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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누하진입, 경사진 곳에 세운 사찰은 누대 아래 계단으로 경내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다. 어두운 곳에서 보이는 사찰 내부는 비범하게 느끼게 된다.
미황사 누하진입, 경사진 곳에 세운 사찰은 누대 아래 계단으로 경내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다. 어두운 곳에서 보이는 사찰 내부는 비범하게 느끼게 된다. ⓒ 신병철
누대를 다 올라가면 신천지가 펼쳐진다. 저 멀리 달마산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그 중앙에 대웅전이 기품 있게 자리 잡고 있다. 달마산은 남쪽의 금강산이라고 할 만큼 화려하고 깔끔하다. 이 산을 배경으로 한 대웅전이 두 팔을 벌려 오는 이들을 맘을 열어 제치고 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좌우의 요사채와 뒤쪽의 응진당 등 최소한의 건물들과 뒤쪽의 산세는 애초부터 한 짝일 수밖에 없었다.

대웅전의 굵직굵직한 기둥은 원래부터 그랬는지 허옇게 속살을 다 내놓고 있다. 막돌로 쌓은 높직한 기단이 대웅전의 크기와 적당하다. 공포의 단청도 세월에 바랬다. 대웅전은 까만 머리와 속살을 살짝 드러낸 여성이 아름다운 몸매를 부끄러운 듯 뽐내며 두 팔을 벌려 환영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에 압도당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간 찾는 재미 하나는 놓치는 사람이다.

미황사 대웅전 전경, 저 멀리 달마산의 산세와 어울려 멋진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기둥과 공포의 단청이 없어 속살을 드러내고 두팔을 벌려 환영하고 있는듯 하다.
미황사 대웅전 전경, 저 멀리 달마산의 산세와 어울려 멋진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기둥과 공포의 단청이 없어 속살을 드러내고 두팔을 벌려 환영하고 있는듯 하다. ⓒ 신병철
좌우에 놓인 계단을 올라 옆문으로 대웅전 안에 들어간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집이다. 부처님이 계신 세상이니 진리의 세상이고, 극락의 세상이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두 분의 부처님이 앉아 있다. 부처님들은 깨끗한 탱화를 배경으로 앉아 있고, 그 자리를 위쪽의 닫집과 좌우 기둥의 용 그림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무언가 신성한 일이 금방 일어날 것 같다. 신성하고 경건한 진리의 세상이 이런 분위기인가 보다. 표현은 전혀 다르지만 유명한 성당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미황사 대웅전 부처님, 중간에 석가모니부처님이 자리잡고 있고, 좌우에 조금 작게 만든 부처님을 두었다. 위의 닫집과 화려한 기둥 등의 장식들이 신성함을 자아내고 있다.
미황사 대웅전 부처님, 중간에 석가모니부처님이 자리잡고 있고, 좌우에 조금 작게 만든 부처님을 두었다. 위의 닫집과 화려한 기둥 등의 장식들이 신성함을 자아내고 있다. ⓒ 신병철
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전달하는 공포가 많다. 기둥 밖으로 뻗은 지붕을 힘 있게 지탱하기 위해서 기둥 위만 아니라 그 사이에도 두 개를 더 설치하였다. 지붕은 측면도 경사지게 만든 팔작이다. 이른바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서까래를 받치는 도리를 기둥 바깥으로 3개, 안으로는 4개나 더 내걸었다. 외3출목 내4출목의 복잡하고 화려한 형식을 갖추었다.

공포 각 부재는 안팎의 장식에 최대한 활용하였다. 공포 살미의 끝은 위로 한껏 치올라갔고, 3단으로 짜인 각 부재 아래 부분은 꽃잎처럼 장식하였다. 마치 집 전체가 활짝 핀 꽃모양이 되었다. 중앙의 두 기둥 위에는 들보를 끌어내고, 그 끝에 용을 조각해 넣었다. 정면이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로 물씬 상승되고 있다.

