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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에 있었던 국회에서의 대통령 탄핵은 여러모로 국민들에게 많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실제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수도 있다라는 실감을 느낄 수 있었고 또한 그 실감을 배가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의장석에서 농성하고 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내는 처절한 장면이었다.

이 대통령 탄핵은 또한 정치인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었는데 탄핵이 이루어진 후 탄핵추진 세력들에게 쏟아진 엄청난 비난과 반감들이 그것이다. 일단 저질러만 놓으면 여론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탄핵 추진세력들은 급속도로 몰락하고 말았다.

현재 정기국회를 넘기고 임시국회를 다시 열고도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대립의 원인은 이 '탄핵의 추억'이 지배하고 있는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은 개혁법안을 힘으로 밀어붙이다가 혹시라도 있을 '탄핵역풍'을 두려워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이 오히려 힘으로 밀어붙이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이른바 '탄핵역풍의 역전극'에 대한 기대심리다.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탄핵역풍의 추억'

한나라당으로서는 이런 꽃놀이패가 없다. 법안을 저지시키면 그것대로 열린우리당을 무능한 여당으로 좌절시킬 수 있으니 좋고, 만약 열린우리당이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법안을 통과시키면 한나라당은 '나라 망치는 악법' 통과를 온 몸으로 저지하면서 국민들에게 동정표를 무지하게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른바 '역풍 대박'을 기대한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이번에 국가보안법이 본회의에서 열린우리당의 실력행사로 통과된다면 잘하면 한나라당 의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도,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서류니 신발을 던지는 모습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국민들의 심금을 울릴 만큼 잘 할 수 있을까? 좀 의문이긴 하다.

열린우리당도 가까스로 얻은 17대 국회 과반수가 탄핵역풍 때문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개혁 법안의 강행처리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탄핵 역풍을 떠올리라는 충고도 심심찮게 들리곤 했다. 개혁 법안을 반대하는 한나라당을 뿌리치고 강행처리를 할 경우 혹시라도 심각한 여론의 역풍을 맞지나 않을까 하는 점을 걱정하는 듯하다. 한나라당과의 타협을 그토록 갈구하는 이유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은 어째서 그토록 자신들의 개혁법안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국가보안법을 우선 봐도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정치권에서 폐기가 논의되어 왔었다. 김영삼 전대통령이나 김대중 전대통령도 후보일 때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공약했다가 당선되고 나서는 슬그머니 밀쳐둔 것이다. 특히 남북정상회담과 탈북자 대량 유입으로 그 법은 이미 유명무실화되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에게는 추상적인 여론조사의 수치는 보이고 여의도에서 한겨울의 칼바람을 맞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면서 단식하고 있는 1000명이 넘는 시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과연 수구세력의 기득권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의 집요한 방해를 물리치고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을 강행 처리하였을 때 여론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개혁법안은 여론이 아니라 역사를 보고 해나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탄핵은 그 부당성을 국민 다수가 알고 있기 때문에 역풍을 초래한 것이다. 또한 선거로 뽑힌 대통령을 몰아내려는 다수 야당의 모습에서 오만과 폭압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 법안은 다르다. 개혁 법안은 국민 대다수가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깨끗한 공기 속에서 맑은 물을 마셔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권과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개혁인 것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가 있었다. 진정 결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의 결혼은 미친 짓일 것이다. 개혁법안을 한나라당과 타협과 합의를 통해 처리하겠다는 것도 '미친 짓'이다. 박근혜 대표는 4자 회담을 하면서 "지키지 못 할거면 처음부터 반대 안했다" 고 이야기했다. 참으로 솔직한 말이다. 한나라당과 합의한 개혁법은 더 이상 개혁법이라 부를 수 없다.

한나라당과의 개혁법 합의는 '미친 짓'이다

열린우리당은 자신감이 필요하다. 한나라당 같이 과반수가 되지 않아도 그 '무대뽀 정신'으로 국회를 휘어잡을 수 있는 자신감 말이다. 멀쩡한 동료의원을 간첩으로 모는 한나라당은 더 이상 대화와 타협의 상대가 아니다. 또한 설사 한나라당과의 타협이 된다 하더라도 누더기가 된 개혁법은 그 존재 의미가 없다고 할 것이다.

개혁법안을 이루어내는 날은 대통령 탄핵 때와 같은 '역풍'은 없다. 오랜 기간 동안 짓눌려온 인권과 민주주의와 교육과 언론이 '역사의 순풍'을 타는 일만 남았다. 국민은 개혁의 배신에 실망하지만 제대로된 개혁에는 박수를 보낸다.

개혁법안들을 하루바삐 이루어내라는 저 수많은 외침들이 들리지 않는가? 지금 밀어붙이기와 물리력은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쪽이 아니라 법안을 상정조차 못하게 저지하는 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초심의 다짐대로 목표를 이루고 난 다음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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