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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배의 예술세계' 음반 표지
'이창배의 예술세계' 음반 표지 ⓒ 신나라
"배고파 지어 놓은 밥에 뉘도 많고 돌도 많다. 뉘 많고 돌 많기는 님이 안 게신 탓이로다. 그 밥에 어떤 돌이 들었더냐? 초벌로 새문안 거지바위 문턱바위 둥글바위 너럭바위 치마바위 감투바위 뱀바위 구렁바위 독사바위 행금바위 중바위 동교로 북바위 갓바위 동소문밖 덤바위 자하문밖 붙임바위 백운대로 결단바위 승갓절 쪽도리바위 용바위 신선바위 부처바위…."

바위의 종류가 끊임없이 나온다. 숨 쉴 틈 없이 걸쭉하게 바위타령을 불러대는 이는 국악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큰 어른 중 하나인 벽파 이창배(1916~1983) 선생이다.

벽파는 경서도 소리의 중시조이자 경제시조창(京制時調唱: 서울, 경기 지방의 독특한 시조 창법. 박절이 엄정하고 속목을 쓰는 것이 특징)의 대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벽파는 경서도 소리의 예술적 위상뿐 아니라 학문적 위상까지 높인 인물로 평가됨은 물론, 현존하는 경서도 소리의 체계적 전승과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중요한 인물인데도 그의 예술세계를 제대로 담아낸 음반 하나 없는 현실이, 그가 세상을 뜬 지 20년이 넘도록 지속되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세상을 뜬 많은 국악인들이 그렇듯 그의 업적과 성과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먼지 속에 묻혀왔음이다. 이제 겨우 신나라(회장 김기순)가 그 의미를 담아 벽파 선생의 음반을 발매했다.

일제강점기에 경서도 소리를 주로 불렀던 사람들은 선소리패(일명 산타령패: 예전 서울 마포, 왕십리 등지에서 산타령을 주로 부르던 소리꾼들)나 기생층이었다.

벽파는 이들이 불렀던 '12잡가'(아래 설명 참고)나 휘몰이잡가, 서도잡가 등이 환갑날 잔치소리나 기생들이 술을 팔 때 부르는 소리로 천시되는 것을 걱정하여, '예술성'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재정립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가요집성'이라는 책을 내고, '청구고전성악학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명인, 명창들과 겨뤄 벽파의 공이 더욱 도드라지는 것은 한국전쟁 이후 나라도 하기 어려운 '체계적인 제자양성'이란 국악계의 큰 숙제를 혼자서 해냈다는데 있다고 국악인들은 입을 모은다.

어려운 때에 주변의 만류에도 청구고전성악학원을 세우고 배출해낸 제자들은 현 선소리 타령 인간문화재인 황용주를 비롯 지화자, 안숙정, 이춘희, 김영임, 전숙희, 최창남 등 내로라하는 경서도 명창들이다.

그는 1951년 국립국악원 국악사가 되고, 60년부터는 국악예술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선소리산타령’의 보존회를 조직하여 선소리타령의 보급과 후진양성에 힘써 왔으며, 68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더더구나 벽파는 12잡가를 비롯 많은 민요의 사설을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며, 경서도민요의 틀을 잡은 대단히 중요한 인물로 꼽힌다.

그렇게 큰 공을 세우고, 쟁쟁한 제자들을 길러낸 벽파선생의 음반이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예전에 비해 국악이 제법 대접받고 있다면, 국악의 기틀을 잡은 분들에 대한 재조명을 서둘렀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이번 신나라의 백파 음반 발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할 것이다.

흔히 국악 중의 성악에 판소리, 민요, 시조만 있는 것으로 알았던 사람들이 이 음반을 듣는다면, 이렇게 재미있고, 걸쭉한 또 다른 소리가 있음에 신선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앞에 들은 바위타령 말고도 "한 잔 부어라. 두 잔 부어라. 가득 수북 철철 부어라. 면포잔포 유리왜반에 대안주 곁들여"로 시작되는 '한 잔 부어라', "광천교 다리 밑에 울고 놀던 맹꽁이가 아침인지 점심인지 한술밥을 얻어먹고 긴 대 장죽에 담배 한 대 피워물고 서퇴를 할 양으로 종로 한마루로 오락가락 거닐다가 행순하는 순라군에 들켰구나 포승으로 앞발을 매고 어서가자 재촉을 하니 아니 가겠다고 드러누워 앙탈하는 맹꽁이 다섯"이라는 사설이 나오는 '맹꽁이타령'도 재미있다.