대웅전 공포와 용조각, 다포식 공포인데, 살미끝이 치켜들고 있고, 꽃모양으로 장식하였다. 중앙 두 기둥 위에는 대들보를 빼내어 용을 조각하였다. 신성함이 느껴진다.
대웅전 공포와 용조각, 다포식 공포인데, 살미끝이 치켜들고 있고, 꽃모양으로 장식하였다. 중앙 두 기둥 위에는 대들보를 빼내어 용을 조각하였다. 신성함이 느껴진다. ⓒ 신병철
바깥에서 대웅전을 쳐다보면서 형성된 신성한 감정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더욱 심화된다. 내4출목의 공포는 화려의 극을 달리고 있다. 천정 아랫부분이 활짝 핀 거대한 연꽃처럼 보인다. 그 연꽃 가운데로 수많은 부처와 보살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 아래에는 최고급 단청을 한 대들보가 가로지르고 있다.

꼭대기에는 네모 반듯반듯한 천정을 해 넣었다. 여기에 도안한 범어자와 온갖 풀과 동물 문양의 그림을 그렸다. 한마디로 화려의 극을 달리고 있다. 고려와 조선 전기 건축물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함이다. 17세기 사람들은 부처님 진리의 세상은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미황사 대웅전 천정, 공포 부재들이 마치 거대한 꽃인듯 하다. 네모반듯한 우물천정에 화려하고 품격높게 장식하고 있다. 대들보와 중간중간에 부처님을 그려넣었다. 화려의 극치를 달린다.
미황사 대웅전 천정, 공포 부재들이 마치 거대한 꽃인듯 하다. 네모반듯한 우물천정에 화려하고 품격높게 장식하고 있다. 대들보와 중간중간에 부처님을 그려넣었다. 화려의 극치를 달린다. ⓒ 신병철
대웅전에서 나와 돌담이 트인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응진당이 나온다. 부처는 아니지만, 부처님의 제자나 고된 수행을 거쳐 진리를 깨달은 역대의 고매한 존재를 모신 집이 응진전 혹은 나한전이다. 부처보다 한단 아래 존재이니 집 이름도 그에 걸맞게 응진당이라 붙이기도 한다. 부처의 가르침을 받은 존재이니 중앙에 부처가 있고 좌우에 나한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미황사 응진당 전경, 다포식 건물에 팔작지붕 건물이다. 규모는 작지만, 화려해질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었다. 단청이 깔끔하게 형형색색으로 되어 있어 또 다른 화려한 경지를 느낀다.
미황사 응진당 전경, 다포식 건물에 팔작지붕 건물이다. 규모는 작지만, 화려해질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었다. 단청이 깔끔하게 형형색색으로 되어 있어 또 다른 화려한 경지를 느낀다. ⓒ 신병철
대웅전과는 달리 응진당은 최근에 빽빽이 단청을 하였는지 일단 형형색색으로 더욱 화려하다. 대웅전이 기품 있게 화려하다면, 그의 제자격인 응진당은 크기와 위치에서 격하되었고, 화려한 색을 동원하여 금방 눈에 띄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품격에 있어서 자신 자리 찾기의 본모습이라 하겠다.

응진당은 중앙에 계단을 가진 막돌로 쌓은 조그만 기단을 가졌다. 작은 건물이지만 외3출목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화려해질 수 있는 조건을 다 지니고 있다. 중앙 두 기둥 위에는 대들보를 빼내어 용을 조각해 넣었고, 귀퉁이 쪽 두 기둥 위에는 앙증맞은 도깨비 그림을 그려 넣어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다.

정면에만 문이 있으니 중앙으로 들어간다. 내4출목의 공포가 빽빽이 천정 아랫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천정은 네모반듯한 천정이다. 우물 정(井)자 모양 같다고 해서 우물천정이라고 한다. 네모 안에는 연꽃을 동그랗게 그려 넣었다.

