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의 한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불법 개조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최근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의 한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불법 개조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 석희열
15~18층짜리 15개 동이 들어선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의 한 아파트 단지. 주변 곳곳에 입주 예정자들에게 불법 개조를 권하는 인테리어 시공업체들의 현수막과 홍보물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주거 공간을 늘리기 위해 발코니와 거실 사이의 문틀과 평당 30만원씩 들인 바닥 타일을 뜯어 내고 난방용 열선을 까는 공사가 한창이다. 멀쩡한 건축자재들을 쓰레기로 만들고 있는 이같은 불법 개조공사로 이곳이 새 아파트인지 공사 현장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다.

구조물의 하중을 늘리고 안전지대를 없애 건축물 안전을 위협하는 이러한 불법 구조변경에 대해 주택법 등 관련법에서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건축물의 안전 보다는 '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심 앞에 법망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법규 있으나 마나... 관리사무소에서도 단속 어려워

현장에서 만난 공사 관계자는 "발코니 확장공사가 어디 어제 오늘 불거진 일이냐. 불법인 줄 알지만 우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품을 팔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막노동 일꾼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냐"면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소음과 쓰레기 발생에 따른 주민 불편과 민원이 잇따르고 있지만 단속의 손길은 멀기만 하다.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관할 구청에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공문을 보내 불법 확장공사 중지 안내를 하도록 하는데 그치고 있다.

인근에 사는 주민 김영란(가명)씨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발코니 불법 개조공사로 아파트에 금이 가는 등의 안전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며 "구청과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도 이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사실상 눈을 감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30일부터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에는 전체 758가구 가운데 현재 432가구가 입주를 마친 상태. 이 아파트에 입주한 한 주민은 "발코니 불법 확장공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아마 절반 정도는 공사를 마쳤거나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리사무소 김화식 소장은 "43평형 등 주로 큰 평수에서 불법 확장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자체 파악하고 있다"면서 "민원이 발생해도 집 주인이 자기집 고치는데 무슨 간섭이냐고 하면 사법권이 없는 우리로서는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방과 거실공간을 늘리기 위해 발코니 천장과 바닥 타일을 뜯어내고 있는 불법 확장공사 현장
방과 거실공간을 늘리기 위해 발코니 천장과 바닥 타일을 뜯어내고 있는 불법 확장공사 현장 ⓒ 석희열
그러나 아파트 시공업체인 A산업 쪽은 준공검사(건축물 사용승인)가 나온 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책임질 일이 없다는 입장이다. 준공검사 후 벌어지고 있는 발코니 개조공사는 관리사무소와 세입자들 간의 문제로 시공업체에선 아파트 공사에 대한 A/S만 하면 된다는 것.

A산업 관계자는 "준공검사 이전에는 아파트 열쇠를 우리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시공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비싼 고급자재를 써 보지도 않고 다 뜯어 내면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다. 불법적으로 확장공사를 하는 입주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민 안전 뒷전... 단속에 눈감은 구청

지난해 12월 건설교통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아파트 발코니 구조변경 지도감독을 철저히 해줄 것을 시달했으나 일선 행정 관청에서는 단속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앙정부의 지시가 지방자치단체에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동마다 출입구에 붙여놓은 불법 확장공사 중지 안내문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동마다 출입구에 붙여놓은 불법 확장공사 중지 안내문 ⓒ 석희열
성동구가 이 아파트 단지에서 불법 구조변경 행위를 적발하여 원상복구 지시를 한 건수는 30여건. 주민들이 파악하고 있는 350여건의 10%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이는 불법 개조공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해당 구청에서 사실상 뒷짐만 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동구청 주택과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평수를 늘리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신고가 들어올 때마다 현장을 확인하고 불법 구조변경에 대해 원상복구 명령을 내리고 있다"면서 "이행하지 않는 건축주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강제이행금 부과와 고발 등의 추가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적발건수가 적은 이유에 대해 따져 묻자 이 관계자는 "부족한 인력으로 단속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형편"이라며 "현장에 나간다 해도 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많아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민원이 계속 제기되는 만큼 앞으로 단속활동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