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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물상 구역 세지봉 정상에 눈이 하얗게 내렸다. 천선대 정상에서 찍었다.
ⓒ 최윤미
아름답게 단장한 숙녀의 아름다움, 삼일포

금강산에서 남측 관광객들이 둘러볼 수 있는 곳은 구룡연 구역과 만물상 구역, 삼일포, 해금강 등 네 지역이 전부다. 모두 외금강 지역으로 내금강 지역은 북측 주민들을 위해서만 개방되어 있다. 모든 코스는 북측 주민들, 마을과 철저히 차단되어 있었지만, 온정각에서 12km 떨어진 삼일포로 이동하는 동안 지났던 구읍마을, 양지마을은 비교적 차 안에서 가까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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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초록빛 겨울


▲ 삼일포 가는 길에 보이는 북녘의 들판. 멀리 마을과 외금강 자락이 보인다.
ⓒ 최윤미
학교에서 고무줄 놀이 하는 아이들, 냇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들, 거대한 나뭇단을 지게에 지고 가는 할아버지와 논 사이로 난 길 가운데 우뚝 서서 미동도 없이 버스를 바라보던 무표정한 군인들도 볼 수 있었다. 한 40년쯤 거슬러 올라가면 남한 사람들 사는 모습도 이랬을 것이다.

구읍마을과 양지마을은 퇴락한 탄광촌의 사택을 연상시켰다. 낡은 기와지붕에 흰 벽, 파란색, 노란색 창틀을 가진 똑같은 모양의 단층집들은 아침 저녁으로 하얀 연기를 피워 올렸는데, 왠지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 삼일포 전경. 가운데 조그맣게 보이는 것이 사선정이다.
ⓒ 최윤미
삼일포로 이동하는 동안 인솔 조장은 끊임없이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고성군은 현재 북측의 북고성, 남측의 남고성으로 나뉘어 있지만 전쟁 전에는 하나의 군이었다. 그래서 구읍마을과 양지마을에 특히 이산가족이 많은데, 남측 이산가족들이 금강산 여행을 와도 두 마을은 버스로 지나칠 뿐 한걸음도 딛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삼일포로 가는 이 길은 눈물로 얼룩진다고 한다.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 심정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봉래대 가는 길. 김일성 동지 만세라는 글씨가 보인다.
ⓒ 최윤미
삼일포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남북한 모두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꼽히는 곳이다. 이름의 유래도 신라의 사선인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이 하루 머물기 위해 왔다가 아름다움에 취해 3일을 머물렀다 해서 삼일포이다.

<택리지>를 쓴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은 "고성의 삼일포는 맑고 묘하면서도 화려하고 그윽하여, 고요한 중에 명랑하다. 숙녀가 아름답게 단장한 것 같아서 사랑스럽고 공경할 만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삼일포는 구불구불한 해안선과 소나무 가득한 언덕, 그리고 평평한 들판과 어울려 무척 고요했다. 물빛은 바닥까지 들여다 보이도록 맑았는데, 연화대, 봉래대, 장군대, 세 곳의 전망대와 솔숲을 천천히 산책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모두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깨끗한 풍경이 북한이지만 우리땅에 남아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웠다. 마지막 전망대 장군대에서는 환경관리원이 호수 가운데 자리한 섬, 와우도와 사선정, 단서암에 대해 설명하고, 노래도 한 곡 불러 주었다.

▲ <세상에 부끄럼 없어라>라는 노래 가사 같다.
ⓒ 최윤미
빗방울이 굵어져 서둘러 산을 내려오면서 바위에 새겨진 '적기가'를 뚜렷이 읽을 수 있었다. 구룡연 곳곳은 물론 삼일포에서 만나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나 암벽에는 수많은 문구들이 새겨져 있었다. 주로 '위대한 김일성 동지 만세'나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문구, 그리고 김일성, 김정숙, 김정일의 방문 기록, 혁명가나 시문 등이 새겨져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북한의 군인들은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관광객들이 탄 버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들판 가운데, 강둑 위에, 철길 위에 마치 이정표나 깃발처럼 굳게 서 있었다.

▲ 정성대에 엉거주춤 서면 귀면암과 만물상이 압도한다. 마치 무게가 느껴지는 하다.
ⓒ 최윤미
하늘로 오르는 고행의 사다리, 만물상

셋째날 아침, 먼 산의 눈내린 봉우리를 비추며 아침해가 붉게 떠올랐다. 땅에는 비가 내렸지만 산 꼭대기에는 눈이 되었던 모양이다. 금강산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말로만 듣던 만물상이 바라다보이는 천선대까지 등반하는 것이다.