공포의 각 부재들을 대웅전의 화려한 꽃모양과는 달리 부드럽고 우아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응진당의 내출목을 대웅전처럼 처리했더라면 극을 달한 치장끼리 충돌하여 매우 천박해졌을 것이다. 작은 규모의 건물은 치장의 절제를 통하여 품격을 더 높일 수 있음을 우리는 이 응진당에서 느낄 수 있다.

미황사 응진당 천정, 우물천정으로 둥근 원모양의 꽃으로 장식하였다. 내4출목의 공포는 치장을 절제하여 규모가 작은 건물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퇴폐적 경향을 극복하고 있다.
미황사 응진당 천정, 우물천정으로 둥근 원모양의 꽃으로 장식하였다. 내4출목의 공포는 치장을 절제하여 규모가 작은 건물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퇴폐적 경향을 극복하고 있다. ⓒ 신병철
미황사는 17세기에 만든 기초 위에 18세기 건축 방식이 개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절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이후 17세기 중엽에 중건하고, 18세기 중엽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미황사만큼 아름다운 절은 전국에 많다. 아름다운 절 건물은 왜 이 17세기에 많이 등장할까?

논산의 쌍계사와 부안의 개암사는 17세기 중엽부터 시작한 아름다운 건물풍의 시작이었다. 대부분 화려한 다포식 공포에다 큰 지붕, 화려한 내부 장식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꼭 필요한 대웅전과 격이 좀 낮은 나한전 소박한 명부전도 갖추고 있다. 형식 완결에 필요한 일주문, 천왕문 등은 종종 생략하기 일쑤였다. 16세기 절간의 완벽구조와는 차별성이 두드러진다.

논산 쌍계사는 대웅전의 화려한 내부 장식으로 유명하다. 16세기 절집의 내부의 엄격성을 일부 살리는 가운데 엄청나게 화려해져 가고 있다. 내출목 공포의 끝을 촛불처럼 장식하였다. 우물천정도 짜 맞추었다. 천정에는 용과 학이 내려다보고 날아다니고 있다. 가히 진리의 빛이 만발한 극락을 모습을 구체화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논산 쌍계사 대웅전 내부와 꽃살문, 수로 교통의 중심지에 17세기 이후에 세운 절간들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상인들의 문화가 반영되고 있다. 화려한 꽃살문과 내부 장식이 대단하다.
논산 쌍계사 대웅전 내부와 꽃살문, 수로 교통의 중심지에 17세기 이후에 세운 절간들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상인들의 문화가 반영되고 있다. 화려한 꽃살문과 내부 장식이 대단하다. ⓒ 신병철
부안 개암사는 시원한 외관으로 사람들의 맘을 잡아끈다. 멋있는 산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펼친 처마 곡선은 마치 학이 날개를 접는 것 같다고 누군가 표현했다. 치장하고 싶은 맘은 문살을 그냥 두었을 리 없다. 갖가지 꽃이 문살을 대신하고 있다. 이때부터 꽃살문 사찰의 시대가 열렸다.

조선은 불교를 억압한 나라라고 한다. 어떻게 이런 절간이 전국 곳곳에서 건축될 수 있었을까? 대답은 “조선의 종교는 불교이기 때문이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유교는 제사를 중시하긴 했지만, 내세를 관리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내세는 불교가 담당했다. 조선 전기에는 왕실이 살짝 몰래 지방에 사찰을 조금 세웠다. 규모가 클 수가 없었다.