그런가 하면 "장기 한판 두어보자. 한수 한자 유황숙이요, 초나라 초자 조맹덕이라. 이 차, 저 차 관운장이요, 이 포, 저 포 여포로다. 코끼리 상자 조자룡이요, 말 마자 마초로다"의 '장기타령', "육칠월 흐린 날 삿갓 쓰고, 도롱이 입고, 곰뱅이 물고, 잠뱅이 입고, 낫 갈아 차고, 큰 가래 메고, 호미 들고, 채쭉 들고…."의 '육칠월'도 잡가의 맛을 더해 준다.

이 음반의 발매에 대해 중앙대학교 박범훈 총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이창배 선생님은 어떤 분인지
"이창배 선생님은 경서도 소리의 대가입니다. 특히 그분은 실기와 이론을 겸비하신 분으로 민요, 잡가, 경서도 소리의 책을 맨 먼저 냈으며, 가사를 정리하고, 바로잡은 학문적성과를 이룬 분이지요. 또 웬만큼 국악을 하는 사람들은 이창배 선생님의 지도 한 번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 이창배 선생님의 음반 발매가 늦었는데 그에 대한 생각은
"그동안 국악계에서 민속음악이 소외된 측면이 있었는데 이제야 그 중요성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이창배 선생님 학문과 연주 성과에 대한 재조명도 늦어졌고, 따라서 음반 발매도 늦어지게 된 것이지요. 더구나 돈이 안 되는 음반이란 점이 걸림돌이 되었을 텐데도 이 음반을 발매해준 신나라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국악의 세계에 이렇게 재미있는 잡가가 한 축을 거들고 있어서 더욱 풍부한 음악세계를 만들어 주고 있음이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을 후비는 판소리, 지순한 선비의 멋을 보는 시조, 청아한 맑은 소리의 가곡, 서민의 삶을 아리게 들려주는 민요와 함께 잡가의 매력, 벽파 이창배의 매력에 푹 빠져볼 것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참고>
1. 12잡가 
경기잡가이며 앉은소리(좌창:座唱 => 잡가에서 앉아서 부르는 방식. 또는 그렇게 부르는 소리)이다. 조선 말기에 공예인, 상인, 기생들이 즐겨 불렀다. 사계축(四契軸:지금의 서울역, 만리동 고개, 청파동 등에 살던 남자 소리꾼들)에 의해 널리 불렸다. 

원래는 유산가(遊山歌), 적벽가(赤壁歌), 제비가, 소춘향가(小春香歌), 선유가(船遊歌), 집장가, 형장가(刑杖歌), 평양가(平壤歌) 등 8곡인 팔잡가(八雜歌)뿐이던 것을 정가(正歌)인 12가사(十二歌詞)에 맞추기 위하여, 달거리[월령가:月令歌], 십장가(十杖歌), 출인가(出引歌), 방물가(方物歌) 따위의 잡잡가(雜雜歌) 4곡을 더한 것이다.

2. 휘모리잡가 
일명 엮음시조라고도 하며, 경기 앉은소리 가운데 해학적인 내용을 길게 엮은 사설이 긴 잡가이다. 휘모리잡가란 그 장단이 빠르고 급하여 휘몰아치는 듯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곰보타령’, ‘병정타령’, ‘맹꽁이타령’, ‘바위타령’, ‘만학천봉’ 따위가 있다.  

3. 장기타령 
서울 지방에서 부르는 십이 잡가의 하나. 긴 사설을 빠른 볶는타령(민속 음악에서, 빠르게 치는 타령 장단의 하나. 경복궁 타령, 신고산 타령, 자진방아 타령, 궁초댕기 타령 따위)으로 부르는 노래이다. 사설은 산천경개(山川景槪) 및 여러 세상 얘기를 길게 늘어놓은 다음 마지막 부분에서 장기에 관한 사설을 덧붙이는 탓으로 장기타령이라 한다. 

"만첩청산(萬疊靑山) 쑥 들어가서 회양목 한 가지 찍었구나. 서른 두 짝 장기 만들어 장기 한판 두어 보자. 한수한자(漢水漢字) 유황숙(劉皇叔)이요, 초나라 초자 조맹덕(曹孟德)이라. 이 차(車) 저 차 관운장(關雲長)이요, 이 포(包) 저 포 여포(呂布)로다.…" 사실은 이 장기타령은 이 부분이 참 재미있고, 구성지다.

4. 서도잡가(西道雜歌)
황해도, 평안도지방에서 불리는 잡가로 서도 선소리와 서도 앉은소리로 나눈다. ‘공명가(孔明歌)’, ‘사설공명가’, ‘별조공명가’, ‘초한가(楚漢歌)’, ‘배따라기’, ‘자진배따라기, ’영변가(寧邊歌)‘ ’적벽부(赤壁賦)‘ ’관동팔경(關東八景)‘,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장한몽(長恨夢)‘ 따위가 있으며, 이에 비해 경기도 지방의 ’경기잡가‘, 호남지방의 ’남도잡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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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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