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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개불알풀꽃(3월 12일 촬영)
큰개불알풀꽃(3월 12일 촬영) ⓒ 김민수
그냥 개불알풀꽃을 만나기 전에는 '뭐 이렇게 작은 꽃이 크다고 '큰'자가 붙었나?' 싶었다. 이름이 불경스러운 것도 서러운데 그 앞에 '큰'자까지 붙었으니 작은 꽃 치고 꽤나 서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개불알풀꽃을 만나고 나니 정말 커도 보통 큰 것이 아니다. 그 이름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예쁜 꽃인데 이름을 '봄까치꽃'으로 불러주자고 하기도 하고, 실재로 그렇게도 부르는 모양이다. 어떻게 불러도 그 꽃은 그 꽃이겠지만 그냥 '개불알풀꽃'이라는 이름이 더 정겹다. 이 꽃이 큰개불알풀꽃이 된 내력은 마치 꽃의 모양이 개의 불알 같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영락없이 똑같이 생겼다.

이른 봄 양지바른 곳에서 무리 지어 피어나면 그 보랏빛의 유혹이 자못 강렬하다.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꽃이니 '좋은 소식'을 얼려주는 길조로(지금은 과수 농가에서 골칫덩어리지만) 알려진 까치의 이름을 붙여서 '봄까치꽃'으로 불러주는 것도 괜찮겠다.

6살짜리 막내가 봄 햇살 따스한 날 큰개불알풀꽃과 멍멍이의 거시기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다가 깔깔 웃는다.

"아빠, 정말 똑같다. 똑같아. 하하하~"

개불알풀꽃(4월 16일 촬영)
개불알풀꽃(4월 16일 촬영) ⓒ 김민수
개불알풀꽃은 큰개불알풀꽃에 비하면 정말 작다. 아무리 작아도 혈통은 속일 수 없는 법인지라 그 모양새는 어디로 가지 않았다. 크기만 작을 뿐 그 모양은 어디로 가지 않았다.

꽃 이름 중에서 조금 아쉬운 이름을 가진 꽃이 있다. 강아지풀이 그것인데 만약 나에게 그 이름을 붙여주라고 했다면 '똥개풀'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을 것이다. 개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우리 민족에게 똥개처럼 친숙한 종이 어디에 있을까? 자기의 속내를 감출 줄 모르는 똥개의 꼬리를 닮은 풀, 나는 그 이름을 똥개풀로 불러주고 싶을 때가 있다.

개불알풀꽃은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한 겨울에도 양지에서는 부지런히 꽃을 피운다. 그리고 후미진 곳에 피우는 것이 아니라 곧 농사가 시작되면 뽑혀버릴 수밖에 없는 밭 가장자리에 많이 피어 있다. 그러니 어쩌면 피었다가 금방 뽑혀지기도 하고 제초제로 인해 수난을 당하기도 하는 불쌍한 풀이다.

그래서 그렇게 부지런히 꽃을 피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겨울잠을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 꽃을 피우려면 꽃을 피우기도 전에 뿌리째 뽑히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으니 서둘러 피어나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아주 작지만 작아서 아름답고, 못 생긴 이름을 가졌지만 못 생긴 이름으로 인해 더 친근해 지는 꽃이 있다면 바로 이 '개불알풀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다.

방가지똥꽃(10월 21일 촬영)
방가지똥꽃(10월 21일 촬영) ⓒ 김민수
외자 화두를 가지고 글을 써보라면 빠지지 않을 것 같은 소재 중 하나가 점잖은 말로는 '변'이요, 그냥 일반적인 말로 바꿔 말하면 '똥'이 아닐까 싶다. 다들 더럽다고 인상을 쓰지만 그것만큼 고마운 것이 어디 있으랴!

사실 우리네 인간은 '똥'관리를 잘해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인간들의 편리를 위해 수세식화장실이 보편화되어 있는 덕분에 우리는 깨끗한 척하고 살아가지만 본래 똥이 돌아가야 할 곳은 흙이고, 흙으로 돌아가 다시 우리가 먹는 먹을거리에 들어가고 다시 몸에 모셔지는 자연적인 순환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흙으로 가야 할 것이 물로 가버리니 먹을거리의 영양분을 대신하게 된 것은 화학비료요, 더러워진 물을 먹게 되니 정말 깨끗해졌고 건강해졌는지 자문해 보면 결코 "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황대권씨는 <야생초 편지>에서 방가지똥의 매력은 꽃이 아니라 날카로운 톱니가 불규칙하게 늘어선 이파리에서 본다고 했다. 보는 이마다 꽃의 매력이 다르겠지만 방가지똥은 정말 제 멋대로 자라는 가시 같은 이파리에 그 매력이 있는데 각 계절마다 다르게 피어남도 그 매력이다.

흔히들 여름 꽃 정도로 알고 있지만 제주에서는 천만의 말씀이다. 한 겨울에도 피어나는 꽃이 방가지똥이다. 그런데 이 못생긴 이름에 못생긴 꽃을 피우는 방가지똥이 여간 신통한 것이 아니다. 여름에는 해가 뜨면 이내 꽃을 닫아버린다. 어쩌면 이미 새벽부터 자기가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취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겨울에는 종일 꽃을 열고 있다. 추운 겨울을 보내자니 더 많은 햇살을 머금어야 하겠지.

나는 여기서 방가지똥의 마음을 읽는다. '필요한 만큼만 가지는 마음'이 그것이다. 충분히 더 가질 수 있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족해요'하며 꽃잎을 닫는 방가지똥에게서 필요이상의 것을 가지고도 더 가지지 못해 아등바등하는 인간사를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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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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