인솔 조장들이 상팔담 구역보다 힘든 길이라고 누누이 얘기한 터라, 어제 산행이 무리였던 할머니와 아주머니들 중에는 등반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사람들은 만물상의 70%를 조망할 수 있다는, 5분 정도 거리의 정성대까지만 등반했다.

▲ 천선대 가는 길 중턱에서 바라본 풍경. 저 봉우리 이름이 뭐였는지.
ⓒ 최윤미
'첫사자목'이라고도 부르는 정성대에 오르니 만물상이 쏟아져내릴 듯 압도해왔다. 경사가 워낙 있는데다, 거대하고 날카로운 느낌의 봉우리와 바위가 대부분어서 고개를 뒤로 한참 젖혀야 했다. 그 자리에서는 귀신의 얼굴 같다는 귀면암(鬼面岩)이 똑똑히 보였다.

해금강 구역을 선택한 사람들과, 산행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이 빠졌음에도 만물상 구역은 좁고 가파른 외길이어서 추월을 하거나 머무를 틈도 없이 사람에 밀려 올라가는 형국이었다. 처음에는 모두 서둘렀지만, 곧 한 줄로 늘어선 그대로 한발 가고 쉬면서 천선대까지 올라갔다. 왕복 2시간 코스였는데, 정체 현상 때문에 3시간은 족히 걸렸다.

▲ 끝없이 펼쳐진 외금강 능선들. 말을 잊게 만들었다.
ⓒ 최윤미
가끔씩 뒤돌아볼 때마다 고도가 쑥쑥 높아져 있어서 저 아래 길과 능선들이 아득하게 보였다.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천선대(해발 936m)에 오르자,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맞은편에 우뚝 선 널따란 세지봉은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병풍처럼 펼져친 그 풍경이 천선대를 감쌀 듯 하얗게 펼쳐져 있고, 거기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기암괴석이 또한 병풍처럼 늘어선 만물상이 있고, 뒤로 돌아서면 관음연봉, 상등봉, 옥녀봉, 세존봉 등 끝없이 이어진 외금강 능선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만물상 구역도 절반 이하의 산행로는 이처럼 순하고 곱다.
ⓒ 최윤미
남측의 순한 산들과는 다른 이 풍경을 어찌 묘사해야 할지. 금강산의 거대한 규모와 위용이 느껴지는 이 풍경은 통일이 되기 전에는 다시 못보리라. 감상에 빠질 틈도 없이 사람들에 밀려 천선대를 떠나, 하늘문을 지나고 햇빛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가파른 산길을 내려왔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한걸음 내려와 올려다볼 때마다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던 바위 풍경들이 툭툭 튀어 나왔다.

▲ 칠층암과 절부암. 겨울의 짧은 햇살이 비쳐들고 있다.
ⓒ 최윤미
아쉬움을 묻고 돌아오는 길

만물상에서 돌아와 온정각에서 바로 출경이 시작되었다. 북측 출입사무소에서 출경 심사를 받고 금강산 관광 전용도로를 통해 북한을 빠져나왔다. 도착할 때와 반대의 순서로 모든 과정을 되짚는 동안, 3일 간의 짧은 일정이 빠르게 스쳐갔다.

북한이 아니라 금강산만 보고 가는 것, 내금강은 못 보고 외금강만 보고 가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비무장지대에 들어섰을 때 인솔 조장이 작자미상의 시조를 한 수 읊어 주었다. 시조에는 그 순간 내가 느꼈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같은 풍경을 보고 느끼는, 시간을 초월한 동감(同感). 내겐 통일을 바라는 까닭이 한 가지 더 생겼다.

한 번 오기도 요행인데 두 번 기약 다시 있으리
오늘 본 이 경치는 먼 훗날 마음만 괴롭힐 것을
돌아가 꿈을 꾸어도 이 길만은 잊지 않으리
잠드는 그때마다 다시 찾아 들게 되리라

덧붙이는 글 | * 금강산 여행에서 앞으로 달라지는 것들
금강산 관광 인솔 조장의 말에 따르면 남측 양양과 북측 원산을 연결하는 동해북부선 철도가 2005년 말 완공되면, 철도를 통한 금강산 여행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외금강의 구룡연, 만물상, 삼일포, 해금강 구역 외에 수정봉 등반 코스가 새롭게 열리며, 금강산 관광지구는 원산, 통천까지 확대된다. 현재 북측과 협의 중인 사항으로 2005년 말쯤 판문점을 통한 평양, 개성 여행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이 기사는 12월 14, 15, 16일 다녀온 금강산 여행기 입니다. 쌍용 사보와 제 블로그(blog.paran.com/withwhee)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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