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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서는 2005년 새해를 어디서 어떻게 맞이하셨습니까? 저는 늘 태백산 천제단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떠오르는 해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금년은 뜻밖에도 새롭고 감격적인 기회가 주어져 가족과 특별한 생각을 가진 30여명의 탐사단과 함께 백두산 정상(천문봉 2670m)에서 극적으로 그리고 황홀하게 맞이했습니다.

▲ 2005. 1. 1 백두산정상일출
ⓒ 이덕근
사실 백두산에서 첫해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오래 전부터였습니다. 하지만 올해 보겠다고 결심한 것은 무척 급작스럽게 정하였습니다.

인터넷을 서핑하던 중 한 인터넷신문의 작은 광고창에서 '백두캠프' 참가자를 모집하는 문안을 보고 바로 정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사이트를 보고 예약하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세상 천지에 그렇게 중요한 일을 '혼자서', '급하게', '상의도 없이' 정하는 게 어디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더군요.

조금은 미안했지만 이내 이해하는 걸로 확인하고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동계 등산이고 맹추위가 예산되는 백두산에서의 새벽을 견뎌내려면 방한복, 아이젠, 스패치, 랜턴 등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몇 가지는 갖추고 있었습니다만, 아내와 아이들 3명은 전무한 상태거든요. 등산화부터 사고 방한복, 그리고 등산 소품들을 사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실감이 나더라구요.

▲ 백두산 가는 길 설경
ⓒ 이덕근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그룹 여행이라서 좀 불편하지만 재미있었습니다. 인천에서 장춘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연길까지 갔습니다. 개인적으로 여행할 때는 인천에서 연길로 가는 직항을 이용하면 훨씬 편하고 시간도 단축됩니다.

백두산에 가기 위해서 아침 일찍 출발해 쉬지 않고 꽁꽁 언 비포장 눈길을 6시간여를 달려갔습니다. 중간에 백두산 선봉이라는 설경이 뛰어난 곳을 지나는데 잠시 버스를 멈추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람들은 벌렁 드러눕기도 하고 탄성을 지르며 그야말로 '난리부르스'도 아니었습니다.

▲ 연변민족작가 류연상 선생
ⓒ 이덕근
연길 백산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곧바로 특별히 준비된 류연상 선생님의 '한국 현대사 속의 만주'에 관한 특별 강의를 들었습니다. 류 선생님은 연변인민출판사 주임으로 근무하고 계시는 조선족 3세라고 합니다. 주로 만주에서 우리 민족이 웅대한 포부를 펼치고 자리잡아 왔던 내용과 요즈음 한반도에서의 고구려에 대한 논쟁에 대한 개인적 소감을 피력하였습니다.

특히 고구려사 문제는 보다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였습니다. 역사의 근간은 몇 사람의 주장으로 흔들리지 않는 만큼 한국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역사학자들의 진지한 연구와 이를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류 선생님은 조선족에 대한 민족애적인 연계를 요청하였습니다.

▲ 윤동주 시비 앞에서 우리 가족
ⓒ 이덕근
역사적 현장에서 듣는 강의라 모두들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편안하게 잠들었습니다. 사실 현지로 가기 전에는 장급 모텔정도에서 자는 줄 알았습니다. 백산호텔은 장쩌민 주석의 지시로 건축된 건물이라 그런지 시설이나 내부 인테리어가 제법 괜찮은 호텔이었습니다.

다음 날 용정중학교, 일송정, 해란강을 거쳐 장장 6시간의 비포장도로 질주를 거쳐 백두산 천지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조선족들이 운영하는 듯한 고려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점심을 잔뜩 먹었습니다. 그 다음 독일에서 특별 제작된 '설상차'를 타고 1시간 40분을 달려 천문봉에 도착했습니다.

천문봉에서 해넘이를 보고 난 후, 저녁에는 불꽃놀이와 약간의 주연을 가졌습니다. 백두산 정상에서의 불꽃은 정말 색다른 감동을 주었습니다. 서로의 어깨를 잡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동행한 < KBS >와 < MBC > 그리고 <한겨레신문>에서 온 기자들은 그런 와중에도 본업이라서 그런지 취재하느라 무척 분주하게 애를 쓰는 것 같았습니다. 남들 즐길 때 인터뷰하고, 남들 오를 때는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때로는 짖궂은 질문을 해가면서 말입니다.

▲ 천문봉 일출2
ⓒ 이덕근
다음 날 아침 일찍 2670m에 이르는 천문봉으로 전쟁을 치르는 각오와 기분으로 올라갔습니다. 숙소에서 대체로 10여분 이하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추위와 강풍으로 인해 25분 정도 걸려서 정상에 설 수 있었습니다. 바깥 날씨가 영하 30도가 넘었고 그 추위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춥다고도 못하고 준비해 간 바지는 얇아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날씨가 정말 기차게 맑았습니다. 백두산에서의 기상은 매우 변덕이 심하여 맑은 날을 보려면 5대에 걸쳐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구름 한 점 없고 그 흔하다는 안개도 없었습니다. 일 년 내내 봉우리가 구름에 가리어 좀처럼 자태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백운봉(2691m)도 아주 가까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 천문봉 일출에 환호
ⓒ 이덕근
점차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아침 6시 50분경 드디어 백두산 정상으로 새해가 불끈 솟아 올랐습니다. 모두들 소리지르고 기원하고 얼싸안았습니다. 국내 을유년은 우리 나라가 광복 60돌을 맞는 해이자 6·15 남북 정상회담 5돌이 되는 해입니다. 남과 북이 비록 지금은 대치 상태가 지속되는 듯하지만 마음을 열고 하나되는 날이 꼭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득 안고 어김없이 백두산 정상 장군봉(2750m)위로 떠올랐습니다.

벌건 새해의 태양이 먼 봉우리들 위로 솟아오르니 자연스럽게도 몇 가지 소원을 빌었습니다. 빌기만 하면 모두 들어줄 것 같았습니다. 가족 건강, 내 건강, 직장의 일들, 그리고 어줍잖게도 나라의 국운도 활짝 열리라고 빌었습니다. 중국 땅 민족의 영산 백두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새해는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지고 밝고 힘차게 시작되었습니다.

▲ 백두산정상 기상관측소
ⓒ 이덕근
하산하는 길에는 장백폭포 근처에서 83도에 이르는 고온의 노천온천을 즐겼습니다. 그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고속도로를 이용해 연길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날 저녁은 연길 시내에 있는 북한식당 '유경'에서 북한 음식으로 먹었는데 제법 맛있는 만찬이었습니다. 이어 연길에서 심양으로 옮겨 샹글리아호텔에서 1박하면서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 아내와 함께 천지에서의 일출
ⓒ 이덕근
다음날 연길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참가자 모두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 때까지도 정상에서의 해맞이가 잊혀지지 않는 듯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다음 해맞이도 다시 백두산으로 같이 오자는 약속도 하면서….

덧붙이는 글 | * 백두캠프탐사단의 활동 장면은 한겨레신문 사진기사, KBS1 TV 9시뉴스(2005.1.3 21:00방영), KBS2 TV의 무한지대Q(2005.1.6. 19:20방영)을 통하여 방송되거나 게재되었습니다.

* 제가 촬영한 백두산에 관한 사진들(CANON EOS 300D 사용)은 제 홈피(http://dklee.icon.or.kr)의 자료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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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의 모자라는 부분에 대해 지원을 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기술, 자금, 인력, 정보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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