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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작가 조세희의 연작소설입니다. 사람들은 이 책을 '난쏘공'이라고 줄여서 불렀습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총 11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한편이 바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입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영호, 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소설은 계속됩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난장이'는 소외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도시 빈민과 저임금 노동자와 경제 논리에 밀려난 우리네 농민 모두가 슬픈 난장이입니다. 난장이는 일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외롭고 음습한 곳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때로는 방치되고 때로는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난장이는 인간답게 살고 싶었습니다. 최소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길 원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인 난장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은 난장이가 아닙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5년부터 연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유신 시대였습니다. 이분법적인 논리가 횡행했습니다. 지식인은 침묵을 강요 당했습니다. 아니 지식인은 죽었습니다.

지식인은 읽고, 쓰고, 비판할 자유마저 박탈당했습니다. 사회는 정체되고 곳곳에서 썩은 냄새를 토해냈습니다. 희망이라고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빗대어 표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장이>의 탄생은 그래서 필연이었습니다.

저는 작가 조세희 선생을 한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선생으로부터 사숙(私淑, 직접 가르침을 받진 못하지만 그 사람의 학문이나 인격을 본으로 삼고 배우는 것)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가 20여년 전입니다.

저는 <난쏘공>을 제 문학의 좌표로 삼았습니다. 몇 번이고 <난쏘공>을 베껴 썼습니다.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되풀이해서 베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단문(短文)이 몸에 배어 버렸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 글을 무미건조(無味乾燥)하다고 합니다. 문장이 너무 짧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게 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문장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습니다."

저는 <난쏘공>을 사랑합니다. 20년 전부터 <난장이>는 제 스승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난쏘공>을 읽고 있습니다. 글이 잘 씌어지지 않을 때 저는 <난쏘공>을 베껴 쓰곤 합니다.

분명 <난쏘공>은 스테디셀러입니다. 벌써 150쇄 넘게 판을 찍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기록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이런 소설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이런 소설들이 많이 팔리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들에게 '소외(疏外)'만큼 무서운 적은 달리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2005년입니다. 저는 2005년 첫 글을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2005년은 <난장이의 시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소외 받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2005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300쇄 기념 한정판)

조세희 지음, 이성과힘(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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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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