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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선행
가까운 곳에 모여 사니 꼭 명절이 아니더라도 자주 만날 수 있어 긴 명절 연휴는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텔레비전도 보고 등산을 갈 때도 많았습니다.

한 해는 친구 내외하고 월악산 등산을 갔습니다. 음식점을 들어서는데 주인 아저씨의 표정이 영 심상치 않습니다. 표정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반찬을 내오는데 탁탁 소리를 내며 집어던지듯 합니다. 친구가 "아저씨! 화난 사람 같아요" 하니까, 뜬금없이 우리에게 "아줌마들, 맏며느리 아니지요?" 합니다.

얘길 들어보니 음식점에 손님은 오는데 차례 음식도 준비해야 하고 맏이인 음식점 주인아저씨네만 믿고 친척들이 아무도 오지 않아 기분이 안 좋답니다. 그러니 한가하게 등산 온 우리가 좋아보일리 없었겠지요. 우리는 그날의 일을 '놀러 갔다가 공연히 혼만 났다'고 두고두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제게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큰댁의 형님 내외분이 돌아가시고, 조카네 형편상 우리 집에서 차례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큰일이 생겼습니다. 남의 일로만 생각하던 시장보기며 음식 만들기가 현실로 닥쳤습니다. 초보자의 차례 상 차리기는 그렇게 지난해 시작되었습니다.

시장 볼 품목을 그냥 적는 것이 아닙니다. 인터넷의 차례상 차리기를 클릭하니 상차림에 대해 자세히 나왔습니다. 필요한 곳을 클릭하니 음식 모양이 움직이며 만드는 방법까지 나와 있으니 세상은 참 편리하네요. 우선 종이에다 쭉 적어 보았습니다.

'포, 산적, 밤, 대추….'

막상 시장을 가보니 고사리도 국산과 수입을 구별해야 하고, 밤도 껍질 깐 밤을 살 것인지 안 깐 밤을 살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할 사항이 많습니다. 나는 밤을 깍을 줄 모른다며 툴툴대는 남편. 그래도 직접 깎아야 정성이 있지 않겠냐는 저와 작은 실랑이를 벌이며 시장보기는 마쳤습니다.

우리가 차례를 지내게 된 줄도 모르고 놀러 오신 친정의 숙모가 더 걱정을 하십니다. "조카, 혼자 할 수 있을까?" 고개를 여러 번 갸웃거리시더니, 집에 가서도 걱정을 하셨다고 합니다.

사실은 숙모도 혼자 차례상 준비를 한 적이 없기에 더 걱정이 되셨을 겁니다. 시장 봐 온 것은 산더미 같이 많은 데 손질 할 생각은 안 하고 앉아 있는 내 모습은 한심 그 자체였을 겁니다.

"나, 아무래도 안 되겠어"

저는 중대한 결심을 했습니다. 전을 다른 사람들처럼 하루 전에 부칠게 아니라 이틀 전에 부쳐야 차례상에 올려놓을지 말지가 판가름 날 것 같았습니다.

녹두전, 꼬치, 생선전, 육전, 두부전을 해야 한다니까 남편은 슬그머니 집 밖으로 나갑니다. "황사장은 뭐하나?" 하면서 말이지요. 미리 부쳐서 냉장고에 보관하면 맛은 떨어질지 몰라도 안심이 될 테니 미리 해 보자는 계산이었습니다. 다른 집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는데 우리 집에서만 기름 냄새가 납니다.

신문지를 주변에 깔고 전기 후라이팬에 두부, 생선전, 꼬치, 녹두전, 육전 순으로 부쳤습니다. 시작할 때 마음은 조금만 해야지 했는데 부재료를 넣다보니 양이 점점 늘어납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 2시경 시작했는데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일을 마쳤습니다. 꼭 열 두 시간의 작업입니다.

"아! 나 너무 힘들어"

남자들끼리 모여 술 한 잔 했다며 자정이 다 되어 들어 온 남편. 얄밉긴 하지만 혼자 하니 오히려 거추장스럽지 않아 편했다고 스스로 위로를 합니다. 만약 옆에 있었다면 잘 모르면서도 이것저것 참견을 해 신경이 쓰였을 겁니다.

조카 며느리와 음식 준비를 할 때는 음식을 조금만 하자고 오히려 제가 제안을 했었는데 막상 제가 준비를 하려니 양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작은 채반에 각각 담아 베란다에 내 놓고 잠을 청해 봅니다.

'내일은 뭘 준비해야 하나?'

머릿속은 온통 차례 준비로 가득 합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베란다에 내 놓았던 전을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부칠 때보다 색깔과 모양이 더 예뻐졌다고 자랑을 하며 남편에게 보입니다.

"수고했네"
"웬걸 이렇게 많이"

막상 다음날은 할 일이 없습니다. 아 참! 물김치도 담아야 한다고 했는데. 제기도 갖추지 못해 평소에 쓰던 접시를 깨끗이 닦아 준비를 했습니다.

'탕국도 미리 끓여 놓아야 하지 않을까?'

미리 끓여 놓은 탕국 맛이 훌륭합니다. 이제야 자신감이 생깁니다.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자랑을 합니다.

"나도 하면 잘 한다니까."

드디어 명절날 아침입니다. 이틀 전부터 준비한 음식을 다시 데우고 손질하고 담고 부산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상 위에 차례진 음식을 보며 아들에게 "얘, 우리 사진 찍어두자" "우리가 어떻게 차례를 지냈는지 기념으로 찍어 봐" 왜냐하면 까다롭게 절차며 음식을 생각하시는 고모부님께 검사를 받아 보려는 심산입니다.

서로 절차를 몰라 "아빠!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예요?" 형님의 주도로 차례를 지내 온 남편은 자신이 없는 듯 "아닐걸" 합니다. 우리 세 식구는 그렇게 차례를 지냈습니다.

올해는 조금 더 나아질 겁니다. 한 해 이력이 붙어서 하루 전에 전을 준비해도 됩니다. 잘했다고 칭찬해 주신 시누이 내외 분 덕분에 자신감도 생겼으니, 초보자의 딱지를 떼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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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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