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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국
사진 찍는 일은 즐겁다. 카메라를 손에 쥐는 순간 누구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가가 된다. 프로냐 아마추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카메라는 사진가의 또 다른 눈이 된다. 사진가의 눈 앞으로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모든 것은 찰나로 쪼개져 한 장의 사진으로 남는다.

ⓒ 조경국
사진이 주는 감동은 진하다. 기쁨, 슬픔, 아름다움, 추함, 사랑, 고통... 삶의 모든 것을 한 장의 사진은 담아낼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사진 속에 담을 것인가는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의 몫이다.

디지털 카메라와 폰카가 히트 상품이 된 요즘은 온갖 이미지가 넘친다.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온라인을 통해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 앨범과 액자 속에서만 사진이 존재하던 시대는 갔다. 누구나 쉽게 사진가가 될 수 있고, 사진을 표현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가끔 사진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시큼한 냄새가 진동하는 암실 속에서 밤을 새며 한 장의 흑백 사진을 만들어내던 그 기쁨을 메모리 카드에서 프린트로 데이터가 옮겨져 순식간에 사진이 만들어지고, 모니터에 뿌려지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다.

'개입의 틈'을 전혀 주지 않는 요즘 사진 만들기는 빠른 처리 속도만큼 허전하고, 깔끔한 결과물만큼 인간미가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문명의 혜택을 고스란히 즐기고 있는 세대지만 가끔 그 혜택에서 비켜서고 싶다. 어설픈 사진이라도 내 손으로 다듬고, 주무르고, 깎아서 한 장의 사진을 만들고 싶다.

ⓒ 조경국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난다. 내 나이 보다 오래된 '가난한 자의 라이카'라는 애칭이 붙은 야시카 일렉트로 GSN, 이 카메라에 싸게 구한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흑백 필름(필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구입할 때 꼭 확인을 해야 한다)을 넣고 길을 나선다. 다른 것은 필요 없다. 낡은 카메라와 나만 있으면 된다.

ⓒ 조경국
5만원, 내가 이 낡은 카메라를 사기 위해 치른 값이다. 그 돈으로 나는 이 카메라를 쥐었던 사진가들의 추억도 함께 산 것이다. 낡았다는 것은 추한 것이 아니다. 치른 값이 그 물건의 가치를 말하진 않는다. 비록 손때가 묻고 값싸지만 소중하게 사용한 것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다.

나의 눈이 카메라가 되고 카메라가 나의 눈이 된다. 무엇을 찍을까, 어떻게 찍을까, 낡은 카메라와 떠나는 여행은 그런 고민마저 즐거움이다.

월남전에 나갔던 군인들이 많이 사왔다는 이 카메라의 첫 주인은 처참했던 전장에서 함께 고생했던 전우들의 모습을 담았을까, 아니면 그저 나들이 때만 사용했을까, 어여쁜 아이와 사랑하는 사람도 찍었을 것이다. 카메라 구석구석 옛 주인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는 것 같다.

뷰 파인더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풍경을 보고, 길을 걷는다. 필름이 한 컷 돌아갈 때마다 카메라에는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나이테가 한 올씩 새겨진다. 빛을 찾아 헤매고, 끙끙대며 초점을 맞춘다. 낡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은 그 자체가 몰입의 기쁨을 준다.

ⓒ 조경국
디지털 시대에, 이미지의 홍수시대에 낡은 카메라를 들고 한 장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 방황(?)하는 것을 단지 '복고'와 '향수'라는 단어로 잘라 말하긴 싫다.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는 디지털 카메라에 익숙해진 지 오래지만 가끔은 온전히 내 손을 움직여 사진을 찍고 싶고, 낡은 카메라에서 나는 사람냄새가 맡고 싶다. 디카를 놓고 낡은 카메라를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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