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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하르방과 금능해수욕장
ⓒ 김강임
제주의 길 끄트머리에는 여지없이 바다가 있다. 사방이 바다인 제주도는 지리적으로 하늘과 맞닿은 것이 모두 바다다. 그래서 굳이 방향을 헤아리지 않아도 발길 닿는 곳에는 모두 바다 냄새가 배어 있다. 퀴퀴하면서도 향긋한 냄새, 어쩌면 이것이 바로 사람 사는 냄새인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힘들어지면 잠시 하던 일을 접어두고 길을 떠나보면 어떨까? 산도 좋고 바다도 좋지만, 겨울 길 떠나기는 길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지나간 것들을 포옹할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 좋겠다.

혼자서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곳, 둘이서 소곤대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여럿이 소리치며 달려 갈 수 있는 곳, 그리고 신호등 없는 백사장 위에 모두가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도 좋은 곳, 그곳이 바로 겨울바다다.

▲ 겨울바다는 푸르름이 있다.
ⓒ 김강임
제주시에서 서쪽으로 12번 도로를 타고 40분 정도 가노라면 금능해수욕장이 있다. 금능해수욕장은 하얀 백사장과 푸른 파도, 수평선 끝에 아스라이 펼쳐진 비양도의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전설처럼 겨울이야기가 주저리주저리 달려 있는 겨울바다. 그곳에서 잠시 겨울 여정을 풀어 보자.

금능해수욕장 가는 길은 왼쪽으로는 길게 두러 누워 있는 한라산의 모습과 오른쪽으로는 마음을 사로잡는 바다풍경이 펼쳐진다. 산과 바다를 가로질러 달려보는 마음은 자칫 흥분된 마음으로 속도를 위반할 수도 있으나, 하귀에서 애월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로 발길을 돌리면 들뜬 마음은 차분해진다.

겨울 끝에서 발견하는 것은 푸름이다. 겨울들판의 허전함을 채워주기라도 하듯이 출렁이는 겨울 바다의 푸름은 초록과 연두, 비취빛 물감까지 보너스로 풀어놓는다. 수심의 깊이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는 바다 모습은 어쩌면 사람의 마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멀리 비양도가 보이고
ⓒ 김강임
그렇기에 각양각색의 바다 색깔을 바라보며 힘들었던 역겨움을 토해내고 답답했던 가슴까지도 활짝 열리게 하는 순간이다.

특히 귀덕에서 한림까지 꼬불꼬불 이어진 바다 길을 달리노라면 잠시 일상을 탈출해 온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구비 구비 달려온 자신의 생활 속 뒷모습을 돌아보기라도 하듯이, 백미러로 스치는 지나온 길의 풍경은 자신의 발자취를 더듬게 한다. 가다가 한 번쯤 차를 세워두고 길모퉁이에 서면 세상이 모두 내 것이다. 이때, 폐활량을 늘리며 바다를 한 모금 들이마시면 그 푸름은 폐 속까지 스며든다.

길 떠나는 이의 마음은 늘 설렘으로 가득하다. 해안도로에서 바다에 흠뻑 취해 비틀거리다가도 하얗게 펼쳐진 금능해수욕장 백사장에 서면 마음이 긴장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묵은 찌꺼기를 버리고 싶은 무소유에 대한 갈망의 교차로, 지나간 꿈과 낭만은 되살리고 자신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은 축소시킬 수 있는 곳이 겨울 바다가 주는 매력이 아닐는지.

▲ 알몸을 드러낸 바다속 풍경
ⓒ 김강임
겨울 바다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하얀 모래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특혜가 있다. 너무나 깨끗하여 자신의 마음까지도 숙연해지는 모래백사장. 금능해수욕장의 겨울 바다는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알몸을 탐내는 것은 수평선 끝에서 달려온 푸른 파도. 바람이 불어와 바다 한가운데 머무니 파도가 인다. 하얀 포말을 그리며 밀려드는 파도는 백사장에서 머문다.

▲ 발자국을 따라 걸어보면 어떨까?
ⓒ 김강임
지난 여름이 남긴 흔적의 발자국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꿈을 싣고 날아온 소라고둥이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 흔적의 발자국을 따라 가노라면 누군가가 쌓아 놓은 모래성이 주인을 기다린다.

▲ 파도가 실어온 조개껍데기
ⓒ 김강임
"저물어가는 여름 바닷가에서 진종일 지었던 모래의 성. 황혼의 시각이 오면 바닷물이 밀려와 그 성을 허물어버린다. 그와 함께 우리들의 어린 시절도 허물어져버렸다. 그러나 참다운 성은 모래성을 무너뜨리던 그 시간의 파도로 짓는 것이다."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는 김화영님의 '시간의 파도가 지은 성'을 기억하며 백사장을 거닐어 보면, 뒤따라 온 파도가 요동을 치며 모래성을 허물어 버린다. 모래 속에 발자국을 묻고 '거대한 집' 그리고 '육중한 벽돌집'을 쌓기 위해 발길을 옮기는 순간, 시간의 파도는 자신이 걸어온 흔적까지도 지워버리는 아이러니.

겨울 바다에 서서 바다 끝까지 가지 못함을 아쉬워하지 말자. 벽돌집이 아니면 어떠리, 비록 비키니 복장은 아닐지라도 파도가 실어 나른 하얀 모래로 '모래성'을 쌓고, 바다 한 켠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겨울 이야기 나누며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어떨까?

▲ 겨울바다 운치를 더해주는 조형물들...
ⓒ 김강임
바람을 등지고 우직하게 서 있는 돌하르방의 모습, 방파제 끝에 아슬아슬 떠 있는 등대, 눈구름을 머리에 이고 바다 끝에 홀로 떠 있는 비양도의 풍경, 야자수의 그늘을 목마르게 기다렸던 지난 여름의 추억까지, 가슴 속에 그려진 한 폭의 풍경화를 고스란히 담아 오면 좋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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