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관련
기사
찰칵! 꾸러기 어린이들의 사진촬영

지난 주 화요일, 아이들이 찍은 흑백필름을 현상할 날이 왔다. 나는 대학교 시절 사진의 원리와 사진론, 현상, 인화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모교 교수님께 염치도 없이 전화를 걸어 아이들에게 암실을 보여줄 것을 부탁드렸다. 교수님은 흔쾌히 승락하셨고 언론 전공 학생들이 이용하는 암실을 개방해 주시기로 했다.

드디어 화요일. 지하 2층에 자리잡고 있는 스튜디오 실습실 앞에서 아이들과 기다리고 있는데 교수님이 오셨다. 그동안 아이들은 천방지축 뛰어다녔다. 특히 용진이는 복도에 장착되어 있는 CCTV를 보면서 짖궂게 이거 망가뜨리면 어떻게 되냐고 물어 봐 내 속을 태웠다.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진 현상할 때 쓰는 약품 냄새가 확 밀려 왔다. 아이들은 낯선 냄새에 적잖이 언짢아 하더니 이내 평소와 같은 장난꾸러기로 돌아왔다. 사진을 현상하기 위해 D-76 용액을 만들고, 정착액도 만든 다음 8명의 아이들을 깜깜한 암실로 데리고 갔다.

"얘들아, 이제 이 흑백 필름을 빼내서 이 롤에다 감을 거야. 그동안 이 방은 아주 깜깜해질 텐데 절대 문을 열어서는 안돼. 지난 번에 우리가 찍은 필름 있지? 만약 도중에 문을 열면 필름은 영영 못쓰게 된다. 알았지? 무섭다고 문 열면 안된다!"

책상에 놓인 용액을 넣는 통, 가위, 필름을 감을 롤
책상에 놓인 용액을 넣는 통, 가위, 필름을 감을 롤 ⓒ 이선미
신신당부를 했건만 아이들은 여전히 감이 오지 않는가 보다. 시범으로 불을 끄고 문을 잠그니 암실 안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의젓해 보이기 위해 노력하던 동훈이도 너무 깜깜해 보이지도 않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결국 남자얘들 중에서 까불거리기는 하지만 가장 조숙한 진규가 문 앞을 지키기로 했다. 드디어 불을 껐다.

너무 오랜만에 필름을 꺼내 롤에 감는 거라 손에 익지 않아 한참 애를 먹었다. 애들은 "선생님, 언제 불켜요?"하며 계속 물어 보고…. 어찌나 식은 땀이 흐르고 조바심이 나던지. 아이들은 물어 보다 지쳤는지 갑자기 귀신놀이를 한다며 마구 돌아다녔다. 나는 더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조바심이 났다. 아이들은 귀신놀이를 하고 나는 필름을 롤에 감고.

아라의 실습 장면
아라의 실습 장면 ⓒ 이선미
드디어 롤을 통에 담고 불을 켰다. 그리고 D-76 용액을 넣고 흔들었다. 수련이가 시간을 재고 아라가 용액을 넣은 통을 담당하기로 했다. 이내 10분이 지나고 정착액 처리도 끝내고 필름을 물로 헹구었다.

용진이의 장난
용진이의 장난 ⓒ 이선미
아이들은 필름에 맺힌 상을 보고 자신들이 찍은 사진들을 확인했다. 용진이는 옆에서 사진을 자르는 도구를 발견하더니 또 다시 장난을 친다. 진영이는 수줍어하면서 필름통 주변을 서성이다 이내 태영이랑 동훈이랑 놀러 문 밖으로 뛰쳐나간다.

남자 아이들의 아지트가 된 건너편 현상실
남자 아이들의 아지트가 된 건너편 현상실 ⓒ 이선미
암실에서 나와 문 밖에 있는 필름을 건조시키는 기계에 필름을 펴서 넣어 놓고 저마다 개인 시간을 가졌다. 몇 명은 다시 암실로 들어가 귀신놀이를 하고 몇 명은 건너편 또 다른 암실에서 필름을 뺀 껍데기 통을 발견하더니 속 안에 있는 심지를 하나 하나 딱지마냥 모으기 시작했다.

필름을 말리면서 아라와 수련이
필름을 말리면서 아라와 수련이 ⓒ 이선미
어느덧 4시가 훌쩍 넘어 버렸다. 아이들이 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 인화까지 마치지 못하고 수업을 끝내야 했다. 설을 지내고 다다음주 화요일에 다시 이곳에 찾아와 사진 인화를 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찍은 사진을 직접 자기 손으로 인화하게 하고 선물로 줄 생각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뭔가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괜시리 뿌듯하다.

사람들마다 저마다 나눌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나 또한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진 배우기와 신문 만들기인 것 같아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

그날 하루, 암실을 개방해 주시고 같이 용액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교수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사진 스튜디오 문을 나서면서,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풍부한 경험들은 많이 해 볼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선미 기자는 춘천시 후평2동 꾸러기 어린이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꾸러기 공부방 아이들(초등학교 4~6학년)은 매주 화요일 신문교실을 진행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