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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섭이 머리 막내동생.
호섭이 머리 막내동생. ⓒ 이선미
그 막내 동생이 어느덧 고등학교 입학을 할 덩치 큰 소년이 되어 있다. 내 여동생과 나는 내 막내동생을 '돼지감자'라고 부르는데 덩치가 산만 해서 아빠보다 훨씬 큰 175cm 키에 몸무게도 심각하게 불었지만 얼굴은 어렸을 때랑 별반 다르지 않아 몸만 어른이고 얼굴은 아직도 아이다.

오늘 일기장을 뒤적거리는데, 일기장 사이에서 우연히 우리 막내동생의 어렸을 적 사진이 튀어나왔다. 춘천에 와 자취생활을 하면서 동생의 사진을 쭉 가지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보니 세월이 무상하다. 호섭이 머리에 발갛게 상기된 볼, 호돌이와 펭돌이(호랑이 인형과 펭귄인형의 이름) 친구를 데리고 살던 내 동생이 이제는 175cm의 한 덩치가 되다니.

어렸을 적부터 별 욕심이 없고 소심한 구석이 있어 행여 학교에 가서 왕따를 당하지는 않는지 노심초사하며 막내 동생을 학교에 보냈다. 막내 동생이 1학년 때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우리집은 막내동생에 대한 애틋함이 더하다. 나 또한 맏이로서 막내동생에게 그동안 해준 것이 없어 못내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고는 한다.

두 달 전, 막내동생이 메일을 보내왔다. 자기가 꼭 사고 싶은 게임기가 있으니 협조를 해달라면서 게임기를 사기 위한 계획서를 한글 파일로 무려 3장이 되는 장문으로 보내온 것이다. 나는 그 계획서를 보고는 한참 배꼽을 잡고 웃었다.

돈을 모으기 위한 동생의 노력은 이러하다.

호돌이와 함께
호돌이와 함께 ⓒ 이선미
"우유급식을 한다고 거짓 보고를하여 이 돈도 횡령하는 방법이 새로이 떠오르고 있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이발비와 미용실 비용의 차이를 이용한 방법도 있다. 가장 성공 확률도 높고 적어도 3000원을 매달 확보할 수 있다. 허나 머리모양이 심하게 망가진다는 치명적 단점이 존재하므로 실행하기는 가장 어려운 계획일 듯하다."

"-11월의 작전 [공부하는척]-

이 작전이 전개되면서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험을 잘 봐야 할 것이다. 공부하는 척이 가장 좋을 듯하다. 이 방법이 부모님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다. 아니면 아버지께 '안전 운전 하세요'와 같은 말로 기분을 업 시키도록 하자."


물론 내 동생은 소심해서 우유 급식 돈을 횡령하지 못한다. 결국 미용실에 간다고 하고 3000원 싼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한번 깎은 것이 전부였다. 그 후 그동안 모아 놓았던 장난감 로봇을 학교 친구 동생들에게 여러 개 팔아 3만원을 모았다.

동생이 돈에 집착을 보이고 자기 힘으로 모아 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른들이 돈을 줘도 그대로 엄마, 아빠에게 상납하고는 별 이야기 안 하던 막내 동생이 자기 힘으로 돈을 모아 보겠단다.

물론 게임기를 사겠다는 것이지만 그런 집념이 내 동생에게 생겼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중학교 사춘기 시절도 있는 듯 없는 듯 무기력하게 지내온 동생이, 학원비가 없어 학원도 끊고 집에서 공부를 하다가 스스로 낙담해 버린 동생이,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도 생기고 공부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동생은 그렇게 돈 십만원을 모았다. 그러나 그 비싼 게임기는 20만원대였다. 동생의 노력은 알지만 우리 집은 사 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동생이 낙담할까봐 괜히 속상했다. 물론 게임기 하나가 뭐 대수냐 싶지만, 동생이 자신이 노력해서 갖고 싶은 것을 갖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동생은 부모님께, 두 누나에게 게임기 살 돈을 달라고 떼쓰지 않았다.

막내동생이 그림판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막내동생이 그림판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 이선미
그런데 최근 우연치 않게 모 인터넷 통신을 신청하면 사은품으로 그 게임기를 반 값에 준다는 광고를 보게 됐다. 이사를 하고 10만원짜리 중고 컴퓨터 본체를 사서 인터넷을 하게 된 나는 별 고민없이 그 인터넷 통신을 신청했다. 상업성이 다분한 사은품이고 인터넷 사용료가 조금 비싸기는 했지만 인터넷도 하고, 동생이 원하는 게임기도 얻고 일석이조였다.

조금 있으면 그 게임기가 고향집에 도착한다. 내 막내 동생은 한창 들떠 있다. 동생이 들 떠 있으니 나도 기분이 좋다. 내 동생이 질풍노도의 고등학교 시절을 무사히 잘 마쳐야 할텐데…. 우리 순박한 돼지감자에게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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