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려서부터 노래를 불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그러나 왜 통일을 해야하는지, 혹은 정말 통일이 되길 바라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오히려 통일이 됐을 때 우리가 짊어져야 할 경제적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이들이 그렇다. 38선이 갈리지 않고, 남한과 북한이 하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건 죄다 역사책에서 본 것뿐이다. 우리가 반만년을 함께 해온 한 민족이란 사실은 이제 추억이 돼버렸다. 그것도 기억 속에서 거의 잊혀간 아련한 추억.

통일전망대를 지나 민통선으로 들어갔다. 민통선에서 몇 분을 더 들어가면 'GOP'가 나온다. 통문을 열고 또 몇 분을 더 가면 군사분계선 MDL을 넘는다. 여기부터가 북한 땅이다. 엄밀히 말하면 비무장지대 북측 경계선이다.

저 앞에서 희미하게 밤색 군복을 입은 인민군이 보인다. 총을 한 쪽 어깨에 둘러메고 씩씩하게 걸어온다. 터진 입술과 까칠한 피부는 우리의 군인과 다를 게 없다. 사실 내가 군 복무했던 곳도 이 근방이다. 비무장지대 수색과 경계가 주임무였기 때문에 멀리서나마 인민군을 볼 기회는 많았다.

그러나 이처럼 코앞에서 본 건 처음이다. 그들의 가쁜 숨이 내뱉는 육체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나는 느꼈다. 이들도 나와 다를 바 없는 젊은이란 사실을. 결코 어릴적 보았던 '똘이장군' 만화에서처럼 늑대나 괴물의 모습이 아니란 것을.

정전된 호텔 로비에서 첫 만남

북한 GOP 통문을 지나 이십여분 달리면 해금강 호텔이 나오고, 바로 앞에 북측 세관이 있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북측 관할 구역이다. 북측 세관원들이 우리 출입증을 검사하고, 우리가 가져온 짐을 살펴본다.

이게 끝나면 다시 이십여분 버스를 타고 온정각 휴게소를 지나 금강산 호텔로 간다. 몇 년 전까진 외빈의 숙소로 사용됐던 금강산 여관을 현대아산측이 리모델링해 호텔로 바꿨다. 그런데 북측 전력 사정이 좋지 않다보니 사흘에 한 번 꼴로 정전이란다.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 호텔은 정전이었다. 로비에서부터 프론트까지 쭉 진열된 촛불과 그 사이로 보이는 직원들의 희미한 얼굴이 낯설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나긋하게 “안녕하십네까?” 하고 반겨주는 이들의 목소리는 그 무엇보다 살갑게 느껴졌다.

짐을 풀고 식사를 하러 갔다. 금강산에서 직접 따온 각종 산나물 요리가 일품이었다. 이 외에도 동해에서 잡아 올린 도루묵을 튀긴 요리가 올라왔고, 흙돼지구이, 홍합죽 등이 코스로 계속 나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날 최고 요리는 평양식 냉면이었다. 조미료 하나 쓰지 않고 시원하게 우려낸 국물 맛이 내가 먹어본 냉면 중 으뜸이었다. 보기엔 매우 익숙한 음식들이었지만, 그것이 전해주는 색다른 맛에 심취해 반주로 나온 개성인삼술과 백두산 들쭉술 몇 잔을 거뜬히 비웠다.

호텔로 돌아오니 불이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접대를 하고 있는 아가씨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엘리베이터 걸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 단아하게 빗어 올린 검은머리. 희고 고운 피부에 홍조 띤 두 뺨. 텔레비전을 통해 봤을 때보다 더욱 곱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모습에 잠깐 황홀했다. 나도 몰래 “아가씨, 얼굴이 참 곱습니다”란 말이 나왔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리며 수줍은 듯 “감사합네다”하고 말을 받았다.

그렇게 내 방으로 돌아와선 그 날의 피로를 그대로 침대에 풀어놨다. 그 날 밤 꿈 속에서 난 아까 봤던 그 아가씨와 꽃밭에서 뛰어 놀고 있었다.

"통일되어 다시 만나세…"

이튿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삼팔담에 올랐다. 선녀와 나무꾼 설화가 있는 연못이 바로 여기다. 정상에서 보면 여덟 개의 연못이 보이는데 그 중 네 번째가 선녀가 목욕을 하고 갔다던 연못이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세 시간 정도 걸렸다. 산을 오르는 내내 금강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절경에 감탄했다. 듣던 대로 금강산은 천하제일 명산이었다. 바위산인지라 남한에선 볼 수 없는 명관들이 펼쳐졌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과, 기암괴석 사이로 쭉쭉 올라있는 소나무들. 바위 사이를 졸졸 흐르는 한없이 맑은 금강산 물은 정수기로 몇 번씩 거른 물보다 훨씬 깨끗하고 시원했다.