16세기에 들어 양반지주들이 실질적인 지배세력으로 성장하고 경제력을 장악하자, 사찰 건축의 주체는 지주 양반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극락왕생 기원할 수 있고, 백성들을 종교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사찰들을 많이 지었다. 형식 완결을 추구하는 양반들의 문화가 반영되어 규모가 크고 형식을 대체로 갖춘 거대 사찰들이 16세기와 17세기 초에 많이 등장하였다.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과 대웅전이 이 시기에 지은 대표적인 절간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시점부터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양반지주 못지않게 상공인들이 큰 돈을 벌기 시작했다. 무역과 상업에 종사하는 중인과 상인들이 신분은 낮았지만 경제력은 만만치 않았다. 이들이 차츰 차츰 사찰을 짓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장사의 기본 중에 기본은 신용과 의리다. 자신의 집을 크게 짓고 싶었으나 지체 높은 양반들이 그냥 두지 않았다. 그래서 상인들은 건물에 대한 규제가 없는 사찰을 크게 짓기 시작했다. 아울러 사찰로 대중에게 내세 소원의 장소를 마련해 줌으로써 믿음과 신용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사찰은 위험한 물길에 희생당한 동료 상인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할 수도 있었다. 실질적인 계층상승의 지위를 확보할 수도 있었다. ‘돌멩이 하나에 새 여러 마리’였던 것이다.

17세기부터 상인들이 주체가 된 아름다운 사찰들은 대부분 상업 활동 지역 부근, 교통의 요지와 수로 중심지였다. 서해안 지역과 전라도 쪽 남해안이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다. 논산의 강경장은 당시 전국적인 물산이 교류되었던 곳이다. 논산 쌍계사와 부안 개암사의 뒤를 이어 변산 내소사, 강화 전등사와 정수사 그리고 해남의 미황사가 줄줄이 상인들의 필요에 따라 세워졌다. 아름다운 절은 이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변산 내소사 정경, 상인들이 주도한 사찰로 효율성과 개방성이 확연하게 눈에 띄는 아름다운 절간이다.
변산 내소사 정경, 상인들이 주도한 사찰로 효율성과 개방성이 확연하게 눈에 띄는 아름다운 절간이다. ⓒ 신병철
상인들은 형식과 지체를 소중히 여기는 양반과는 달리 효율성을 중시하고 개방성을 띠었다. 담을 쌓아 출입을 통제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사찰을 개방하였다. 그것이 그들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필수적인 대웅전이나 극락전을 짓고 그 외에는 꼭 필요한 부속건물만 지었다.

변산의 내소사는 일주문이 있으나 전나무 숲이 사실은 대신하고 있다. 사찰 경내로 들어가면 매우 개방적이다. 입구에 누대를 지나면 멋있는 대웅전이 중심에 턱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과감히 생략했다. 특별히 생활공간인 요사채를 양반집 못지않게 잘 지어 실질적인 기능을 강화했다.

다시 우리의 아름다운 미황사로 돌아가자. 응진당에는 석가모니의 제자들이 여럿 나열해 있다. 매우 개성적인 모습이다. 부처님은 깨달은 존재로 전지전능하지만, 매우 멀리 있는 존재로 느끼기 쉽다. 나의 소원은 너무 사소하여 잘 들어줄 것 같지 않다. 이런 때는 바로 응진당을 찾아 맘에 드는 분을 골라 떼를 쓰면 될 일이다. 논산 쌍계사에도 이런 분들이 수두룩하게 자리에 앉아 있다. 우리시대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냄새가 심해진다.

미황사 응진당 나한들, 부처는 너무나 완벽하여 사소한 소원을 말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다. 이럴때는 개성있고, 인간적 요소를 가득 담은 나한들을 찾을 일이다. 점차 사람 가까이로 신들이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다.
미황사 응진당 나한들, 부처는 너무나 완벽하여 사소한 소원을 말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다. 이럴때는 개성있고, 인간적 요소를 가득 담은 나한들을 찾을 일이다. 점차 사람 가까이로 신들이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다. ⓒ 신병철
이제 날은 어둑어둑해져 미황사를 떠나야 한다. 응진당의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분들도 헤어져야 한다. 뒤돌아보면 멋있는 달마산이 왈칵 발걸음을 낚아챈다. 누대 아래로 내려가면 대웅전이 속살까지 드러낸 아름다운 자태로 자고 가라고 유혹한다. 이대로 가면 언제 다시 저 품에 안길 수 있을까? 그냥 콱 여기서 살아버릴까? 자식들 얼굴이 금방 떠오른다. 할 수없이 발길을 옮긴다. 대웅전이 말한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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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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