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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대표가 자유주의 연대 사이트에 올린 글.
홍 대표가 자유주의 연대 사이트에 올린 글. ⓒ 자유주의연대
'뉴라이트(New Right)'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대표가 80년대 감옥을 이른바 '386' 정치인들의 집단 학습장으로 묘사하면서 "군대와 감옥 가운데 선택하라면 감옥을 택하겠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24일 자유주의연대 홈페이지 '최신정보'란에 올린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진실-3'이라는 글에서 "많은 사람들은 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된 사람들이 0.7평의 차디찬 독방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며 고초를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는 통상 과장을 동반하는 소설, 영화의 영향과 군사정권에서 자행된 고문, 폭력을 일반화시키는 경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글을 통해 당시 군사정권에 의해 이뤄진 국가폭력에 대해 일반인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듯한 발언도 쏟아냈다.

그는 "국보법 위반으로 86년 5월에 공범 7~8명과 인천의 구치소에 처음 투옥돼 초기에는 기존시설에 수감되다가 나중엔 신축 사동으로 옮겼는데, 사실상 운동권들의 공동생활이 이뤄졌다"면서 "(당시) 교도소에서는 운동권에 대한 특혜적 처우가 대체로 유지됐다"고 말했다.

또 "기결수가 되어 원주교도소에 갔는데, 거긴 완전히 해방구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각자 방에 들어갈 때까지 함께 모여 운동권 이론을 학습하고 언제라도 테니스, 농구를 즐길 수 있는 집단생활의 자유가 보장되었다"며 "그 결과 감옥은 운동권들이 이론을 연마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더할 수 없는 좋은 학교가 되어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일선 교도소에서는 갑자기 늘어난 운동권들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단식, 동맥 절단, 목매달기, 세제 마시기 등과 같은 격렬한 자해사태가 벌어지자 운동권들에게 대폭적인 자유를 주면서 타협을 하게 된 것"이라며 "군사정권의 운동권에 대한 미숙한 대응이 운동권의 비약적 성장에 일조한 바가 크다"고 이색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다음은 홍진표 대표가 24일 자유주의연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의 전문이다.

홍진표 대표
홍진표 대표 ⓒ 오마이뉴스 남소연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진실-3

많은 사람들은 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된 사람들이 '0.7평의 차디찬 독방'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며 고초를 겪은 것으로 알고 있으며, 심지어 감옥에서 일상적으로 폭행에 시달린 것으로 상상하기도 한다. 통상 과장을 동반하는 소설이나 영화의 영향과, 군사정권에서 자행된 고문이나 폭력을 일반화 시키는 경향 때문이다.

필자는 국보법위반으로 86년 5월에 공범 7-8명과 인천의 구치소에 처음 투옥되었다. 초기에는 기존시설에 수감되다가 나중엔 신축 사동으로 옮겼는데, 독방체제이지만 사실상 운동권들의 공동생활이 이루어졌다. 함께 세미나도 하고 농구도 즐길 수 있었다. 공범들은 상호 접촉을 금지한다는 원칙이 전혀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기결수가 되어 원주교도소에 갔는데, 거긴 완전히 해방구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각자 방에 들어갈 때까지 집단생활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함께 모여 운동권 이론을 학습하고, 운동하고 싶으면 언제라도 테니스, 농구 등을 즐겼다. 나중에 출소해서 확인해보니 대부분의 교도소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 결과 감옥은 운동권들이 이론을 연마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더할 수 없는 좋은 학교가 되어버렸다. 일찍 군대를 가느라고 운동권 인맥이 취약했던 필자도 감옥생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이론수준도 높일 수 있었다. 대학이 다르고, 연배가 다른 운동권들이 지금도 그 위력을 발휘하는 엄청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공간이 바로 감옥이었다.

전두환 정권시대 84년 학원자율화조치 이후 85년 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이 벌어지면서 이른바 유화국면이 깨지고 대학생들의 대량구속사태가 계속되었다. 그러자 일선 교도소에서는 갑자기 늘어난 운동권들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단식, 동맥 절단, 목매달기, 세제 마시기 등과 같은 격렬한 자해사태가 벌어지자 운동권들에게 대폭적인 자유를 주면서 타협을 하게 된 것이다.

때로는 일시적으로 원리원칙이 적용되는 시기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운동권들의 거센 저항에 대해 폭력이 동원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교도소들의 운동권에 대한 특혜적 처우는 유지되었다. 80년대 운동권 중에선 드물게 군대 경험이 있는(당시는 공안관련 전과가 있으면 군대가 면제되었다) 필자는 군대와 감옥을 비교해보면서, 아주 자신 있게 감옥을 택하겠다고 주장해왔다.

돌이켜보면, 군사정권의 운동권에 대한 미숙한 대응이 운동권의 비약적 성장에 일조한 바가 크다. 차라리 대량구속을 하지 말고, 소수의 지도핵심들만 엄격하게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 현명했다는 판단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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