산행을 마치곤 온천엘 들렀다. 금강산의 암반을 뚫고 나온 뜨거운 열기가 내 몸을 감쌌다. 덕분에 며칠 전부터 감기에 걸렸던 내 몸의 피로도 싹 가시는 듯 했다. 따뜻한 물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니 낮에 북측 금강산 병원에 들렀던 생각이 났다.

감기가 심해 의사를 찾았다. 진료실엔 의사 한 명과 간호원 한 명이 있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간호원의 무뚝뚝한 말투다. “바지 내리시라요.” 주사 맞으란 얘기다. 나도 몰래 키득키득 웃음이 났다. 따지고 보면 불친절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사뭇 진지한 얼굴 표정을 보며 오히려 정겹게 느껴졌다. 덕분에 기력도 다시 살아났다.

저녁 땐 평양 기예단의 공연을 봤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그대로다. 하늘 위를 나르고, 장대를 원숭이처럼 기어오르는 등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혹시나 떨어지지 않을까, 마치 내가 공중에라도 매달린 듯 느껴지는 1시간 30분의 경험이었다.

그러나 진기한 공연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공연이 끝나고 기예단 전부가 무대에 나와 노래를 부를 때였다. 노래의 내용인즉슨 “통일되어 다시 만나세”였다.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애절한 목소리와 남측 관람객들의 기립 박수 소리가 하나가 됐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영정으로 밟은 고향 땅

셋째 날. 이제 남측으로 돌아가야 한다. 막상 떠나려 하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묵었던 금강산 호텔과 그 주변을 돌며 언제 다시 올 줄 모르는 이 곳의 정취를 눈 속에 담았다.

돌아오는 길, 가이드에게 이산가족 상봉시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얘길 들었다. 작년 이맘때란다. 한 중년 부부가 관광을 왔는데, 다니는 곳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들고 다니더란다. 이유인즉슨 금강산 호텔이 있는 온정리가 당신의 고향인데, 이 곳 땅 밟아 보시는 것이 평생 숙원이셨단다.

그런데 금강산 관광 출발하는 날 새벽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 먼저이긴 하지만, 이승을 떠나시기 전에 고향 땅 먼저 밟게 해드리고 싶어 식을 뒤로하고 금강산을 찾았단 얘기다.

문득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할아버지께서는 북측에 형제를 두고 남쪽으로 내려 오셨다. 몇 달 후에 다시 만날 것이란 약속을 하고 말이다. 할아버지께선 생전에 편히 북쪽 하늘 한번 쳐다본 적이 없으시다. 북측에 두고 온 형제 부모들 걱정에 돌아가실 때까지 가슴 속에 한이 맺혀 계셨다.

벌써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15년이 됐다. 그 땐 내가 너무 어려서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돌아가신 날 나 또한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가족과 생이별하고 평생 그리워하면서도 한 번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 했던 할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서 그것이 더 슬펐는지 모른다.

통일은 옛 기억이 아니라 우리의 오늘

금강산 관광, 관광이라 부르기엔 너무 가슴 뭉클한 경험이었다. 같은 핏줄에 반만년을 함께 살아온 민족인데 왜 이리 서로를 미워하고 따로 떨어져 살아야하는 건지. 남과 북이 처음 나뉘어졌을 때 북쪽에 살던 사람들과 남쪽에 살던 사람들이 사회주의가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알고 있었을까?

평범한 사람들에게 체제가 어떻고, 무슨 이념을 따르고 하는 그런 것들이 중요할 리 없다. 그저 우리 할아버지와 당신의 형제들처럼 가족끼리 오순도순 모여 사는 게 꿈의 전부인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분단의 고통으로 이 땅에 한 맺힌 피울음이 가실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북한에 있는 우리의 형제들도 우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우리처럼 흰쌀밥에 맛깔스런 김치를 얹어 먹고 있다.

북한에 직접 가서 보고 느끼기 전엔 몰랐다. 왜 통일이 돼야 하는지, 통일이 왜 우리의 소원인지 말이다. 점점 젊은 세대에겐 잊혀져가는 과거의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길 기대해 본다. 아니, 남과 북이 하나였던 시절이 그저 지난 역사 속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살아있는 우리의 오늘이 되길 바라본다.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가슴을 울릴 수 없다면 우린 잊어버릴 게다. 한 쪽 가슴이 아직도 뻐근하다. 이 뭉클함 통일이 될 그 날까지 잊혀지지 않길 가슴 속에 새겨둔다.

관련
기사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초록빛 겨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