.(웃음) 그냥 어쩌다 본께 그냥 놨던 거시제."
"자식들이 많으면 그래도 농사짓는 것도 꽤 수월했을 텐데요…."
"그야 그렇겄지만, 그렇다고 자식들 고생시킬라고 그랬겄냐…."
"그런께요. 지금도 울 엄마는 자식들이 고생할까봐 몹시 걱정하시잖아요, 그렇지요?"
"와따매, 우리 삥아리가 아이 하나 낳드만 완전히 어른이 다 돼부렀다야이."
"나도 이제 서른다섯이에요. 그리고 뱃속엔 둘째도 있고요."
"그러냐이, 좋겄다야. 딸이라고 허디, 아들이라고 허디…."
"……."

설날 이른 아침 그렇게 일을 끝마치고, 어머니께 세배를 하고, 또 덕담도 듣고, 그리고 곧바로 충주 땅을 향해 발길을 돌렸습니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지만, 설 같은 명절 때에 온 식구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어머니는 나를 어김없이 '삥아리'로 부릅니다. 군대에 갈 때도 힘없는 삥아리가 어떻게 군 생활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돼서 어머니는 나를 '삥아리'라고 부르며 눈물을 훔쳤고, 혼인해서 아내와 함께 인사를 드리러 왔을 때에도, 첫 아이를 낳아 그 기쁨을 안겨 드릴 때에도, 그리고 설 명절을 맞이해 고향 집에 내려갈 때에도 어머니는 나를 삥아리라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그날까지도 나를 향해 삥아리라고 부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기어코 삥아리가 되는 내가 이번 설 명절에도 어미 닭을 향해 마음껏 삥아리 노릇도 하고, 또 쫑알쫑알 여기저기 일손도 도와 드려서 마음 한 구석이 무척이나 홀가분하고 좋았습니다.

그렇더라도 설 명절이 끝나고, 내가 살고 있는 충주 땅으로 되돌아오는 길목은 언제나처럼 허전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아마도 어미 닭과는 함께 살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그래서 함께 하고 싶어도 형편이 못되는 까닭에 함께 할 수 없는…, 그런 삥아리 되는 나의 마음 알이 때문에 그렇지 않았겠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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